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불행이었던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나에게는 사치였다.

by 갬성장인

'22년 7월 나에게 새로운 변곡점은 항상 7월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바보스럽긴 하다.

'22년 7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시간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 오늘만 보내면 그렇게 바라던 주말이다.

당시 무척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에게 금요일은 오늘만 버티면 이틀을 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정말 기다리던 날이었다.

퇴근을 몇 시간 남기고 갑작스럽게 성철의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불길한 사진 몇 장과 함께......

성철이 통화를 마치고 상기된 얼굴로 나를 찾는다.

"정우님, 지상 3층 외곽에서 검은 연기가 난다고 합니다. 이유는 모르겠다고 하는데 같이 가보셔야 할 듯합니다."

불길하다.

지상 3층이라면 여러 가지 잡화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의류, 가전제품, 생활필수품 등 여러 가지 불이 쉽게 옮겨 붙을 수 있는 물품들이 잔뜩 쌓여 있는 곳이 아닌가

상기된 성철과 함께 지상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아니 지상 3층은 보안구역으로 우리가 임의로 출입할 수 없기에 한 층위인 지상 4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성철과 그날을 회상할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정우님 우리 정말 빠르지 않았아요. 흐흐흐

성철은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실없는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하지만 사실이지 않은가 우리는 당시 누구보다 빨랐고 누구보다 전력을 다하여 뛰어다니지 않았는가

하지만 지상 4층, 뒤늦게 열린 지상 3층 아무 곳에도 화재의 흔적은 없었다.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던 찰나 내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정우야!!! 지하 1층에서 불이 났다. 초기 진화는 되었고 잔불정리 중이야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어 이리로 서둘러서 와야 될 것 같다.

사업장 전반의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는 헌철이다.

평소 헌철은 침착하고 명확한 성격으로 배울 것이 많은 좋은 선배이다.

하지만 그날은 서둘렀고 매우 상기되었던 것 같다.

아마 침착한 헌철도 처음 겪는 화재가 아닐까, 아니 어쩌면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 앞에서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 뜬금없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서둘러 지하 1층으로 내려오니 검댕을 뒤집어쓴 헌철과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헌철의 말대로 초기 진화는 끝났고 잔불정리 중이었다.

인원을 통제하고 전원과 가스를 차단하니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들과 시설을 관리하는 시설인력들이 속속 도착했다.

현장은 참담했고 암울했다.

새까맣게 그을린 현장에 소방대원들은 도끼 등을 이용하여 천장을 무너뜨리고 잔불을 확인했다.

아 화재가 조금만 더 커졌다면, 초기 진화가 실패했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마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날을 회상하지 못하고 있을 것 같다.

소방대원들의 잔불 정리와 혹 있을지 모르는 2차 발화 위험에 대한 확인이 끝나고 나서야 경찰관이 도착했다.

간략하게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인명피해는 없음을 알렸다.

아차 헌철과 나는 상황 정리에 몰입한 나머지 초기 보고를 잊고 있었다.

나에게 이를 알려준 것은 헌철이었다.

"정우야!!! 우리 초기 보고 못한 것 같다. 정리해서 보고하고 수습할 일들은 보고 이후에 다시 상의해 보자" 당시의 헌철은 여전히 상기되어 있었지만 조금씩 침착함과 명확함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간략한 사고 경위와 인명피해 없음을 보고하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새벽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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