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아이 (06화)
뭐든 가졌다가 잃으면 더 슬퍼지는 법이거든.
가을이 오고 있었다. 가을의 햇살을 처음 느껴본 그림자는 오후의 나른함에 한껏 늘어진 참이었다.
부산한 도심의 길 한편에 위치한 자투리땅에는 몇 가지 운동기구를 갖추어놓고 공원인양 가꾸어져 있었는데, 그 좁은 곳에서 작고 하얀 강아지가 주인의 품에 안겨 짧은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림자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 너희는 한 몸처럼 다니는구나. 난 그림자야. 너희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찾아왔어."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작은 강아지였다.
"안녕. 네 소문은 지나가는 고양이를 통해 들었어. 이야기하는 건 좋지만 우리 정숙 씨와 놀아줘야 해서 오래 이야기는 못해."
"그래? 정숙 씨와 놀아줄 시간도 얼마 없는가 보구나. 그런데 네 이름이 뭐야?"
"내 이름? 내 이름은 우유야. 옆에 있는 우리 주인은 정숙 씨야. 항상 자기를 내 엄마라고 부르지만 난 항상 정숙 씨라고 불러. 난 인간과 다르게 간단한 단어 정도는 구분이 가거든. 그리고 난 벌써 14살이야. 그래서 아는 인간의 단어도 꽤 많지."
"반가워 우유야. 너를 보니 오이소박이를 무척 좋아하던 할아버지가 생각나... 다행히 아직까지 나를 찾지는 않으시거든. 혹시 네가 나를 찾은 거야?"
그 옆에서는 너무 놀라서 한마디도 못하고 굳어있던 주인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잠깐 우유라고? 아니 세상에...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그런데 너 지금 누구...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니?"
"난 여기 그림자야. 여기 우유가 자기 이름을 알려주었어. 내가 너희 둘을 같이 복사하는 바람에 너희 둘 다 내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거 같아."
"하나님 맙소사... 그런데 정말... 아니 잠깐만... 진짜로 우리 우유랑 이야기를 한 거니?"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너희끼리는 서로 안 들리는가 보구나. 그렇지만 난 너희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그 말을 듣고 있던 강아지가 진지한 눈망울로 그림자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정숙 씨에게 한 가지만 물어봐줘. 어릴 때부터 매일 나와 함께하던 준수가 왜 요즘 집에 안 오냐고..."
그림자는 강아지의 말을 그대로 주인에게 전해주었다. 그림자의 말을 듣고 있던 주인은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이야기했다.
"우유야 네 형은 군대에 갔단다. 그래서 요즘 집에 못 오는 거야. 매일 형을 기다리고 있는 거 알지만 조금 오래 기다려야 해. 아이고 가여운 내 새끼..."
그림자는 주인의 말을 그대로 강아지에게 전해주었다.
"군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처음 맡아본 냄새가 났는데 그게 군대의 냄새인가 보구나. 군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꼭 가야 하는 거야?"
그림자의 말을 전해 들은 주인이 이야기했다.
"그래 군대라는 건 가고 싶든 아니든 꼭 가야만 한단다. 준수도 전화할 때마다 네 걱정을 해. 설명할 수 없어서 답답하다고. 널 영원히 떠나버린 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하더구나."
그림자를 통해 말을 전해 들은 강아지가 이야기했다.
"난 이제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어. 사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난 사랑받는 걸 알아. 아니 오히려 실제로 받는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우리 가족 모두의 행동은 날 위한 거라고 여기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 내 말을 정숙 씨에게 전하지 말아 줘. 말을 전해줬던 네가 떠나면 정숙 씨가 많이 답답하고 상심이 클 테니까. 뭐든 가졌다가 잃으면 더 슬퍼지는 법이거든. 그러니까 상실은 나 하나로 충분해. 그리고 준수가 집에 돌아오는걸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아야겠어. 그러니까 너도 더 이상 욕심내지 말고 내 마음을 이해해 줘."
강아지의 말을 듣고 있던 그림자는 아쉬운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그래 우유야. 네가 원한다면 난 이만 떠날게. 그럼 얼마 남지 않은 너의 하루 잘 보내."
그림자가 떠난다는 말에 주인은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잠시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전해줘. 딱 한마디면 돼. 우유야 혹시 아프면 참지 말고 표현해 주겠니?"
주인이 말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림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는 주인을 강아지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유야 너 내 마지막 말 전해 들은 거 맞니? 혹시 못 들은 거야? 아프면 엄마한테 꼭 아픈 티를 내줘. 우리 우유는 날 위해서 그거만 해주면 된단다."
주인은 강아지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강아지는 살포시 기대어 잠들고 있었다.
[ 07화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