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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Sep 22. 2023

죽을 때까지 글을 쓸 수 있을까

쓸수록 어려워지는 글

내가 소설을 처음 쓴 건 2006년, 고1 때였다. 그때의 나는 인터넷소설에 빠져있었고, 인터넷에서도 한창 소설이 올라올 때였다. 인터넷 소설 닷컴(인소닷)에는 누구나 창작 인소를 올릴 수 있었고, 그때의 나는 공부에 매진해도 모자를 마당에 인터넷 소설을 썼다.
(어머니가 아셨다면 아마 엄청 혼났을 테다.)

그래도 나름 꽤 인기를 얻었다. 완결 후에는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메모장 형태로 만들어서 원하는 사람들한테 배포하기도 했으니까.

물론 지금 와서 그 내용을 보면 유치뽕짝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 근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때의 나는 그게 잘 쓴 건지, 못 쓴 건지 모르는 채로 글을 썼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모르니까 오히려 글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 글을 쓰면서 나는 정말 즐거웠으니까.

고3 때도 종종 이어지던 나의 집필활동은 20살 이후에 끊겼다. 집필보다 훨씬 재미있고 집중해야 할 것들이 널린 탓이었다. 그러다 2013년, 우연히 웹소설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나는 소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에 생각 없이,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가 과연 죽을 때까지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은 고민이 든다. 쓰면 쓸수록 글쓰기는 어렵고, 스토리를 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집필했는데 사람들의 흥미와 과연 매칭이 되는 걸까. 그게 언제까지 갈까 하는 불안함도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연 이 길이 맞긴 맞는 걸까 하는 의심도 커진다. 30대가 되면 인생에 대한 불안함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출렁이는 파도 위에 떠다니는 배 한 척에 몸을 의지하고 사는 기분이다.

그런 와중에 하동에 있는 박경리 문학관을 갔다가, 입구에 있는 글귀를 보고 나뿐만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대작을 쓴 소설가도 글쓰기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삶에 대한 걱정을 했다는 것 깨달았다.

'그래,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이 구절에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고충이 느껴졌다. 동시에 부끄러워졌다. 나는 글 기둥을 잡고 처절하게 소설을 써 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 보니 그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본 적은 없는 듯했다. 그래서 집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쉽지는 않다.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는 것. 즉, 내 몸만 건강하면 은퇴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는 죽을 때까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종종 할 때가 있다.

소재가 고갈되면 어떡하지.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나보다 재능 넘치는 사람들이 이토록 판을 치는 세상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하다 보면 글을 써야 하는 일이 공포스러울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이 모든 걱정과 공포가 사라진다. 그게 아마도 박경리 작가님이 말한 글 기둥이 아닐까 싶다. 매일 나에 대한 불신과 고민으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글 기둥 붙잡고 여기까지 왔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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