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기로 돌아갔다

by 박가을



나는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기로 돌아갔다.


가장 아팠을 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밥 먹기, 물 마시기, 걷기, 움직이기,

화장실 가기, 샤워하기 등.


엄마는 24시간 1분 1초 내 옆에서

대기 중이었다.


한 번 먹을 때 소량만 먹어야 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하루 11번씩 침대 위로 밥상을 날랐다.


3끼 식사로 죽 한 그릇 (3번),

따로 챙겨 먹는 건강식(3번),

간식으로 먹는 야채수프 (2번),

식사 후 침대 위에서 양치할 수 있는

세팅까지 (3번)


물을 먹고 싶어도 부엌에 있는 정수기까지

가지 못했다.

엄마가 떠다 주었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매번 엄마가 부축해 주어야

변기에 앉을 수 있었다.


샤워할 때도 나를 화장실 문턱 위에 눕힌 후,

엄마랑 아빠가 같이 나를 씻겨주었다.


샤워 후 수건으로 몸 닦기, 속옷과 잠옷 입기,

머리 말리고 빗기, 얼굴에 로션 바르기까지.


엄마의 손길이 다 닿았다.

잠도 매일 내 옆에서 주무셨다.


우리는 각자만의 다양한 자유를 갈망한다.

직장으로부터의 자유, 경제적으로부터의 자유,

시간으로부터의 자유, 정신적으로부터의 자유,

국가와 사회로부터의 자유, 관계부터의 자유,

‘나’로부터의 자유 등.


특히 나는 ‘신체적으로부터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예 걷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

병원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양팔에 꽂혀있는 링거 주삿바늘 때문에

침대 위에서조차 자유롭게 움직이는 일이

힘겨웠다.


누워있을 때 병실을 오가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유독 내 귀에 크게 들렸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간절히 걷고 싶었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니

감옥에 있는 기분이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행동조차

혼자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건강을 되찾은 후엔 두 발로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인식하면서 산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그리스인 조르바>에

‘조르바’라는 인물이 나온다.


조르바는 감각주의자이며, 날 것의 인간이다.

보고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


모든 존재를 매번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반응한다.

기쁠 땐 아이처럼 춤을 춘다.


이념, 사회규범, 규칙, 관습 등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산다.


다음은 소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다.


“내가 깊이 느끼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은

<지식>도, <미덕>도, <선>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어떤 것,

바로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사실이었다.”


조르바가 경험하는 감정들은

신체 감각과 연결된다.


자기를 이해하고 자각하는 가장 기본 통로는

몸의 감각이다.


몸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건강해질수록 몸의 감각은 살아난다.


내가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신체의 자유를 오래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때,

현재 마음 상태가 고요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몸이 조금만 아파도

이 2가지를 제대로 체험할 수 없다.


컨디션이 좋아야 세상 모든 존재도

아름답고 너그럽게 보인다.


영혼과 정신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앞서는 건 신체다.

인간은 신체적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몸이 정신을 지배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느낀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아프면 금방 우울해지고

쉽게 예민해진다.


자기 몸을 돌보는 게 곧 마음을 돌보는 일이다.


한 사람의 생각과 느낌은 가장 밑에

건강이라는 뿌리가 탄탄해야 더 잘 솟아난다.


우리의 자아는 신체 속에 머물고 있다.

신체도 정신도 결국 ‘자기’를 위해서 존재한다.


‘나’라는 인간은 신체와 정신을 짊어진 채

운명을 살아간다.


신체와 정신은 ‘자기’라는 존재가

인생을 잘 탐험하도록 눈과 귀가 되어주는

안테나와 같다.


몸과 마음을 소중히 아끼고 잘 가꿀수록

자기 내면과 세계관은 더 풍부해지고 확장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1가지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