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조건이 무엇이든 너의 옆에 있을게
언젠가 엄마가 내게 털어놓았다.
집을 정리하다,
나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일기장에는 그런 내용이 있었다.
내가 사랑에 목을 매고,
이렇게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집착하며 갈증을 느끼는 것,
그리고 한없이 상처받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이제는 더 이상,
사랑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갈구하는 나의 처절한 모습이,
저주 같다고.
부모님의 불화,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
그리고 그늘진 나의 모습이,
어쩌면 평생,
나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겠다고.
나의 이십 대는,
처절하게 고통스러웠고,
외롭고,
아팠던 시간이었다.
젊어지게 해 준다고 해도,
두 번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그런 시간.
돌이켜보면,
늘 차이는 쪽은 나였다.
거의 대부분.
쉽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마음을 온통 뺏겼지만,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묘한 기류를 직감적으로 잡아내고 나면,
혼자 문을 닫아버렸다.
그 차가움과 단호함에,
상대는 마음이 깊어지지 않은 상태라,
홀연히 아무 미련도 없이 떠났다.
그러면 그제야 나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함이 치밀어,
비참하게 매달리는 쪽을 택했다.
그런 일들이,
몇 번을 반복되었음에도,
나는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저 내가 문제가 있다는,
모호한 확신을 품은 채,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한 채로,
그저 나는 평생 이렇게 살겠구나,
사랑을 받지 못한 채로,
외로이 탑에 갇혀 있겠구나,
예감했다.
그를 만났던 건,
제주에서의 어느 여름이었다.
지금은 남자친구가 된 그는,
처음엔 그저 단순히 이성으로서의 인식,
그뿐이었다.
그는 나보다 2달 늦게 입사했는데,
그의 첫인상은 날카롭고,
회의적이었으며,
방랑자 같았다.
심지어 프랑스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말에,
프랑스 남자에 대한 선입견까지 더해져,
경계를 했지만,
20대 내내 쌓아온,
혼란스러운 이성관이,
또다시 발동하고 말았다.
그것은,
별다른 큰 관심이 없어도,
일단 다가가고 보는,
경솔함이었다.
나는 성향상,
생각이 굉장히 복잡하고,
방대한 생각의 총량에 압도돼,
심지어 나조차 내가 어떤 마음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사랑에 대한 개념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이상적이어서,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사랑을 바라며,
처음에는 상대에게 무리 없이 다가가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면,
상처받을 내가 두려워,
한 발 물러서며 경계 태세를 갖추는,
그런 겁쟁이 었다.
옛날 버릇이 여전히 남아 있던 탓에,
나는 그에게도 별 의미 없이 다가갔다.
심지어 나는 매일밤,
불현듯 찾아오는,
우울감에,
목을 매려는 충동과 맞서 싸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기에,
나의 모든 행동이 불러올,
책임감을 버렸다.
밤공기가 달궈졌던,
한여름 제주의 밤하늘,
그리고 우뚝 솟은 야자수 아래,
편의점 벤치에 앉은 우리는,
서로의 슬리퍼를 툭 쳐서 날리며,
장난기와 설렘이 녹진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그는 그런 나를,
순수히 붙잡았고,
나는 얼떨떨한 채 그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그도 여느 다른 남자들처럼,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나를 버릴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조그만 흠이라도 발견되면,
그를 몰아붙였다.
초창기 우리의 싸움은,
거의 나의 도발로 시작됐다.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이내 나는 생각했다.
이제 헤어질 타이밍이구나,
마음을 준비해야겠다.
싸움엔 논리도, 이성도 없었다.
그저 불안정하고,
초라하고,
겁먹은 심연의 울부짖음이,
터져나올 뿐이었다.
그때의 마음은,
미칠 듯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기 싫어 미리 포기하는 것도,
그렇다고 아무런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닌,
그저 성문을 꽁꽁 닫아 놓고,
문 뒤에 등을 댄 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넋을 놓고 듣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럴 때면,
그는 어김없이 노크를 했다.
때로는 나오라며,
문 앞에 드러눕기까지 했다.
(이건 사실이다.
그는 진짜 나의 속마음을 말해달라며,
방에 드러누웠다.)
