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평행이론

돌고 돌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우리를 위하여

by 이너위키InnerWeaki


첫 만찬에 누구를 초대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

제주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가 유학을 떠난다 하여,

떠나기 전 응원과 격려를 담아,

맛있는 배웅을 하기로 했다.


세 명의 친구들을 알게 된 건,

순전한 나의 행운이었다.


나는 제주에서 일하던 당시,

다양한 인턴 혹은 영프로페셔널(YP)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예산이 적은 이 분야의 특성상,

일손이 귀했기에,

이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했다.


그러나 소중함에도,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선호하는 사귐의 방식도 다르기에,

보통 7개월이 최대 계약 기간인,

이 친구들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고,

잠시 만났다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상사의 역할을 해 본 적이 없어,

사회 초년생인 그들에게 다가가는 법도,

효과적으로 일을 분배하고 관리하는 법도,

아직은 잘 알지 못했던 나의 부족함이 컸겠지만,

대개 일이 끝나면,

개인적인 인연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 세 명의 친구들은 달랐다.

처음 입사부터 퇴사까지,

어린 나이임에도,

오히려 내가 배우는 시간이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늘 밝은 기운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었으며,

주어진 일을 최대한으로 해내려,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더 나아가,

아무래도 상사인지라 불편하고,

거리가 필요했을 텐데도,

단순한 사회생활 이상으로,

먼저 다가와 알아가고자 하는 그 진심이,

넘치게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러다 결국 내가 먼저 퇴사하게 됐고,

그 친구들도 계약이 끝나 퇴사하게 되면서,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도중,

나와 가장 가깝게 일했던 친구가,

좋은 기회로 유학을 가게 됐고,

나는 그 친구의 밝은 미래와 꿈같을 그 시간들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미국 디씨, 뉴욕, 제주에서 그랬듯,

온 마음을 다해 만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만찬을 하기 전에 치르는 의식이 있다.

만찬에 요리할 메뉴들을 그린,

메뉴판을 직접 만드는 일이다.



이번 만찬은,

첫 코스로 연어 아보카도 타르틴과,

까망베르 사과 타르틴을,

두 번째 코스로는 코티지 파이,

세 번째 코스는 까르보나라 파스타,

네 번째로는 치즈 베이컨 감자,

마지막은 초코 도넛을 디저트로 내올 계획을 세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마치 바베트 만찬의 바베트가,

로또 맞은 당첨금을 모두 털어,

최상품의 식재료를 구해왔던 것처럼,

나도 가장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이 찌는 더위에.


먼저 서래마을에 바게트를 구하러 갔다.

프랑스 사장님이 운영한다는,

'메종 고댕'이었다.



정말이지,

나중에도 말하겠지만,

너무나도 훌륭한 맛이었다.

바게트는 너무나도 고소하고 풍미가 있었다.

남자친구는 손등을 때리는 나의 만류에도,

요리를 준비하는 내내 바게트 조각을 집어 먹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류는,

성수 베이킹 스튜디오의 겉바속쫄깃 바게트가,

더 가까웠지만,

이것도 못지않게 훌륭했다.


바게트를 한 손에 들고,

나머지 재료들을 구하러 근처 마트에 들렀다.

사실 더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해외 식재료가 많은,

이마트나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를 가고 싶었으나,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의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더위에 취해 비몽사몽 하며,

살기 위해 근처 마트에 뛰어들어간 결과는,

처참했다.


처음엔 프랑스산 고급 치즈를 파는,

서래마을 치즈 가게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시간도 없고 예산도 부족한 데다,

더위까지 먹어 포기했다.


그래도 프랑스 산은 포기하지 못해,

마트를 전부 뒤졌으나,

안타깝게도 동네 마트인지라,

치즈의 종류는 별로 없었고,

일전에 타르틴을 만들었을 때 시켰던,

프리미엄 연어와는 달리,

마트에 진열된 연어는,

탱글한 느낌이 살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호두를 사이에 두고,

남자친구와 실랑이까지 벌였다.


