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인접한 경기도의 오피스텔 10층, 그곳에는 현관에 서서 울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현관문에선채 집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그 사람에게 그림자는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난 그림자야.그런데 넌 왜 울고 있니?”
울고 있던 사람은 눈물을 닦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제 환청까지 들리네...”
그림자는 울고 있는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데 넌 이름이 뭐야?”
“난 수야. 그런데 넌 뭐야? 어떻게 말을 하는 거지?”
당황해하는 수를 보며 그림자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난 여기 보이는 그림자야. 언제부턴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세상을 여행하고 있어.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울고 있어?”
수는 현관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으며 이야기했다.
“난 지금 강박증 때문에 고통받고 있어. 강박행동을 하는 걸 스스로 알고 있지만 그냥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그림자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강박행동이 뭐야? 그게 뭔데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거지? 네가 느끼는 고통이 너무나 끔찍해.”
“난 한 시간 전부터 외출준비를 마치고 이제 밖에 나가기만 하면 돼. 그런데 집을 나설 수가 없어. 왜냐하면 수도꼭지를 안 잠가서물이 넘칠까 봐 무서워. 그래서 여러 번 수도꼭지가 잘 잠겼는지 확인하는 행동을 반복하는데, 문제는 이런 행동을 하는 날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그런데 멈출 수가 없어. 이제 너무 무서워서 집을 나설 수가 없어. 난 집에 물이 넘칠까 봐 너무 무서워.”
그림자는 수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물이 넘치고 있다는 거야?”
“아직 물이 넘친 건 아니야. 그런데 내가 혹시라도 수도꼭지를 안 잠가서 물이 넘칠까 봐 무서워.”
“그럼 지금 수도꼭지가 안 잠가져 있는 거야?”
"아니 잘 잠가져 있어. 만약 물이 새고 있다면 물이 흐르는 게 보이겠지. 물이 떨어지는 소리도 날 거고. 너도 보고 들어보면 알 거야.”
그 말을 듣고 그림자는이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수에게 말했다.
“그럼 너는 네가 보고 듣는 걸 스스로 믿지 못하는 거구나.”
수는 그림자의 연이은 질문에 막힘없이 답했지만 이번 질문은 대답할 수 없었다.
“모르겠어.’
“네가 보고 있고 듣고 있는데 물은 새고 있지 않잖아. 그런데 무서운 건 네가 보고 듣는 걸 스스로 믿지 못해서 그런 거 아냐?”
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런 수에게 그림자는 말했다.
“혹시 널 도와줄 사람이 있니?”
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을 본 그림자는 푸념하듯이 이야기했다.
“인간들은 스스로를 믿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구나.”
“그건 아니야. 사실 엄마에게 말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너무 다행이다. 그런데 왜 울고 있던 거야? 넌 그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어? 혹시 엄마가 너를 도울 수 없다고 해서 지금 이렇게 혼자서 고통받고 있는 거야?”
“아직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도 잘 몰라.”
“그럼 한번 시도해 봐. 얼마 전에 번아웃에 빠진 준형이를 만난 적이 있어. 준형이는 매일매일을 사는 게 너무 지치고 힘들다고 했는데, 내가 소개해준 검은 고양이를 도와주며 잠시 쉬어가고 있거든. 준형이가 내 조언을 받아들여 시도했듯이 너도 한번 시도해 보는 게 어때?”
수는 다짐한 듯 굳은 얼굴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너무 아파. 요즘 강박증이 너무 심해졌어. 집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겠어.”
엄마와 통화하는 수는 울고 있었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점점 안정되어 갔다.
“엄마가 오시면 다시병원에 가보기로 했어. 나 너무 많이 울어서 조금 자고 싶어. 혹시 내가 자는 동안 내 곁을 지켜줄 수 있어?”
“네가 날 원한다면 해가 지기 전까지는 자고 있는 너를 지켜줄게. 그런데 해가 지면 난 떠나야 해. 혹시 잠에서 깨었을 때 내가 없다면 넌 무서울까?”
그림자의 이야기에 수는 작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지금 엄마가 여기로 오고 있어. 아마 어두워지기 전에 엄마가 올 거야. 그러면 난 깨자마자 엄마를 보겠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림자는 잠든 수의 곁을 지켰고, 얼마가 지나자 수의 엄마가 집을 찾았다. 수의 엄마는 잠든 수의 이마를 쓸어 넘기며 조용히 말했다.
“이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난 네가 살아 준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해. 그러니까 엄마랑 같이 치료받자. 다시 치료받으면 돼.”
그렇게 밤이 오고 있었지만 수의 엄마는 딸이 깰까 봐 불도 켜지 않고 곁을 지켰고, 그림자는안심한 채마지막 말을 남기며 수를 떠날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되길 바랄게. 그리고 양갈래머리를 한 어떤 아이가 있어. 그 아이의 오빠대신 네가잠시들러서 다시 한번 비밀이야기를 전해줘.오빠는 아주 오랫동안 오지 못할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오래 기다리진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