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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f Jan 16. 2020

아빠의 핫도그 설명서


오늘 점심은 얼마 전 코스트코에서 산 치즈 핫도그와 한식이었다.


안 어울린다고? 그렇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불과 1시간 전까지.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나는  3일 전부터 얼마 전 처음 사본 치즈 핫도그를 굉장히 궁금해하던 중이었다. 새로 우리 집에 온 음식은 우리들의 무료한 일상에 기대와 설렘을 툭 던지고 묵묵히 기다린다. 그리고 오늘 나를 기다렸던, 사실은 내가 기다렸던 그 핫도그를 드디어 만났다.

 

늘 그렇듯 엄마의 저녁 모임 약속이 있는 날 점심은 항상 간단한 샌드위치나 라면이다. 그 이유는 아마 나의 영향이 클 것이라 예상한다.

 

나는 왜인지 약속시간 바로 전 식사는 간단히 하고 싶다. 배부르게 먹으면 일단 졸리고, 대화가 잘 안된다고 느끼며 그냥 이유 없이 짜증 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얘기를 언젠가 엄마한테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엄마는 항상 약속이 있는 날이면 간단히 드시고는 했다.

 

어쨌든 간에, 이러한 이유로 나와 엄마는 이때다 싶어 냉동실에서 치즈 핫도그 2개를 꺼냈다.


참고로 현재 등장인물은 아빠, 엄마, 나 이렇게 셋이다. 근데 왜 2개만 꺼냈냐고 궁금해한다면 이 역시 설명이 필요하다.

 

아빠는 얼마 전 친구분한테 선물로 받은 한약을 드시는 중이다. 그래서 좋아하던 아메리카노와 밀가루를 되도록이면 피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란히 누워 전자레인지에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는 핫도그들에게 눈길을 한번 힐끔 주고는 깻잎과 계란 장조림, 멸치볶음, 김치가 놓인 식탁에 사뿐히 앉았다.


그리고 어느새 따뜻하게 데워진 핫도그 2개가 식탁 위에 등장한다. 엄마와 나는 눈을 빛내며 바삭한 빵가루가 있는 핫도그 빵 위에 늘 그랬듯 머스터드와 케첩을 S자 모양으로 겹쳐 쭉 그려주었고 아빠는 두 번째 눈길을 주었다. 엄마가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치즈가 주욱 늘어났고 엄마의 눈이 빛났다. 아빠는 그 순간에도 묵묵히 김치를 집고 계셨다. 아빠의 세 번째 눈길이 늘어나는 치즈로 향한다. 결국, 아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뭐든지 삼세판, 삼세번이라더니 아빠도 세 번째 핫도그와의 눈 맞춤에서 저 멀리 있는 한약 봉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아빠는 내 몫이었던 핫도그를 한 입 드시더니 조용히 나한테 말했다.

“ 네 거 하나 더 꺼내 “


결국 나는 하나를 더 데웠고 아까와 같이 케첩과 머스터드로 S 자를 멋있게 얹어주었다.


아빠의 핫도그가 한입쯤 남았을까.

구석에 있던 고추장을 보고 아빠는 갑자기 눈을 빛냈다. 오늘 엄마 아빠의 빛나는 눈을 동시에 본다. 새삼 다들 귀여우시다. 어쨌든 그러고서는 고추장을 콕 찍어서 드셨다. 아빠가 하시는 말

“ 오 칼칼한데? "


나는 한 번 웃어 보이고서는 두 입정도 남은 내 핫도그를 입에 가져가는 순간이었다. 아빠가 갑자기 핫도그의 나무 부분에 고추장을 쭈욱 짰다. 그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은 빵의 겉에 고추장을 얹은 게 아닌 핫도그를 베어 먹은 빈자리에 쓸쓸히 있는 그 나무막대 위에 고추장을 주욱 얹은 것이다. 그러고 아빠가 말했다.

“ 이러면 빵이 아닌 안에 있는 햄에 고추장이 묻으니까 더 맛있을 것 같아. "


그리고 나는 아빠 말대로 그대로 입속으로 핫도그를 밀어 넣었고 이번엔 나의 눈이 빛났다.

고소하고 짭짤한 소시지에 칼칼하고 달달한 고추장이 더해졌고 그 소시지를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빵가루가 살포시 감싸 안으며 입에 들어왔다. 그 맛은 가히 지금까지 먹었던 핫도그 중에 최고라고 단연코 말할 수 있다.

  

조금 더 맛 칼럼이 아닌 소설처럼 표현하자면 이렇다.


빵 위에 얹어먹는 설탕, 케첩, 머스터드 핫도그는 그냥 입천장에 닿아 말도 없이 사라진 첫사랑이라면 바삭바삭한 빵이 감싼 고추장을 묻힌 달콤 매콤 짭짤 고소한 햄은 입천장에 닿아 사라지는 것이 아닌 목 저 너머로 넘어갈 때까지 입 속에서 함께하는 그런 30년 지기 부부 같다. 우리 엄마 아빠같이.


일찍이 핫도그를 다 드신 엄마는 서둘러 약속 준비를 하느라 안방으로 들어가 있었고 식탁에는 나무 막대 위에 뿌려진 고추장, 그리고 남은 두 입의 핫도그를 주욱 밀어먹고는 눈이 빛나는 나와 그런 나를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빠만 존재했다.


엄마는 모르는 아빠와 나만의 핫도그 설명서.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 마트나 슈퍼마켓을 가 냉동 핫도그를 사보기를. 그리고 두 입정도 남아 나무 막대기가 보일 때쯤 그 위에 고추장을 살짝 얹어 남은 핫도그를 손으로 주욱 밀어 그 고추장을 감싸는 핫도그를 먹어보기를.


이왕이면 근처에 거울이 있으면 좋다. 거울이 아니라면 뭐 핸드폰 액정이라도. 아마 반짝 빛나는 당신의 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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