이제서야 나의 위치와 상황이 보였다.

쉽사리 내게 곁을 내어주지는 않았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by 갬성장인

화재가 난 이후의 주말은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잊고 싶겠지라는 생각으로 자기 위안을 해본다.

화재 이후 처음 맞는 월요일이었다.

아침 일찍 나의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예, 한국물류 정우입니다."

간략하고 짧은 대답에 수화기 너머로 낯설은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강주소방서 화재조사관 병우입니다. 몇 가지 확인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있어서요. 현장 방문 가능할까요?" 아 짧은 탄식과 함께 뭐라고 답해야 할지 좋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에 그날 나의 근무는 야간이었다.

입사 1년이 지난 시헌 마저도 제대로 그 역할을 못하여 주고 있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였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예, 가능합니다. 방문 시간을 대략 알 수 있을까요?" 혹시 모르는 희망감을 가지고 방문 시간을 확인했다. 역시나 이때 당시 나에게는 작은 행운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일까?

"오전 10시까지 방문 예정입니다. 화재조사와 함께 지난주 현장 출동 당시 현장 지휘하셨던 팀장님도 함께 방문하고자 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짧게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화재조사관의 방문은 예상했지만, 당시 출동하였던 지휘팀장의 방문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아마 화재 당일 잘못된 안내로 현장 출동에 혼선이 있었다고 들었다. 아마 그에 따른 우려 썩인 이야기들을 전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도착했다.

아직 어수선하다.

주간 선임자에게 간략히 내용을 알리고 시설팀 소방담당자들에게도 재차 공유하였다.

이미 출근하면서 시설팀 소방담당자들에게는 공유를 마친 상태였다.

마치 다른 세계의 일인 듯 멀뚱히 서있는 시헌을 뒤로하고 빠르게 현장 및 시설팀 사무실을 찾았고 화재 조사관 외 달갑지 않은 방문자들에게 혹시 트집 잡힐 일은 없는지 살펴본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또 한 번의 요란스러운 휴대전화 소리와 함께 도착했음을 알렸다.

화재조사는 거의 오후가 다 되어서야 끝났고 배고픔은 잊은 지 오래였다.

잠시 쉬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숙제가 있었다.

피난대피훈련......

대상자만 900명이 넘는 대규모 피난 대피훈련이 고작 열흘도 남지 않았었다.

그렇지 여태껏 나는 피난 대피훈련 준비하고 있었지 머리를 크고 무거운 해머로 맞은 듯하다.

호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순간적으로 호운이 떠올랐다.

호운은 내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후배 중 한 명이다.

아마 시헌에 대하여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호운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호운이 있어야 한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호운에게 간략히 사정을 이야기하고 화재 조사 등의 일은 내가 처리할 수 있지만 문제는 열흘도 채 남지 않은 피난 대피훈련임을 이야기했다.

눈치 빠른 호운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라는 호운의 간결한 대답을 듣고도 안도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그러했고, 그리했어야 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호운이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해서......

하지만 훗날 호운은 지금의 이 결정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는 생각지 못했으리라......

아마 지금의 호운이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으려고 한다.

원망 섞인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keyword
이전 03화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불행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