아무래도 예산이 한정적이고,

애초에 화려한 만찬을 위해,

두 개의 타르틴을 하겠다 고집했던 것은,

나였기 때문에,

미리 정한 예산을 초과하는 부분은,

내가 자원해 내겠다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비싼 호두 가격에,

고민하는 나를 보던 남자친구는,

나를 너무 희생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호두 정도는 생략해도 되지 않겠느냐 했고,

레시피를 고집하던 나는,

그럴 수 없다며 끝내 호두를 카트에 넣었다.


물론 잘게 다진 호두를 뿌린,

까망베르 사과 타르틴을 먹은 손님들은,

"호두가 킥이었어요"라는 평가를 남겼고,

나는 우쭐해 남자친구를 바라보았다.


약속 시간이 다가와,

서둘러 돌아가려던 길에,

택시마저 잡히지 않아,

지글거리는 태양 아래,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든 채로,

우리는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만찬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것은,

맥락에 맞지 않게도,

결혼이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찬 준비를 혼자 하는 것이 버거워서도, 뭐,

조금은 영향을 주었겠지만,

함께 준비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쩐지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이렇게 결혼해서,

사람들을 초대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즐거운 시간을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닌,

나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시간을 목도할 수 있음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잠시,

생각보다 해야 할 요리 준비가 많아,

남자친구가 나를 진정시켜야 할 정도로,

나는 허둥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후숙 됐을 거라고 믿었던 아보카도는,

말 그대로 생이었고,

사과는 생각보다 오븐에서 오래 익혀야 했다.



결국 덜 익은 아보카도는 제외한 채,

라임만 뿌린 연어가 심심한 타르틴에 만족해야 했고,

오래 익어 조금은 타버린 사과가 어쩐지 부끄러운,

까망베르 사과 타르틴이 준비됐다.


나는 타르틴은 거의 남자친구에게 맡기고,

다음 코스 요리인 코티지 파이에 뛰어들었다.


손님들이 식사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우리가 레스토랑 서버는 아니기에,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해야 하므로,

최대한 중간에 요리를 하지 않고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놓고자 했다.


양파를 잘게 다져 올리브오일과 버터에 먼저 볶고,

추가로 다진 소고기를 넣어 볶은 후,

토마토소스, 프로방스 허브, 후추를 넣어 마무리했다.


그와 동시에,

다이소에서 구매한 구황작물 전자레인지 찜기로,

감자를 쪄내고,

으깬 후,

우유와 후추, 소금, 버터를 넣고 섞어,

매쉬 포테이토를 만들었다.


볶은 것들을,

그라탕 오븐 용기에 넣고,

그 위에 매쉬 포테이토를 덮은 후,

포크로 윗부분에 무늬를 만들어,

언제든 오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까르보나라는,

남자친구가 식사를 하던 도중,

우리는 계속 식사를 하라며,

몰래 자리를 떴고,

웬만한 아주머니 못지않게,

뚝딱뚝딱 요리를 완성해 냈다.


남자친구는 워낙,

닭볶음탕, 김치찌개, 된장찌개, 파스타, 스테이크 등,

못하는 요리가 없었다.

게다가 맛은 장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내 입맛에는 딱 맞았기에,

딱히 걱정은 없었다.


역시나,

우유가 부족했음에도,

기지를 발휘해,

맛있는 파스타를 완성한 남친에게,

혀를 내둘렀다.



마지막 요리는 치즈 베이컨 감자였다.

사실 이 요리를 설명하기 전엔,

남자친구와 둘이 졌던 죄를 고백해야 한다.


인원이 5명이기에 필요한 식기를 사느라,

생각보다 돈이 오버됐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딜레마에 빠졌다.


그리고 옆에서 속삭이는,

남자친구의 고마운 유혹에 넘어가,

감자로 친구들의 배를 채워,

배부르다는 착각을 심자는,

교활한 전략을 세웠더랬다.


