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를 가나, 나는 가족이 있다

by 이너위키InnerWeaki


미국 디씨에 있을 때,

대학교 캠퍼스 앞,

오래되고 낡은 교회 건물 옆에 딸린,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하우스에서 살았다.


그곳은 마치 천국 같았다.

살기가 좋거나 마냥 행복해서 천국이 아니었다.


되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바퀴벌레가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는 것을,

어찌할 바 모른 채 멍하니 지켜봐야 했고,

옆 방 룸메가 대마를 피우는 냄새를,

고스란히 맡아야 했던 불편함을 생각한다면,

그런 천국은 아닐 터였다.


다만 내게 천국의 이미지는,

모든 인종, 갖가지 생김새, 모든 인생들이,

한 데 모여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는데,

그곳이 바로 그랬다.


지하실에는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한국계 미국인,

2층 가장 넓은 방에는 무슬림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2층 두 번째로 넓은 방에는 토종 한국인인 나,

2층 마지막 방은 순혈 백인이 살았다.


세계의 축소판인 붉은 벽돌집 하우스와 미국에서,

우리는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이야기했다.


어느 겨울 저녁엔 소파에 누워,

배에 담요를 덮고,

빨강머리 앤 넷플릭스를 보며 테킬라를 마셨고,

밸런타인데이 때는,

화병에 꽃을 꽂고,

베이킹을 좋아했던 룸메가 구워낸 초콜릿 딸기 케이크와 함께,

빵과 딸기 꼬치를 치즈 퐁듀에 찍어 먹었다.


발렌타인 만찬.HEIC


한 날은,

학교에서 만났던,

인도 친구, 중국인 친구를 초대해,

인도 커리, 한국 불고기, 중국 두부요리 등,

서로가 가져온 각자의 자부심을 차려냈다.


밤새 먹고 산책하며,

유학생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서로 위로했고,

밤하늘에 던져 별과 함께 박아 두었다.


각자의 요리.HEIC


어느 날엔 음식과 담요를 챙겨 피크닉을 떠났다.

잔디밭에 누워,

와인잔을 기울이고,

사진을 찍고,

과일과 크래커를 먹으며,

산다는 것은,

자연을 나의 인생으로 자주 초대하는 것이라며,

여유를 한 움큼 쥐어왔다.


공원 만찬.JPG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의 시기를 헤엄칠 때,

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언니들이,

바깥이 두려워 동굴에 박혀 있던 나를,

끄집어내어 식탁에 앉혔다.


집에서 월남쌈을 해 먹으며,

성시경의 노래를 듣던 그 순간이,

지금도 성시경의 노래를 틀 때면,

그때의 공기와 감정이,

나를 잠식해 버릴 정도로,

여직 생생하다.


나는 그들과 저녁을 나누었고,

그렇게 디씨에 가족이 생겼다.


월남쌈.JPG




뉴욕에서 인턴을 하기 위해,

퀸즈에 이사를 왔을 때는,

나의 인생 두 번째로,

처절한 고독에 몸부림치는 시간을 맞이했다.


외로움에 밤새 눈물을 흘리고,

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어도,

보험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홀로 밤새 울던,

그 끔찍할 만큼 처절히 외로웠던,

두 달여간의 시간이 끝날 무렵,

한국인 룸메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각자 직장에서의 업무, 수업,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각자 먹을 음식을 요리해 거실로 모였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하루의 일과에 대해 얘기했고,

보드게임을 했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채 식지 않은,

서로의 상처를 꺼내어 놓았다.


보드게임.HEIC


어느 크리스마스엔,

메뉴판과 가랜드를 직접 그렸고,

네임택을 손수 만들어 테이블에 올렸다.

우리는 함께 요리하고 거실을 꾸몄다.


서로가 초대한,

생면부지의 손님들과 함께,

갓 나온 김이 나는 스테이크와 파스타 요리들을 나누어 먹으며,

가족이란,

일 년의 어떤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식탁으로 모여야 하는 것이구나,

홀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마스 만찬.HEIC


새해가 코앞에 다가온,

그 설레던 어느 날엔,

다 같이 모여 함께 다과를 나누며,

새해의 목표와,

일 년 동안 내게 일어났던,

가장 중대한 사건 TOP10을 발표했다.


