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해'라고 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대부분 나쁜 본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학습하면서 고쳐지게 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나'는 주위에 착한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은 지루함을 느끼는 생물이다. 많이 접하기에 '착함'이라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나쁨'이라는 새로운 것에 신선함에 느끼게 되어 나쁜 사람을 접했을 때 '처음에는 기분 나쁨'' 뭐 이런 X가지가 있어?'의 느낌이 점차 신선함, 호기심, 알고 싶음의 감정으로 변하게 되어 '끌림'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왜? 내가 태어나면서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되어서 그렇다. 즉, 이 말은 내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딸기맛 아이스크림만 먹었는데 새로운 초코맛이 출시해서 시식을 해봤다니 처음에는 쓴맛이 나더니 달콤한 맛으로 변하게 되어 내 최애의 아이스크림이 되는 원리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또 하나의 예시로는 내가 죽만 먹다가 어느 날 강력한 매운맛을 접했는데 더 이상 죽은 싱거워서 안 먹고 매운맛에 중독이 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또한 가치의 차이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떠한 것에 대해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착한 사람들은 "혹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닐까?" "피해를 주는 게 아닐까?" "그 사람이 싫어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 머릿속의 필터를 거쳐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게 된다. 또는 애인 관계일 경우 내가 애인한테 "뭐 먹고 싶어?"라고 물어봤을 경우 착한 사람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네가 좋으면 다 좋아"라고 하게 된다. 이렇게 행동하는 모습을 본 상대방은 '답답하다' '자기의 주관이 없다'라고 생각되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나쁜 사람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경우의 수는 성장 배경이 나쁜 사람들에게만 접해서 이것에 익숙해져서 나쁜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어머니, 선생님, 쓰레기 남자친구, 여자친구 등. 폭력을 당했을 때 나의 마음들은 무너지고 망가지고 아프지만 이것에 익숙해져서 "아.. 나쁜 사람이 그래도 편하겠다." "이것이 내가 사랑받는 방식이구나"해서 계속해서 나쁜 사람을 찾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착함과 나쁨이 공존하는 '츤데레'에게 더 끌리고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많고 좋은 사람이 적었더라면 필자는 아마 '나쁜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가 아닌 '착한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서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