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을 깊게 파되, 우물 안 개구리는 되지 마라."
최근에 들은 명언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명언이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 모두 중요하지만, 창작자에게 한 우물을 파는 것, 그러나 그 우물에 갇히지 않는 밸런스를 유지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2010년대에는 사회적으로 N잡에 대한 인식이 강했다. (우리 사회는 왜 그렇게 한 사람에게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지...) 어쨌든 흐름에 맞춰, 나도 이 일 저 일 다 벌렸다. 우당탕탕 여러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웹소설 쓰기가 의도치 않게 나에게는 가장 잘 맞는 일이 되었다.
정작 하고 싶었던 일은 서류에서 죄다 광탈하는데, 이상하게 웹소설은 계속 일거리가 들어왔다. 적어도 내가 출판사를 쫓아다니면서 제발 내 글 좀 내달라고 하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하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감사해야 할 일인 줄 모를 정도로 나에게는 출판사에서 출간제의를 받는 게 흔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웹소설 작가라는 한 우물만 파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이니 사람을 만나고 유흥을 즐길 시간에 글이라도 한 자 더 써야 한다는 아집에 사로잡혔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나는 사실 그렇다 할 좋은 추억이 없다. 그때의 나는 오로지 '작업실'에 틀어박혀 글만 계속 썼다.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도, 새로운 걸 보면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방해가 될 거 같아 자제했다. 어릴 때부터 책 살 때가 가장 행복했는데, 집에 다른 창작물을 두면 책 읽느라 글 쓰기가 싫어질 거 같다는 생각에 정말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서점에 가서 후다닥 보고 왔다.
한 마디로, 우물에 콕 박혀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사회와 멀어졌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이 나를 보면, 너는 사람들하고 부대끼지 않아서 뭔가 순수하고 다른 점이 있다고 했다. 사실, 그 말을 듣고 기분은 나빴지만 아무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사회에서 사람들과 일에 부딪히며 깎이고 단단해지는 동안, 나는 내 우물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방송작가교육원에 와서 크게 2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쓰는 다양한 주제의 글을 보면서 나도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물 밖 세상은 생각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두 번째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썩어가던 그 시간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원에서 처음 대본을 쓰는데 엄청나게 걱정했다. 내가 감히, 과연 대본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시작하니, 생각보다 막막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해주시는 이야기를 듣는데 동감되는 게 너무 많았다.
어쩌면, 썩어간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들이 내게는 안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성숙의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살면서 한 번쯤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그러나 자주, 혹은 평생 그렇게 사는 건 반대한다.)
그래서 작가는 우물을 아주 잘 써야 한다. 어떤 장르의 우물을 팔 것인지, 우물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좀 더 재미있고 풍성한 내용을 쓸 수 있지 않나 싶다.
물론, 환상과 상상을 쓰는 웹소설 작가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는 게 현실에 없는 것이라고, 사람 안 만나고 골방에 틀어박혀 이야기만 쓰다가는 자칫, 무협에서 말하는 '주화마입'을 당하고 나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