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 있을 때,
외할아버지와 이모가 갑자기 찾아오셨다.
두 분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다.
아픈 내 모습을 처음 보셨기 때문에
놀라신 듯 보였다.
이모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중환자실 밖으로 뛰쳐나가셨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내 차가운 발을 조심스레 감싸 쥐셨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눈이 빨개지셨다.
이모와 할아버지의 반응을 보며
‘내 모습이 많이 망가졌구나.
상태가 심각하구나.
내 삶은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닉 부이치치의 책<플라잉>을 읽었다.
닉 부이치치는 선천적으로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난 사람이다.
팔다리가 없음에도 서핑, 요리, 드럼 연주,
타이핑치기까지 해낸다.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다.
자신의 한계에 대해
불평불만 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항상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현재 전 세계를 돌며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동기부여 연설가로 활동 중이다.
닉 부이치치를 보며 자각했다.
불행을 이겨내는 첫걸음은
‘내게 일어난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임을.
힘겨운 운명의 굴레를
나에게서 떼어낸 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주어진 상황을 최악으로 여기며
발버둥 칠수록 부정적 감정만 커지고
더 깊은 암흑 속으로 빠져든다.
시련 앞에서도 마음을 열고 감싸안을 때,
비로소 자유와 평화를 얻는다.
시인 루미(Rumi)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삶은 여인숙이다.
매일 아침 새로운 여행자가 온다.
기쁨, 슬픔, 비열함 등 매 순간의 경험은
예기치 못한 방문자의 모습이다.
이들 모두를 환영하고 환대하라!
어두운 생각, 수치스러움, 원한….
이들 모두를 문 앞에서 웃음으로 맞이하고
안으로 초대하라.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감사하라.
이들은 모두 영원으로부터 온
안내자들이다. ”
울고 싶으면 실컷 우는 게 맞다.
우울할 때는 우울함에 흠뻑 빠졌다가
나오는 게 좋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흔들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은 본래 수없이 흔들리는 존재이다.
세상 어떤 생명도
흔들림 없이 살아가진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
흔들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다.
더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바람에 몸을 맡기면 바람은 잦아든다.
인생이 휘청거릴 때는 억지로 버티기보다
그냥 흘려보내는 편이 더 낫다.
즐거우면 실컷 웃고
힘들면 맘껏 울면서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갈 때,
우리는 한층 성숙해진다.
그만큼 자신의 운명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인생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의 연속이다.
거친 파도 앞에서 우리는 늘 두렵다.
하지만 파도는 우리를 해치지 않는다.
바다의 서퍼는 파도가 올 때
두려움보단 설렘으로 그 파도 위를
멋지게 타고 나아간다.
인생도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