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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May 29. 2022

10_아이가 없어요 vs 어른만 살아요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 시험관 고차수 난임에세이


이사를 했다. 전에 살던 집과 크기와 구조가 똑같아서 사실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 이삿짐센터 분들께 옮겨가는 집이 똑같이 생겼으니 예전에 있던 그대로 놔주시면 된다고 했다. 이것저것 설명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다.


평수는 같은데 세대 위치  발코니가   많아서 서비스 면적이  넓어졌다. 넓어진 면적으로는 거의 작은  하나 크기의 드레스룸이 만들어졌다. 기존 집에도 드레스룸이 있긴 했지만, 남편과 나의  그리고 이불들을  수납하기에는 좁았다. 그래서  하나를  별도의 드레스룸으로 었다.


새로운 집에서는 모든 옷가지가 한 드레스룸에 수납이 되니 방 하나가 남는다. 처음 이 집을 분양받았을 때만 해도 그 남는 방은 당연히 아기방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입주까지 3년 여의 시간이 남았던 때였다. 짧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시간을 들인 노력과 기다림의 댓가가 이 때쯤에는 주어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신축 아파트이다 보니 이 동네에도 아이들이 넘쳐난다. 아파트 놀이터에 가면 키즈카페 수준으로 아이들과 젊은 엄마들이 많다. 지금 집은 결혼하고 세 번째 집인데, 운이 좋게도 우리는 세 번 다 첫 입주를 하는 신축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느 곳이든 첫 입주를 하는 신축 아파트에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청약에서는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가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인 경우에도 아이가 한 명 늘어날 때마다 더 우선순위가 된다. 신혼집이었던 첫 아파트는 아이 셋인 집이 그렇게 많았다. 요즘 시대에 이렇게 다산을 하는 집들이 많다니, 어쩌다 한 두 세대가 아니고 이렇게 많은 집에서 삼둥이들을 키운다니 특별히 이 동네 부부들이 금슬이 좋은 건가 처음에는 너무 신기했었다. 알고 보니 그런 집일수록 가점을 많이 받으니 당첨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우리는 운이 정말 좋았다. 조건 상 여러모로 당첨이 되기 힘든 상황인데 이 집이 우리에게 주어진 건 정말 온전히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난임 치료를 받느라 너무 오래 고생하니까, 위로차 주시는 선물이라 여겨졌다.  

신규 입주 아파트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이웃이 된 것을 반가워하며 인사들을 나눈다. 아파트 입주민 카페와 단톡방을 만들어 하자 처리 방법 등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3개월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의 세대들은 입주를 마치게 되는데, 그 시기 즈음이 되면 정보교환과 친목의 장이었던 온라인 공간에서 조금씩 불협화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 신축 아파트마다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층간소음 문제 때문이다.

요즘 집들은 벽과 천장을 무슨 종이로 만드는지, 지은 지 20년이 넘은 우리 친정집도 30년이 넘은 시댁 아파트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닌데 우리가 결혼 후 살았던 신축 아파트들은 모두 층간소음이 매우 심했다. 사람이 걷거나 뛰는 소리, 크게 튼 음악 소리가 넘어오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사람의 대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까지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싸우거나 고함을 치는 것도 아닌데 웬만한 일상생활에서 나누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천장을 통해 벽을 통해 은근히 들렸다. 어떤 내용인지까지 또렷하게 들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정도 데시벨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건축 구조상 분명히 문제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새로 이사 온 이 아파트도 예외는 아니어서, 각 세대들이 하나둘씩 입주를 마치고 나니 여기저기서 층간소음, 생활소음들로 불편해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어린아이들이 많은 단지이다 보니 유독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노는 소리 때문에 창문을 열 수가 없다며 힘들어하는 이웃도 있었다. 하필 코로나가 한창인 시국이라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다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거주했던 아파트 중 이번 집이 소음 문제로 이웃 간의 갈등이 가장 컸던 것 같다.


하루는 아파트 단톡방에서 누군가 쏘아 올린 공으로 인해 거의 하루 종일 열띤 토론이 이어졌었다. 층간소음 때문에 너무 괴롭다는 글이었다. 하나둘씩 동조하는 댓글들이 올라왔고, 그러다 가해자로 지목된 세대들과 부딪히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어느 세대는 집 전체에 매트 시공을 했다고 하는데, 두꺼운 매트도 아이들이 뛰는 소음을 100% 차단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소란이 커지니 이들 사이에서 중재를 하는 세대들도 조금씩 생겼다. 공동주택이니 서로 최대한 조심해서 살자, 아이들 컨트롤이 어렵지만 서로 노력해보자 등등의 이야기였다.


