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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리는 삶에 지쳐서

by 박가을




엄마랑 경복궁을 다녀왔다.


엄마 손을 잡고 궁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 현재의 시간이 행복했다.


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여행 내내 주변을 천천히 관찰하고

감각을 열어두려 했다.


곁에 있는 엄마의 눈과 목소리에

집중했다.

엄마의 얼굴을 자주 쳐다보았다.


엄마의 표정이 즐겁고

편안해 보일 때마다

나도 미소를 지었다.


한복 입고 사진 찍으며

즐거운 추억을 쌓는 사람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걷다 마주친 꽃과 나무의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과 구름도

한 번씩 바라봤다.


스치는 바람과 따스한 햇살의 존재도

알아차렸다.


똑같은 경복궁이지만 이번 여행은

예전에 왔을 때와 전혀 다른 공간처럼

다가왔다.


인생은 시작과 끝이 쭉 이어진

하나의 직선이 아니다.


무수한 ‘찰나’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순간의 점들이 모이고 모여서

한 인간의 생애를 구성한다.


우리는 오로지 현재 지금 이 순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인간의 기억은 ‘속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빠른 속도는 감각을 차단한다.


현재를 외면하고 앞만 보며

빠르게 달려온 사람과

매 순간을 천천히 느끼면서

살아온 사람은 생의 끝에서

완전히 다른 풍경을 마주할 것이다.


김주환 작가님은 책 <회복탄력성>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오히려 고통 없이 현재를,

지금 이 순간을, 오늘 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더 많은 성취를 얻을 수 있다.

현재를 미래를 위한 투자로만 생각하면

영원히 불행해진다.”



나는 먼 미래의 행복을 좇으며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사람이었다.


미래의 흐릿한 그림을 위해

현재의 뚜렷한 풍경들을 놓치면서 살았다.


목적지만을 향해

쏜살같이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삶 외에도

천천히 걷는 삶, 잠시 되돌아가는 삶,

멈춰 서서 숨 고르는 삶도

모두 똑같이 가치 있음을 이제는 안다.

할아버지 집 대문 옆에 큰 나무가 있다.

가지에 꽃들이 달렸다.


늘 있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눈에 들어왔다.


꽃 이름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능소화란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니.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우리는

많은 걸 놓치면서 지나간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눈빛과 목소리,

집 앞에 떨어진 단풍잎,

사랑하는 사람이 잡아주었던 따뜻한 손,

아침에 잠깐 들리는 새소리,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엄마의 밥상 등.


눈앞의 아름다움에 머무를 때

근원적인 행복감은 저절로 따라온다.


꾸준한 독서는

나를 정반대 방향으로 이끌었다.


지금 타고 있는 기차에서 내린 후

돛단배로 갈아타

매 순간을 여유롭게 즐기는 삶으로.


더 빠른 기차로 갈아 타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별을 바라보며 무작정 달리는 인생보다

별자리를 하나씩 그려나가는

순간순간의 삶에 마음을 쏟는다.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돌아봤을 때

내 마음 안은 어떤 풍경들로 가득 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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