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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Apr 30. 2024

그림자 아이 (04화)

그래도 아까 먹은 오이소박이는 참 그리울 것이여.

여름의 어느 날 그림자는 뙤약볕 아래에서 열심히 분리수거장을 정리하는 경비원 할아버지를 만났다.


안녕 난 그림자야. 그래서 너를 조금 복사하고 싶어. 그래도 될까?


그림자의 인사에 경비원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이야기했다.


“허 거참 오래 살고 볼일이구만. 그림자가 말도 하고 말이야. 내가 아직 갈 때는 아닌 것 같은데 나 데리러 온 저승사자 놈이냐? 무슨 저승사자가 이런 대낮에 오고 그려...”


“내가 저승사자라고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믿어도 좋아. 그런데 내가 어디로 데려간다는 거야?”


“어디긴 이놈아. 저세상이지. 나야 살만큼 살았다만 이 분리수거장은 다 정리하거든 데려가거라. “


아 예전에 양갈래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말했던 죽음구나. 그렇다면 난 널 데리러 온 게 아니야.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야.”


“그럼 아직 내가 이렇게 팔팔한데 아직은 내 차례 아니. 이왕 온 김에 밥이나 한 끼 하고 가. 내가 오이소박이를 기가 막히게 담았다니까.”


버지는 분리수거장 청소를 마무리하고 지하 보일러실로 하자 그림자가 다급하게 할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그런데 지하로 가면 난 따라갈 수가 없어. 그냥 여기서 먹으면 안 될까?”


“허허 그놈 참 이 뜨거운 뙤약볕아래서 어떻게 점심을 먹냐 이놈아. 정 지하가 싫으면 저기 경비실로 따라오너라. 그리고 자꾸 너너 거리지 말고 할아버지라고 부르거라.”


그림자는 할아버지를 따라서 경비실로 향했다. 경비실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준비해 온 도시락통을 꺼내 박스 위에 한상 음식을 차렸다. 오이소박이와 매실장아찌, 그리고 칼칼하게 볶은 어묵볶음이 차려졌다. 보온통에 담겨있던 된장찌개도 뚜껑에 따라져 한자리를 차지했다. 투명한 밀폐용기에는 각종 잡곡을 섞은 밥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맛난 음식을 먹으면 힘이 나. 다 밥심으로 사는 것이여. 자 너도 안거라.”


“난 음식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감정은 알아. 지금 할아버지행복한 기분이구나.


잘 익은 오이소박이 잡곡한입 가득 먹고 난 후 할아버지는 말했다.


“이 맛있는 걸 아직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건데 그것을 나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이여.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맛난 거 많이 먹고살았을 것인데.”


할아버지는 잘 담근 매실장아찌 밥 위에 올려 한입에 넣고는 뚜껑째 담겨있는 된장찌개도 호로록 마셨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인간 중에서 할아버지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구나. 이렇게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한 인간도 지금까지 없었어.”


“아직 음식  돈을 벌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내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가 남아있어서 감사하지.”


“할아버지는 참 감사한 게 많구나. 그런데 감사한 게 뭐야?”


“감사한 것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지. 감사할 줄 알아야 나 자신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여.


해가 질 때까지 그림자는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주차관리도 하고, 아파트 순찰도 돌았다. 한참을 인생에 대한 이야기.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는 저녁쯤이 되자 그림자에게 말했다.


오늘 퇴근시간까지 기다려줘서 고맙구먼. 사실 난 안다니까 네놈이 나 저승길로 데려갈라고 온 놈인 거. 그도 오늘 내가 할 일을 잘 마무리했으니까 이렇게 가도 여한이 없지. 그래도 아까 먹은 오이소박이는 참 그리울 것이여.”


나는 할아버지 어디로 데려갈 수 없어. 그렇지만 나중에 정말 내가 데려가주길 바라는 날이 오면 그때 나를 불러줘. 그럼 그때 내가 할아버지를 배웅할게.”


“허허 이거 죽다 살아난 느낌이구만. 그려 다시 살았으니까 남은 인생 못해본 거 이거 저거 다 시도해 봐야겠어. 그리고 하고 싶은 게 더 이상 없어지면 널 부를 테니까 그때는 꼭 네가 와주거라. 그래야 내가 가는 길 심심하지 않지.”


그림자는 할아버지의 퇴근길까지 동행했다. 어둑어둑한 골목 앞에 다다르자 할아버지는 말했다.


“이놈아 그런데 네 이름을 알려줘야 나중에 너를 찾지. 네놈 이름이 뭣이냐.”


“난 이름이 없어.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나를 찾고 싶다면 할아버지 이름을 알려줘. 러면 내가 할아버지를 찾을게."


“그냥 길석이라고 거라. 성은 나중에 나 데리러 오면 그때 알려주마.”


이번에 길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 사라졌다.



[ 05화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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