가족이란,

서로의 일 년을,

묻고, 나누고, 기억하는 것이라는 걸,

서로의 시간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뉴욕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함께해 준,

친한 언니의 소개로 알게 된,

여리고 심성이 고운,

천사와 같은 언니를 만나,

뉴욕의 곳곳을 다니며,

중국, 아프리카, 인도, 남부 미국, 그리스 등,

세계의 요리들을 도장을 깨듯 먹으러 다녔다.


새로운 맛에 눈이 뜨이면서도,

언니가 조심스레 건넨 아픔과 고통의 이야기들을,

존경과 속상함으로,

조심히 받아 들었다.


그렇게,

뉴욕에 또 하나의 가족이 생겼다.


그리스.HEIC
인도음식.HEIC


아프리카.HEIC





그리고 마지막,

지지리도 많이 싸우고,

서로를 참 애절하게도 이해했던,

나의 동료들이자,

나의 전우인 그들이,

제주에서의 가족이 되었다.


한 날은,

속절없이 떠나려는 찬란했던 여름을,

차마 떠나보내지 못해,

소매 끝자락을 잡아채듯,

여행을 떠났고 바비큐를 구웠다.


제주 바베큐.jpg


또 어떤 날은,

회사 사람들이 하나둘씩 싸 온,

반찬들을 양푼에 한 데 몰아넣고,

서로의 숟가락을 부딪히며,

함께 밥을 비볐다.


아마도,

우리는 그날,

그 어떤 회사를 가도,

다시는 겪지 못할,

풍성하고 따뜻한 밥 한 끼를,

서로에게 대접했는지도 모른다.


태움으로 고통받았던 지난날,

지긋지긋해진 제주를 등지려 했던,

나의 고통이 무색하게도,

고통 속에서 써 내려갔던,

눈물 어린 나의 기도처럼,

나는 제주에서 나의 가족들과 천국을 이루었다.


비빔밥.HEIC





나는 그 모든 파편난 시간들을 끌어안았다.

너무도 눈이 부셔 눈물이 흐를 만큼 간절한 시간이었다.


나의 분주하고 고달팠던 27년의 생애 동안,

처음으로 숨이 트였던 그 눈부신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남이 가족이 되는 기적을 보았다.


물론 가족이라는 것이,

영원해야 하고,

누구보다 가까워야 하고,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면,

어쩌면 나는 그 무엇도,

가족이라 부를 수 없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정의하는 가족이란 이렇다.


추운 겨울,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는 것처럼,

속 깊은 곳까지 데우는 그런 따스함이,

고작 내 속엔,

찰나를 머물고 사라질지라도,

그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오래도록 사라지지 못할,

후덥지근 한 여름이 되었다면,

그래서 삭막한 겨울이 찾아와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따스했던 잔상을 기억해 내어,

추운 인생을 조금이라도 버티게 해 준다면,

우리는 가족이었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는 나의 인생을 방랑자로 정의한다.

미국에 갔던 인생 2막을 시발점으로,

다양한 도시와 문화를,

그리고 그 속에 더 복잡하고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고 수용하고 사랑하며 떠도는,

방랑자가 되고자 한다.


정착하지 못한 이들이 대개 그렇듯,

평생 살 부비고 사는 관계가 없기에,

외로움과 고독은 불시에 덮쳐,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두 눈의 온기마저 꺼트리고,

나의 속 깊은 곳으로 칠흑 같은 동굴을 파내려 가나,

내가 옮겨 가는 그곳이 어디든,

모든 두려움과 불안,

고독이 심어 놓은 인간을 향한 싸늘함을 부정하고,

그곳에서 언제고 다시 가족을 만들고 싶다.


다시 저녁이 오면,

나는 만찬을 차려 낼 것이다.


그리고,

지치고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식탁으로 초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 아픔과 기쁨을 얘기할 것이다.


그래서 세계 어디를 가나,

찬란하고 눈부신,

나의 인생 조각들을,

곳곳에 숨겨 놓아,

인생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내내,

허무와 싸울 그 적에,

숨겨 둔 파편을,

하나씩 비춰보려 한다.


그렇게,

나는 모두와 가족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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