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9화.
아이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밤을 꼬박 새워 얼굴이 수척했으나 표정만큼은 어쩐지 신이 나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랬다. 어서 동이 트기를 간절히 바랐다. 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아이는 목도리를 단단히 동여맸다. 추워서 깨면 안 되니까. 겨울잠을 오래 자야 했다. 오랜만에 먹는 터라 조금 게워냈으나 아침도 든든히 먹었다. 소냐에게도 사료를 한 그릇 퍼 주고 목까지 이불을 덮었다. 곧 볼 거야. 다녀올게. 문은 열어두었다. 혹시 돌아올지도 모를 볼로디미르를 위해 쪽지도 써서 문에 붙였다.
지켜주신 게 맞아요. 감사합니다. 또 봐요.
잠을 이루지 못했던 어젯밤 아이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했다. 아사(餓死). 가장 멍청한 방법일 터였다. 본능을 거스르지 못할지도 몰랐다. 본능이 닿지 못하는 적정거리가 필요했다. 낙사(落死). 상상만 해도 괴로웠다. 육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은 없었으나 구태여 고통을 보태고 싶지 않았다. 교사(絞死). 준비절차가 너무 까다로웠다. 키도 닿지 않을 터였다. 익사(絞死)는 싫었다. 깜깜한 강 저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 무서웠다. 하는 수 없었다. 하늘을 보며 단시간에 잠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였다. 아이는 약국에 들어가 진통제 여섯 통을 집었다.
언덕을 올랐다. 고작 여덟 살 난 아이에게는 꽤나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그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다 괜찮다. 갈 곳 잃은 미움도 원망도 묻어두면 될 일이었다. 아이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복수였다. 어쩌면 칼 보다도 더. 정상은 꽤나 아름다웠다. 아이는 가쁜 숨을 잠시 고르고는 풀 밭에 드러누웠다.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살며 보았던 하늘 중에 가장 파랬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이렇게나 야속한 것을 보면 역시 기적은 있을 수가 없었다. 죽는 순간까지 하늘이나 실컷 보다 가야겠다. 아이는 일어나 진통제를 손바닥에 가득 털었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아이는 입안 가득 약을 구겨 넣고 벌러덩 누웠다.
툭.
아이의 얼굴 위로 물이 떨어졌다. 투툭. 비는 아니었다. 익숙한 냄새. 어릴 적 맡아본 냄새였다. 타티아나가 떠나기 전날 밤 잠든 그의 얼굴을 쓰다듬던 그녀의 손길 사이로 떨어지던 그 냄새. 잠에 들려던 그 찰나의 순간이었고 당시는 내일이면 그녀를 볼 수 없을 것이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맡아볼 수 없었다. 그 냄새는 아이와 볼로디미르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냄새에 대한 기억을 스스로 만들어낸 착각으로 여겼다. 이 냄새가 맞았구나. 목구멍이 아렸다. 콧 속이 간지러웠다. 눈앞이 흐려졌다. 아이의 눈 끝을 타고 귀 뒤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입 안에서 진통제 몇 알이 굴러 나왔다. 묵은 감정들이 목을 타고 넘어왔다. 수면제를 모조리 뱉어내야 했다. 아이는 파란 하늘을 향해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그제야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때가 되었구나. 졸음을 이길 수 없었다. 애초에 이길 생각조차 없었다. 눈을 감았다. 하늘에서 비를 퍼부었고 몸을 덮었다. 아이는 겨울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