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마음만 있다면

6년 만에 만났어도, 어색할지라도

by 이너위키InnerWeaki


한창 꿈을 꾸던 나의 24살,

미국 변호사가 되고자,

독서실에서 인강을 들으며 공부하던 나는,

인강을 결제하기 위해,

동네 작은 교습소에서,

영어 강사로 일한 적이 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토종 한국인으로 독학을 해왔던 나는,

내가 사랑하던 영어를,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할까,

고민하고는 했다.

그때 중학생이었던 이 아이들을 만났다.


두 아이 모두,

처음에는 조용한 성격에,

낯을 가리던 친구들이었다.


단발머리와 긴 머리 소녀, 둘.

공통점이 있다면,

눈을 가리는 긴 앞머리였다.


가까워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구나,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이라면 상대의 눈치를 보며,

다가가도 될지를 저울에 달아보았겠지만,

그 당시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없고,

괜한 자존심과 자신감이 넘치던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무심하면서도 과감히 담을 넘어갔다.


그런 오만한 경솔함이 통했던 걸까.

아이들은 어느샌가,

조용한 목소리로 '선생님'하고 부르며,

여전히 입을 손으로 가리며 웃었지만,

장난이 가득했던,

순수하고 해맑은 웃음만큼은 가리지 못했다.


하루는 학원을 들어서는데,

원장선생님으로부터,

아이들의 통통 튀어 오르는 웃음 뒤,

가려져 있던 그늘을 전해 들었다.


그제야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의 두려움과 미세한 경련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숨이 잘 안쉬어 진다며,

수업 중에 뛰쳐나간 아이의 뒷모습에서,

또 어떤 하루는,

힘없이 쥔 샤프로 써 내려간 영어 문장에서,

나는 아이들을 엿보았다.


당시는,

나도 아직은 세상을 알지 못했던,

이십 대 초반의 어른아이였기에,

때로는 답답함에 다그치며,

아이들을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미성숙했던 나를 되려 끌어안으며,

내게 맹목적인 사랑을 퍼부었다.


퇴근 후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지하철 역까지 따라와 배웅했고,

힘든 시간들을 서로를 의지하며,

때로는 그 시간에 나를 끼워주기도 하며,

자신들의 울타리에 나를 초대했다.


우리는 그렇게,

내가 학원을 그만두던 그날까지,

10개월을 함께 했다.


마지막 날,

과자파티를 하자던 아이들의 말에,

아이들이 준비한 모자를 쓰고,

과자 봉지를 책상에 펼쳐 놓고,

그간의 추억을 과자와 함께 목으로 넘겼다.

추억이 될 마지막 사진과 함께.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일 줄 알았다.

아이들이 6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안부인사를 카톡으로 보내오기 전까지는.




요리 준비.HEIC


아이들은 정말 매일 카톡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쌤~'

'오늘도 안녕하세요~'

'쌤, 안녕하세요~'


처음엔 반갑게 꾸준히 답을 하며 인사했지만,

곧 바빠지면 나를 잊겠지 싶었다.


으레 그 나이 때는,

친구가 더 재밌고,

호기심은 계속해서 시선을 앗아가니,

금세 잊히겠지,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꽤나 집요하게 나를 찾았다.


유학 준비를 할 때에도,

디씨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도,

뉴욕에서 인턴을 할 때에도,

제주에서 일을 할 때에도,

그리고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는 현재에도.


아이들은 매일 안부를 물었다.

가끔은 서로 연락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잊어갈 즈음,

어김없이 아이들은 나를 다시 찾아왔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테이블 세팅.HEIC


다시 만난 아이들은,

몰라보게 성숙해졌고,

우리는 6년이라는 공백이 미처 채우지 못한,

달라진 서로의 모습을,

어색하지만 티 내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고자 했다.


하지만 이내 분명해진 것은,

외모는 달라졌을지라도,

입을 가리고 웃는 조심스러움이나,

유독 싱그러움이 가득한,

수줍지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와 제스처는,

그대로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6년 전 그때로 돌아간 듯,

일순간 긴장된 몸과 표정이 풀어졌고,

그리움과 편안함,

그리고 어느 구석엔가 밀려드는,

씁쓸함까지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요리 완성.HEIC


아이들은 이제 막,

새로운 세계를 찾아,

닻을 올리고,

배를 띄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냥 어린아이인 줄만 알았던,

아이의 어깨에,

작은 문신이 그려진 것을 보고,

바다와, 갈매기, 바람, 망원경,

지나치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반짝이는 코를 대고,

세상의 모든 향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 설렘이 싱그러웠다.


나도 세상이 온통,

새로움과 신기함으로,

때로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때가 있었지,

생각하며 웃다가도,

더는 일상에 새로울 것이 없어,

반짝이지 않는,

어느새 무뎌진 감각이,

조금은 서럽기도 했다.


그러나 또,

태생부터 놓여 있었던,

고향에 내려진 닻 주위를 서성이며,

나아가길 조심스러워하는,

또 다른 친구의 모습엔,

그 두려움을 이해하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는,

나아가야 한다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진짜 나를 만나게 될 거라는,

경솔한 조언이 튀어나올 뻔했다.


어느새 먼저 경험했다는 이유로,

충분한 두려움과 망설임에 발을 적시지 않고,

건너뛰어버리려는,

나의 나이 든 청춘이,

못내 낯설었다.


요리 다른측면.JPG


회계 2년제 막학기를 다니며,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아이와,

간호 실습을 나갈 준비를 하는 아이.


사회로 나아가기에 앞서,

어쩌면 학생으로서 갖게 될,

처음이자 마지막일,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설레어하는 얼굴들에,

가슴 깊이 샘솟는,

응원과 격려,

그리고 부러움을 함께 흘려보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매번 새롭고 낯설었던,

주위의 모든 자극들이,

더는 내게 새로운 자극이 되지 못한 채,

이제는 익숙해진 것들을,

빠르게 지나쳐 버리기 때문이라고.


아이들의 눈에 비칠 나의 시간은,

어쩌면 지루하고 반복되는,

새로울 게 없는,

그러나 충분히 쌓아야 하기에,

냅다 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는,

그런 시간일 것이다.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저들과,

익숙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나.


어쩌면,

세상을 보다 찬란하고,

싱그럽게 살아가는 정도(正道)의 길은,

익숙함 속에서,

익숙하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닌,

익숙한 것은 익숙한 대로,

그러나 고이지 않고,

흘러갈 길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나의 통통배 한 척을 만드는 게 아닐까.


배가 완성되는 그날,

그때가 어쩌면,

이만하면,

익숙해진 나의 세상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향해도 된다,

그런 신호가 아닐까.


요즘을 버티고 있는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언제든 연락해"라는 말에,

"선생님이 연락해요. 언제든 달려올게요."라고,

되려 나를 품으려는 아이들을 보며,

과거의 아이들이 나의 손을 놓지 않았듯,

어쩌면 이 만찬은,

내가 누군가를 채워주려 시작했으나,

오히려 내가 채워지고 마는 식사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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