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베트의 만찬

가족은 어디에나 있다

by 이너위키InnerWeaki


나는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다.


피를 나눈 혈연?

같은 지붕 아래 사는 관계?

함께 밥을 먹는 사이?

멀어지고 싶어도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인생의 출발점이자 종착지?


미국 디씨, 뉴욕, 제주.

나는 평생 만나본 적도,

안다고 할 수도 없는,

생판 남이자,

처음 알게 된 낯선 인생들과,

함께 인생을 나눴다.


그들과 함께 저녁을 나누고,

늦은 밤 집으로 귀가하던 나는 생각했다.


가족은 어디에나 있구나.

그동안 나는 가족이 무엇인지 몰랐구나.




외동딸로 태어나,

사랑을 독차지했던 나는,

동료의 말마따나 홀케이크의 호사를 누렸다.

형제와 내 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나만이 오롯이 독차지했다.


그것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나는 혼자 케이크를 차지하고는,

양껏 퍼먹으면서도,

이 달콤함이 주는 기쁨을,

홀로 삭혀야만 했다.

그러자 단내가 고여 썩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걸 가졌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애써 바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깊은 곳에서는 목이 탔다.

사랑이 고팠고,

따뜻함이 그리웠다.


혈연으로 맺어진 나의 유일한 가족인 부모님은,

한국의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도 지극히 평범했다.


그들의 삶을 다 바쳐 나를 키워냈고,

한치의 후회도 없이 세월을 달려오셨다.


때로는 서로의 치열한 삶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우리는 그저 저녁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한 방향을 보고 앉아 티비를 보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우리는 그 숱한 세월을 함께 살았음에도,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법을 알지 못했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서로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가족이 나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나는 어떤 심정으로 이 관계를 붙들었는지,

나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결국,

어느샌가 나도 이해하지 못할 그 시점엔,

그러는 게 너무 당연하게 되어,

가족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

그냥 그러는 게 좋겠다 생각했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굳이 과한 힘들을 들이지 않고도,

바람처럼 홀연히 집을 떠났다.




디씨, 뉴욕, 제주, 그리고 다시 서울.

나는 세상을 누비고 다시 서울에 왔다.


나는 누군가의 딸, 친구, 지인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경험들 속에,

나는 세상과 사람을,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가족의 진짜 의미였다.


천성이,

서로의 인생을,

저 밑바닥까지 열어보고,

열어보이길 원하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순간처럼 스쳐가는 시간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당연함으로 흘러갔던 관계들이,

너무도 아까워졌다.


그들이 나라는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서,

내가 먼저 그들을 열어볼 생각을 하지 않고,

관계를 단순히 정의 내렸던 경솔함이 후회가 됐다.


나는 떠돌아다니던 시간 중에서,

기억을 되짚는다면 눈물로 마무리될,

평생 잊을 수 없는 애틋함이 되어버린,

가장 따뜻했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디씨에서의 인종이 서로 달랐던 룸메이트들,

뉴욕에서의 전공이 달랐던 룸메이트들,

제주에서의 성격이 달랐던 직장 동료들,

그들과 정성스레 준비했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음식과,

웃음, 때로는 슬픔과 대화로 버무려진,

만찬들을 떠올렸다.


나는 서울에 와서,

가족의 의미를 처음부터 다시 쌓기 시작했다.

Q & A 다이어리를 가족에게 선물했고,

한 달에 한 번 본가를 방문해 식사를 시작했다.


설렘으로 만찬 음식을 골랐고,

만찬에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장을 보았고,

함께 요리하고 식사했고,

차를 마시며 서로 다이어리에 쓴 내용들을 이야기했다.


생전 처음 듣는 아빠의 신앙 이야기,

처음 털어놓는 나의 예민한 성정에 대한 이야기,

중재하기 바빴던 엄마와 아빠의 불만 가득한 이야기,

엄마가 자아를 찾는 이야기.


대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두 뺨이 상기되어 터질 듯 붉어졌다.

대화를 많이 하면 으레 두통이 찾아오지만,

그날만큼은 어쩐지,

미국과 제주에 두고 왔던,

생기를 되찾은 듯했다.


그날 자취방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이렇게 만찬을 하듯이 살아도 좋겠다.


내가 입을 옷,

내가 먹을 음식,

내가 가질 것들에,

품을 들이고 돈을 들이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고 사랑해야 할 이들과의,

단 하루의 저녁 만찬에 들여도 좋겠구나.


예민함과 비좁은 정신적 여유 공간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 사적인 약속을 잡는 것도,

체력과 정신 모든 것이 고단한 내가,

사람에 대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매일 옆에 두고서 붙들지는 못해도,

그들의 인생을 내 삶 한가운데 놓지는 못해도,

때때로 그들을 위해,

성대한 만찬을 열어줄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영화 "바베트의 만찬"을 보고 결심했다.

삭막하고 의미를 찾기 어려운 서울의 삶 속에,

만찬을 열어야겠다고.


때로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 나의 집으로 찾아와,

열심으로 차려낸 따뜻한 만찬을 맛보고,

식사와 대화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상처받은 서울살이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오래도록 식지 않을 온기를 간직해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찬을 하는 이유가 있겠구나,

나는 덩달아 생각지도 못한 생기로 채워지겠구나,

그렇게.


아침에 묵상하는 글에서,

"지금, 잠시 동안 하나님께 물어보세요.

내 인생 속에서 내가 도와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들이 누군지,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요."

이 구절을 보았을 때,

나는 만찬을 떠올렸다.


나는 그렇게 다시 저녁을 맞이했다.

내가 가진 것을 털어 만찬을 준비하고,

성대히 차려내고,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들 모두에게,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한 순간으로 남길,

간절히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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