그러다 한 세대에서 올린 글이 생각지 못한 대목에서 내 눈길을 머물게 했다. '어른만 살고 있는 집이다. 평소에 의자 끄는 소리, 발 망치 소리 등을 매우 주의하며 살고 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조심하자'는 대략 그런 내용의 글이었다. 사실 나에겐 그분이 이웃들 사이에서 어떤 말로 중재를 하고 권면을 했는지가 의미 있던 게 아니었다. 내가 집중했던 부분은 '어른만 살고 있는 집'이라는 표현이었다.


내가 알기로 우리 또래의 부부 둘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워낙 아이가 많은 단지이다 보니 아이 없이 둘이 사는 부부들은 한 번 들어도 유독 기억이 난다. 이것 봐. 나는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아이 없이 둘이 사는 부부'라는 표현을 썼다. 많이들 그렇게 쓰니까 관용적인 말이라고 여겨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결국 나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말인 것이다.




남편과 이제 조금씩 아이가 없는 삶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노력을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본 것 같은데 아직도 아이가 허락되지 않는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에게 그 축복은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받아들임이 생기고 있는 중이다.


남편의 입장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사실 나는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아이 자체가 굉장히 간절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혼주의가 아니어서 결혼을 했듯이, 딩크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다른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그냥 시간의 순서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듯이,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그저 순리적인 일이었다. 지난 시간이 힘들었던 것은 예쁜 아기를 내 품에 안아보고 싶은 모성애적 갈망이 채워지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그 순리적인 일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 오랜 노력에 아무런 결실이 없음에 대한 낙심이었다.


아이 없는 삶에 대해서도 준비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집 밖을 나가는 순간 나의 모습은 여지없이 작아진다. 스무 살이 되어 입학했던 학교가 원하던 대학이 아니어서 사실 재수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재수를 하지 않은 것은 수능 공부 1년을 더 하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동갑인 친구들과 1년의 시간이 차이가 나게 되는 게 싫었다. 평범한 모습에서 조금만 달라지는 것도 불안했던 나였다. 이게 참 별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건데, 나이가 들어도 극복하지 못한 불안이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의 모습이 평범한 거라고 여겨지는 나에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세상의 많은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의 모습은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자꾸만 위축이 된다.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해외에 나가 사는 것'에 대해서 얘기한 적도 있다. 정말 우리에게 아이가 없다면 그 방법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규범적이라고 여겨졌던 것들로부터, 사회적 시선으로부터의 자유가 그곳에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결국 나만 당당하고 괜찮으면 되는 건데, 내 생각이 편협해서 그렇다. 요즘은 일부러라도 비혼을 택하고, 딩크도 택하는 세상에서 내 사고는 왜 더 열리지 못하는 건가. 시대에 맞지 않게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참 답답하다. 쿨하게 산다는 거, 그거 왜 그렇게 어려운 건지.


그 집은 어떤 사연으로 '어른만 사는지' 모르겠지만, 사연에 상관없이 본인들의 삶의 방식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아이를 주시지 않는 거라면 주시지 않는 순리대로, 본인들의 선택이라면 또 그 선택을 온전히 주장하며 자신감 있게 살아간다는 것이 그 짧은 표현 하나에 느껴졌다.


말이란 게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진심이지만, 또 말이란 게 가진 힘이라는 게 있으니 일단 뱉어놓고 그 말이 나를 빚어가는 것을 목도해보려 한다. 혹시 누군가 '자녀는 없으세요?'라고 묻는다면 괜히 혼자 주눅 들어 소심하게 '네, 아직요', '네, 없어요'라고 말하기보다 '네, 어른만 살아요'라고 꼭 얘기해봐야지. 혹시 누군가 어떤 집을 향해 '그 집엔 애가 없어?' 라고 묻는다면 '응, 거긴 어른만 살아'라고 대답해 줘야지. 내게 허락된 삶과 경험에 당당해지자. 자녀 유무를 묻는 단순한 질문에 단순히 있다, 없다로 대답할 만큼 내가 살아온 삶과 겪은 것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시험관 고차수이고, 난임을 겪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가정의 오랜 노력과 소망이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도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데 진짜 그러면 어쩌려고 이제 글까지 써서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수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들을 정리해봅니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다. 그 모든 바람이 해피엔딩이 아닐진대, 인생의 섭리를 인정하며 나에게 이 경험이 왜 찾아왔을지 사유해봅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겐 부디 공감과 위로를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연재를 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적다 보니 글의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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