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20대로 돌아가게 해준다면
가실 건가요?”
어떤 방송에서 MC가 방청객 중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주저 없이 “아니요.”라고 답했다.
젊음이라는 찬란함 뒤에
그 사람만의 그림자가
깃들어있음을 느꼈다.
나는 4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다.
간단한 피검사를 하고
다음에 복용할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다.
여전히 병원에 오면
9년 전 위독한 상태로
입원했었던 기억이 온몸을 찌르듯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과거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오는 게 아닌데도 진료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순간이면
늘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린다.
“천억을 준다고 해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내가 가끔 가족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나의 20대는 좋았던 기억보다
힘든 기억이 더 많았다.
거친 풍랑을 잘 이겨내고 단단해졌지만,
그 모든 일이 다시 내 삶에 반복된다면
여전히 두렵고 싫다.
몸이 조금만 이상하다고 느끼거나
오랜만에 먼 친척에게 갑작스러운 연락이 오면
이젠 덜컥 겁부터 난다.
아픔과 상실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졌다.
앞으로 새로운 고통과 슬픔이 찾아온다면
처음처럼 똑같이 쓰라리고 서글플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나를 또다시 덮친다 해도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부서지는 길밖에 없다.
물론 고난을 통해
우리는 더 강인해지고,
소중한 진리를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의미와 지혜를 얻기 위해
반드시 시련이 필요한 건 아니다.
피할 수 있는 고통이라면
피하는 게 옳다.
풍파가 지나간 자리에 검은 자국만
남는 건 아니다.
오늘날 행복과 감사를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건
지난날 삶의 고초 속에서 겪은
진통 덕분이다.
아픔이 남긴 흉터는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상실이 지나간 자리는 좋은 인연으로
채워진다.
잃은 만큼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한정원 작가님은 책<시와 산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사람의 마음은 가장 커진다.
너무 커서 거기에는 바다도 있고
벼랑도 있고 낮과 밤이 동시에 있다.
내가 존재하는 한 내가 잃은 것도
내 안에 존재한다는
초월적인 시간에 바쳐진 마음은
이제 우주보다 더 커진다.
그렇게 커진 마음은 더는 허무하지 않다.
수만 년 전에 죽은 별처럼,
마음속에 촘촘히 들어와 빛나는 것이
있어서이다.”
제주도 섭지코지에서
길을 잃었던 적이 있다.
환한 낮일 때 움직였는데
어느새 금세 어두워졌다.
제법 캄캄해서 한참 헤맸다.
휴대폰 플래시를 켰지만,
눈앞만 희미하게 밝을 뿐이었다.
플래시를 껐다.
그랬더니 저 멀리 등대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보였다.
그 빛을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갔다.
마침내 주차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는
오히려 가까운 작은 빛이 시야를
가릴 때가 있다.
촛불을 잠시 끄고 어둠에 눈을 적시면,
그제야 저 멀리 있는 더 큰 빛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깊은 절망 속에 있을 때도 어딘가에서
당신을 비추는 환한 별이 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