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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나를 향해 손가락질했던 여자

by 박가을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수업이 끝난 뒤 후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키 작은 중년 여성이 오른쪽에서

뚜벅뚜벅 걸어왔다.


‘버스 타러 왔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살짝 쳐다보고 다시 핸드폰을 봤다.


그 순간, 이 여성이 대뜸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쳇 너는 부모 잘 만나서 편하고

행복한 거지."


여자는 눈빛도 흐릿했고

말투도 어눌했다.


얼핏 봐도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못 들은 척 무시했다.


마침,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다.

서둘러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아까 저 사람은 처음 본 사람한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아마 내가 모르는 그 사람만의

사연이 있을 듯하다.”


여자의 말과 행동에 분노보다

연민의 감정이 나를 감쌌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의 핵심은

‘질투’다.


사소한 감정 하나가

어떠한 비극을 초래하는지

분명하게 그린 작품이다.


오셀로 마음 안에 숨어있던

질투의 씨앗을 끌어낸 사람은

오셀로 부하 이아고다.


질투에 사로잡혀 처참히 망가진

오셀로 장군을 보면서 질투라는 감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자기 외부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뾰족한 사람들이 있다.


그럴수록 내적으로

정반대인 경우도 많다.


오셀로는 무어인이라고

끊임없이 차별을 당하며

내면 깊숙이 열등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공자는 사람을 읽는 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음은 「논어」의 제2편 ‘위정’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그 동기를 살펴보고,

그가 편안하게 여기는 것을

잘 관찰해 보아라.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


원래 나는 상대의 날카로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나도 똑같이 차갑게 대응했다.


지금은 그런 상대를 최대한 다각도에서

바라보려 한다.


“저 사람에게 무슨 사정이 있을까?,

오늘 유난히 힘든 일을 겪었나?,

말 못 할 아픔이 있는 건 아닐까?”

여러 의문을 품는다.


예전의 나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했을까?’

라고 따지기 바빴다.


이제는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은

무엇일까?’를 궁금해한다.


숨어있는 ‘삶의 맥락’에서

타인을 바라본다.


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지를

깊이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

오히려 나와 상대의 공통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간관계가 어려울 때면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즉시 가동한다.


“저 사람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무엇이 같고 어떻게 다른가?”


어느 날 엄마와 백화점에 갔을 때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가는 길에

예쁜 속옷을 파는 걸 발견했다.


하나 사려고 상품 진열대 앞으로 갔다.

직원은 몇 가지 종류를 추천했다.


그날따라 직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단순한 판매원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이야기를 지닌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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