나는 문 뒤에서 생각했다.
그는 내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내가 뭐길래?
의아했다.
그와의 연애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제주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붙잡아 두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직도 그를 시험하고 있는 건지,
나조차도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때쯤이면,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채고,
혹은 나의 무심함에 지쳐,
떠나갔어야 함에도,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헤어지지 않았다.
되려 그는,
한 밤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자존심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을,
내게 털어놓았고,
나는 어리둥절하게 비밀을 받아 들고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그는 가시가 촘촘히 박힌 고슴도치같았던,
첫인상이 무색하리만큼,
사귄다는 선언과 동시에,
배를 까 뒤집었고,
내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속살을 내보였다.
그로부터 4개월이 걸렸다.
내가 마음을 처음 열게 된 날까지.
그날은 서울로 첫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서울 가는 비행기에 신나,
남자친구는 뒷전이었다.
신이 나,
짐을 싸고 있는데,
남자친구가 잘 다녀오라며,
마치 귀한 딸을 챙기듯,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얼떨떨하게 그의 보살핌을 받다,
그날 저녁 나는 문득,
처음 느끼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나의 편이구나
처음이었다.
그런 확신이 든 것은.
그날 이후로,
나는 그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그와 동시에,
그와 나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 어떤 커플보다도,
서로를 사랑하고 아꼈다.
잠시라도 떨어지면,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했으나,
결코 조급하지 않았다.
이전에 나를 사로잡았던,
강박과 초조함은,
신기하리만큼 남은 게 없었다.
그와 있을 때면,
그 누구보다도 즐거웠고,
평안했으며,
안정감을 느꼈다.
그 감정은,
심지어 우리가 떨어져 있을 때조차,
지속되었다.
이런 게 진정한 사랑이구나,
아무런 걱정도,
초조함도,
우울함도,
틈을 내주지 않을 만큼,
우리의 사랑은 견고히 맞물려 있구나,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도망치려 했을,
그의 가족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났음에도,
나는 이제 그런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이제,
나의 일부분이었다.
나의 손가락이었고,
나의 다리였고,
나의 전신이었다.
그의 사랑 또한,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졌다.
"잘 돼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 보내 줄 거야.
바닥을 친다고 해도,
쪽팔려하지 않을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은,
세상사람들이 기피하는,
구 씨를 두둔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드라마를 보며,
나는 그간의 나의 연애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했다.
"나도 그래 볼게요. 그래 보고 싶어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제주의 여름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우리는 함께,
제주에서의 1년 6개월을 보냈고,
서울에서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종종 나는 생각한다.
만일 제주에서 여름밤,
당연하다는 듯 사귀자던 그의 고백을,
모르는 척 넘어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만일,
그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기겁하고 도망갔더라면,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하고.
나는 지금의 나의 모습을,
너무도 사랑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낸 이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나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준,
나의 사랑하는 남자친구라는 걸,
나는 결코 잊지 않으려 한다.
어느 뜬금없는 날,
나는 남자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내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 같아."
남자친구는 2주년에 그런 편지를 써주었다.
"음지에 있던 나를,
양지로 이끌어주고,
사랑해 주고,
아껴줘서,
정말 고맙고 미안해."
우리는 더 이상 사랑에 인색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 순간이,
일분일초가,
너무도 아깝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평소보다는 초라한 만찬에,
미안한 감정을 추스른 채,
그에게 줄 닭칼국수를 요리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관점을 가진 사람인지,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나를 그대로 내어 놓아,
식탁에 올릴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나는 그와의 식사 시간을,
너무도 사랑한다.
다른 이들에게 화가 나,
속에서 부글부글,
감정이 들끓을 때,
그를 생각한다.
그가 내게 얼마나 감사한 사람인지,
기도를 올리고 나면,
순식간에 화가 사라지고 마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감사함,
그 감사함을 표현하고 살고 싶다.
평생 서로에게 감사하다 이야기하며.
생각난 김에 그에게 카톡 해야겠다.
너를 만난 게 나의 가장 큰 감사라고.
너가 어떤 조건이든,
어떤 모습이든,
네가 그래주었듯,
나도 네 곁에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