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좋아하는 듯했던 아버지와의 첫 갈등
모든 일이 꽤 괜찮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을 마친 후 가을이를 위해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일찍 퇴근하신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요 며칠 사이 가을이의 등장으로 바뀐 집안 분위기는 꽤나 긍정적이었지만 우리는 점점 새로 생긴 변화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가을이의 체구가 작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 삶은 멸치와 닭고기를 잘게 조각내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아버지는 강아지용 음식과 사람 음식이 냉장고에 뒤섞이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셨고 맨 아래 칸에 가을이 음식을 두라고 하셨다. 미안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께서 예민하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항상 문을 닫고 생활하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본래 늦게 들어오는 사람을 위해 거실의 작은 등을 켜두던 우리였지만, 가을이의 출입을 위해 문을 열어 두면서 부모님께서 빛이 잠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등을 켜지 못하게 하셨다. 물론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족 간에 서로 너무나도 다른 생활 패턴으로 인해, 이러한 상호 간의 약속이 모두에게 전달이 안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버지는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내가 했다고 오해하셨고, 같은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셨다. 이로 인해 나는 스트레스를 느꼈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아버지와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계기가 되었다.
가을이의 털날림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던 아버지는 결국 나에게 가을이의 방출입을 제한하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청소의 몫은 부모님이기에 이런 말씀을 하신 듯했다. 그러나 가을이를 거실에서만 생활하게끔 할 수는 없을 터. 나는 이에 반항했고, 결국 큰 싸움으로 번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별 일도 아니고 그저 익숙하지 않은 것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이었다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에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그 사이에서 어머니와 오빠는 퍽 난감해했고 그렇게 우린 기나긴 냉전 기간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