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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작희작 Jul 24. 2023

그 치우침에 대하여.


편: 여러 패로 나누었을 때 그 하나하나의 쪽.


“ 난 언제나 네 편이야.”


참 든든한 말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다면 나 또한 ‘그의 편’으로 다가가게 되는 그런 말.

‘편‘, 이 한 단어로 나를 세상 중심의 가장 안전지대로 데려와주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나 대신 이것도 좀 해주고 저것도 좀 해줘,

난 언제나 네 편이니까.


그는 ‘편’이라는 단어로 어느 날 나에게 무리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했던 20대 때에나 넘어가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편’이 됐다는 이유로 본인을 위한 ‘편의’를 취하는 것은 어디서 배워먹은 이기적 태도인가. 나이를 먹어도 글러 먹을 가능성이 높은 악질의 유형이다.


지금의 나는 이제 네 편, 내편을 논하는 것이 크게 의미 없음을 안다. 왜냐하면 세상의 중심은 언제나 각자 자신이고, 본인 입맛에 맞는 사람을 수시로 바꿔 ‘편’에 넣기 때문에 어제의 적이 오늘의 내편이 될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됐다.


사실 이러한 변덕은 의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로운 사람을 곁에 두려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의리를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고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편을 나누는 것은 어쩌면 ‘위험 인자’를 멀리 하려는 자신에게 가장 ‘인자’한 행동일 수 있다.


다만 편 나누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나와 다른 편이기 때문에 차갑게 등을 돌리거나, 같은 편이기 때문에 뜨겁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태도다.


또 다른 문제는,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편이 됐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 기쁨에 취해 자신의 개성보다 타인의 ‘편’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의 인정에 취해 진짜 내 모습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늘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그러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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