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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Apr 26. 2024

그림자 아이 (03화)

어느새 이놈의 번아웃이 내 영혼까지 삼킨 거 같아요.

나른한 월요일의 오후에 그림자는 빌딩숲 사이 영혼 없는 듯 인 사무실에 앉아 마우스를 딸각거리며 다란 모니터 뒤에 숨어 있는 직장인 만났다. 른 직원과 달리 유리로 된 칸막이가 있는 개인 방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의 책상 위에는 '팀장 김준형'이라고 적혀있었다. 앉아있는 책상은 종이컵과 각종 서류들로 뒤섞여있었지만 그 나름대로 규칙이 있어 보였다.


“안녕. 그런데 너는 많이 지쳐 보이는구나. 그런 너를 내가 잠시 복사해도 될까? 약한 빛이라 해도 그 빛이 사라질 때까지 너 이야기하고 싶어”


반쯤 풀린 눈을 하고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던 형이는 모니터 아래로 얼굴을 숨기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거 뭐야. 나 미친 거야? 왜 환청이 들리지?”


그림자도 형이를 따라서 고개를 숙이고 속삭이듯 말했다.


“여기 형광등 빛에 보일 듯 말 듯 너에게 붙어있는 그림자가 나야.”


주위를 조심히 살피던 형이는 다시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 제가 뭘 잘못해서 벌주시러 신 건가요?”


그림자 이번에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잘못해서 벌 받는다고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무엇을 잘못해서 벌을 받아야 하는 거지?”


"저는 지쳐서 잠시 멍 때리고 있었던 거뿐이고요. 저 정말 착하게 살다가 요즘 잠깐 게을러진 것뿐이에요. 정말이에요. 러니까 저를 벌하지 마시고 저를 좀 불쌍히 여기셔서 도와주세요. 저는 도움이 절실합니다.


"게으르다는 건 나쁜 건가? 그것 때문에 그렇게 두려운 거야?"


준형이는 그림자의 질문을 들으며 스스로도 궁금증이 생겼다.


"게으른 게 나쁘다기보다 좋을 건 없으니까요. 저를 벌하러 오신 건 아닌 거 같은데 혹시 당신은 어떤 존재이신가요?"

 

"말했잖아. 나는 그림자야. 여기는 형광등밖에 없어서 조금 흐릿하지만 그래도 잘 보면 내가 보일 거야. 그런데 너의 모습을 보니 나처럼 흐려졌구나. 많이 지쳐 보여. 많이 힘든 거야?"


준형이는 그림자의 말에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질문을 마주하게 된 거 같아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정말 한계 온 거 같아요. 정말 단 한 발도 내딛을 수가 없어요. 혹시 이런 저를 구원해 주시러 오신 건가요? 그렇다면 혹시 당신은 나를 도와줄 가요?"


“네가 그렇게 믿고 싶다면 날 신으로 생각해도 좋아. 그런데 너는 어떤 도움이 필요하지?”


준형이는  으로 그림자에게 말했다.


어느새 이놈의 번아웃이 내 영혼까지 삼킨 거 같아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죽는 건 너무 무서워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시간이 가는 게 너무 두려워요.


“그런데 번아웃이 뭐길래 너를 이렇게 슬프고 힘들게 하는 거지?”


준형이는 의외의 질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조용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글쎄요. 그냥 목표를 잃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졸업하고 직장 잡고 성공하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하고 일하고 살았는데, 정작 팀장까지 올라오고 나니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어요. 겨우겨우 급한 업무만 소화하는데 그것도 너무 힘들어요. 이제는 주변 동료들에게도 너무 미안하고요. 퇴근하고 집에 가도 방은 정리하지 않아 어지럽고, 뜯지도 않은 택배박스는 둘 대가 없고, 냉장고는 먹지도 않는 음식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런데 꼭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거야?”


“목표가 없다면 살아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그 말을 듣던 그림자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 형이에게 말했다.


“그럼 목표가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 얼마 전 만난 검은 길고양이가 있는데 그 녀석은 목표가 있었어. 세상에서 가장 뚱뚱한 고양이가 되는 것이지. 혹시 지금 당장 네 목표가 무엇인지 찾을 수 없다면 그 친구의 목표를 도와줄래?”


다소 황당한 말에 준형이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저더러 길고양이에게 밥을 줘서 살찌게 하라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맞아. 너는 지금 목표가 없으니 목표가 있는 나의 친구를 조금 도와줘. 그럼 언젠가 너도 목표가 생기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타인의 목표를 도와주면서 사는 거지. 지루할 틈도 없고.”


준형이는 그림자의 말을 듣고는 무엇인가 알아낸 것처럼 대답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고, 삶에 목표란 대단한 게 아니라는 가르침을 저에게 주시는 거군요. 그리고 그 목표를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서 작은 실천을 하라는 깊은 뜻이 있으신 거 지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면 그 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림자는 자신의 모습을 얼마 전에 만났던 검은색 고양이로 바꾸고 말했다.


그 고양이는 이렇게 생겼어. 성곽탐방로를 따라서 나있는 산책길을 걷다 보면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아직 그 고양이는 이름이 없어. 네가 고양이 이름을 지어줄래? 그럼 그 고양이가 널 알아보고 너를 따를 거야.”


준형이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기쁜 눈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그럼 제 이름준형에 준을 따서 준코 하겠습니다.”


그림자는 확신에 찬 준형이의 말듣고는 조금 안심이 다. 사실 그림자는 내내 배고파하던 고양이가 신경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고양이가 사료를 먹을 때에 안도와 행복을 느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던 고양이의 불안도 동시에 느꼈었다.


그래 준형아. 이제 준코가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네가 도와주면 당분간 너도 심심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시간을 가지고 조금 힘을 얻게 되면, 그때 너의 목표를 찾을 마음에 여유 생길지 몰라.


시간은 어느덧 퇴근시간이 , 변 사무실도 하나둘 불이 꺼고 이제 준형이만 홀로 남아있었다.



[ 04화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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