친구들이 잘 먹어줘서,

다행이었지만,

한 구석에 자리한 찔리는 마음은,

내 몫이었다.



이쯤 되니,

이야기도 서로의 감정도 무르익어갔다.


우리는 친구들이 가져온 술과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며,

그간 보지 못했던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나누었다.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는,

새로이 펼쳐질 이국 땅에서의 삶에,

약간 들떠있었고,

맨몸으로 홀로 미국에 갔던,

그리고 그곳에서 상상도 못 할,

충만한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온,

나의 과거와도 겹쳐 보여,

나까지도 설렘에 물이 들었다.


또 다른 친구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이 친구는,

이 분야에서 가장 필요한 자질이 영어였으나,

영어에 자신이 없다고 느꼈고,

일하는 동안 도전을 많이 받은 듯 보였다.


그러나,

이 친구 특유의,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과 고집으로,

불평하거나 칭얼거리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멋진 청춘을 살아내고 있었다.

지켜보는 이마저 대견스러워질 정도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오늘의 만찬이 어쩌면 이 친구를 위한 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위로가 오고 갔던 시간이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다른 직장에 이직했던 친구는,

생각보다 많은 일과,

초년생이라면 으레 겪는,

하지만 당연함이 참 서럽고 속상하게 느껴지는,

이러저러한 일들로

고된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제주 첫 입사 당시,

가장 밝고 선했던 친구라는 인상을 받았던 만큼,

본인은 드러내지 않았으나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이 친구의 지친 표정과 한 풀 꺾여 버린 기운에,

요령 없고 티 없이 밝았던 나의 초년 시절이 떠올라,

괜시리 코끝이 시큰해졌다.


만찬이 이들의 찬란하고,

어쩌면 때로는 버거울 앞길에,

작은 쉼표가 되었으면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건 내 오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되려 한 때 정말 애정했던 이들을,

벗어나고픈 서울, 나의 식탁으로 초대함으로써,

오히려 위로와 따뜻함을 쥐었던 건 나였다.


이제는 너무도 달라져 버린,

각자의 일상과 꿈, 미래를 두서없이 나누면서도,

무언으로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감사를,

주고받은 이 시간이,

나의 또 다른 만찬의 기억에,

하나의 파편이 되어 박혔다.


그러다가도,

서로의 어깨에 놓인 짐이,

결코 우리를 낙담시키지 못하도록,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초코 도넛은,

채 해동이 될 시간을 감당하지 못한 채,

오븐 안에서 재가 되어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드리워진 그늘을,

또 한 번 웃으며 털어냈다.



첫 만찬이 끝나고,

막차 시간이 다 되어,

친구들을 하나 둘 배웅하고 난 후,

남자친구와 함께 단 둘이 그런 얘기를 했다.

오늘 이 만찬을 하길 잘했다고.


누군가의 설레는 여정과 도약을,

진심을 다해 축하하고,

또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져주지는 못해도,

그 시간 속에서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설 수 있게 되는,

이런 만찬의 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어쩌면 지리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삶을,

그저 초점 없는 시선으로 흘려보내기보다,

내게 주어진 환경과 시간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주변의 이들과,

함께 나누는 삶이,

그 무엇보다도 눈부시다는 것을,

나는 점점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 나는 유한한 인간으로서,

매섭게 쫓아오는 시간에 짓눌려,

내가 가졌던 시간들을 모두 잊은 채,

요즘 같은 또 다른 언젠가는,

기쁨도, 삶의 의미도, 재미도, 감사도,

다 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4년간의 여정을 통해 배웠듯,

앨범을 열어 그때를 다시 펼쳐 놓는다면,

그 당시 심어 놓은 기억의 파편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그날의 감정과 행복, 충만, 사랑, 감사,

그리고 삶에 대한 찬란한 희망까지도,

다시 한 움큼 쥐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식탁에서의 오늘이,

미래의 어느 날엔가 지쳐있을 나와 그들 모두에게,

그런 기억이 되었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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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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