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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Oct 09. 2023

글 귀(鬼)에 홀릴 때

내 몸이 망가지더라도 환영하는 존재

웹소설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스토리에 집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인 데다가, 요즘 세상에는 집중을 방해하는 재미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마감이 닥치지 않고서는 집필에만 몰두하기 어렵다.


그런데 종종 마감 때가 아니더라도  주위 시선이 차단되고 글에만 몰두하는 경이로운 순간이 다가올 때가 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글에만 미친 듯이 집중하게 된다. 근데 그때는 오히려 재미나 즐거움도 아예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모든 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글을 다 쓰고 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멍해지는 기분이 든다. 내 몸속에 들어와 있단 어떤 존재가 홀연히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주변도 약간 어질어질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제야 지금 내가 보는 것, 내가 있는 곳이 현실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글을 쓸 때 무아지경에 빠지는 감각, 나는 이게 귀신에 홀렸다는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그 감각은 신의 개념보다는 귀의 개념에 가깝다. 황홀함이 아닌 음침함. 밝음이 아닌 어둠. 그렇게 빠지면 내 몸이 상한다는 걸 알면서도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글 귀의 존재는 작가에게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글이 안 써져서 책상에 앉아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는, 내 생명을 갉아먹더라도 원하던 분량 이상을 쓰는 게 좋기 때문이다.


오늘은 제발 글 귀에 홀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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