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봄날의 코스모스야.

드라마 <스타트업> 후기

by 하원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나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항상 궁금했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저 사람들은 대체 통장에 얼마가 있길래 두르고 다니는 것들이 우리 집 값보다도 비쌀까. 나는 왜 그런 세상에 살지 못할까. 아니, 그건 바라지도 꿈꾸지도 않아. 그냥 내가 당장 사고 싶은 물건들을 살 수 있는 돈, 듣고 싶은 강의들을 들을 수 있는 돈.


그런 돈.


돈, 돈, 돈


인생에 뭔가 해보려고만 하면 내 앞을 가로막는 듯한 그놈의 돈. 돈 때문에 생긴 성격도 있을 거다. 돈 때문에 생기는 모든 상황들이 진절머리가 났다. 뭘 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잤다. 부모님이 뭐라고 말씀하실지 너무 긴장이 돼서.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부터 말해야 하는 것도 알고, 돈 얘기에 민감해지시는 것도 알기 때문에 돈의 개념이란 걸 깨달은 순간부터 꿈이 생기면 일단 마음속에 곱게 접어뒀다.


함부로 입 밖에 "나 해보고 싶은 게 생겼어. "라고 말하지 못하게 됐다. 말하면 그 순간부터 "그래서 얼만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 그게 제일 중요하지."라고 돌아올 대답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게 왜 하고 싶은지 그 이유가 뭔지,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나한테 투자해야 할 돈. 그게 우선적으로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적으로 서운해하기엔 나이라는 게 가르쳐 주는 게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빌어먹게도 "돈"으로 엮이는 상황에 대한 학습 데이터가 계속 쌓여 왔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돈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도 포함된다는 걸 안다.


내가 사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것에 얼마가 드는 지를 알아야 '우리 형편에 맞는지', '그 형편 안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해 줄 수 있다.

항상 뭔가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면 우선적으로 듣는 말이었다. 드라마 덕후였던 내게는 그래서였는지 상대적으로 더 자주 더 많이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부잣집 이복 자매가 나오는 '스타트업'을 보고도 그랬다.

드라마 <스타트업>

다만 내가 박탈감을 느끼는 건, 재벌 2세가 된 원인 재한 테가 아니라 서달미한테서였다. 평생 저 정도 크기의 방에서 살아봤으면, 저런 인테리어, 저런 어른의 보호 아래 살아봤으면 하고 꿈꿨던 모든 것을 갖춘 캐릭터였다. 멋졌고, 부러웠다. 좀 웃기는 게, 드라마 속에서 아주 못 사는 캐릭터로 나오는 주인공의 집은 항상 우리 집보다 좋았다. 내 방에 비하면 너무나도 궁궐이었고, 인테리어도 내가 꿈꾸는 정도의 수준을 갖췄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선 항상 가난한 집 딸로 비치는 게, 그게 나한테는 너무 쓰라렸다.

드라마 <스타트업> 속 서달미 (수지 분)의 방

엄마는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 대학에 와서 다시 사춘기(대 2병. 중2병이랑은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의 질풍노도의 시기더라.)를 겪으면서,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을 쏟아내면서부터 오빠와 나를 비교하기를 멈췄다. 내 박탈감, 무력감, 수치심, 좌절감, 굴욕감 그 모든 감정은 대개 오빠와의 비교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그건 대개 엄마한테서 왔다. 나의 인정받고 싶어 하는 트리거도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오빠를 떼어놓고 온전히 내 실력으로, 내 장점으로, 나라는 사람으로서 엄마와 오빠, 동네 아줌마들, 이모들, 집 안 어른들과 사촌들.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나도 재능 있다고. 나도 능력이란 걸 어느 부분에선 갖고 태어났다고. 오빠보다 잘하는 거. 나도 있다고.


그렇게 생겼다. 오기, 패기, 독에 받친 악바리 근성, 밟으면 더 꿈틀 대고 움을 돋고 돋아나는 잡초 근성, 한 번 시작하면 끝이 날 때까지, 내가 이길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승부사 근성.



근성과 탄력성이라는 거.

그거 누가 도와주고 끌어주고, 보호 아래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선 모르는 거다. 모두가 넌 안된다. 넌 능력이 없다. 재능이 없다. 할 때 "아니? 보여주면 어쩔 건데? 내가 해내면 어쩔 거냐고?" 하는 마음에서, 일단 지르고 수습하면 된다. 나는 수습을 잘한다. 일단 지르지 않으면, 아무도 내 것을 챙겨주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오빠는 왜소했고, 편식이 심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항상 걱정이었고, 신경을 많이 쓰셨다. 그에 비해 나는 항상 비만이었고,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었다. 그게 속이 쓰리다. 가리는 것은 없어도 나도 선호라는 게 있었다. 좋아하는 것에도 정도라는 게 있고, 순위라는 게 있다. 그런데 나는 항상 순위 밖으로 밀려나 있는 기분이었다. 손가락 깨물어봐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맞다. 그런데 더 아픈 손가락 하나쯤 있다는 건, 너무 쉽게 느껴지던데.

드라마 속 원인재(강한나 분)는 서달미(수지 분)에게 대하는 엄마의 태도에 질투심과 공허함을 느낀다.


오빠는 그거 아님 안 먹으니까 '오빠 꺼'는 항상 정해져 있었다.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어떤 것에서도 항상 오빠 꺼는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남는 것이 모두 다 내 것인. 그런 상황. 오빠가 가져가고 남는 것, 또는 오빠 꺼는 정해져 있고, 내 것은 특정하게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 많은 것 중에서 원하면 고르면 되는, 내 몫은 있지만, 내 것은 없는 그런 상황. 내 칭찬을 할 때도 오빠 칭찬은 항상 빠지지 않았다.


오빠가 잘하니까 동생도 잘하네. 00이(오빠)가 00이(나) 하는 것에 1%만 해도 00이(나)가 받은 성적보다 훨씬 더 잘 나올 텐데 왜 공부를 안 해? 오빠는 참 운동 신경이 좋은데 00이(나)는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네. 이런 부분만 고치면 완벽할 것 같으니까 이런 점을 짚어 주는 데 왜 화를 내니? 참, 너는 오빠랑 다르게 너무 너 밖에 몰라. 이기적이야.


그게 왜 그런데? 오빠가 이 방 오늘부터 내가 쓸 거야. 하면 그 방은 더 이상 내 방이 아니었다. 오빠가 그 가방 내가 쓸래 하면 더 이상 그 가방은 내 가방이 아니었다. 내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참, 누구한테는 그렇게 쉬웠다. 뭘 갖는 게. 부모님의 관심도, 인정도, 쉽게 자기 것을 나누는 마인드도, 칭찬도. 참 쉬웠다. 재벌들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자기 것이 넘쳐나듯이, 쉽게 사고 쉽게 버릴 수 있듯이. 참 나한테는 이 악물고 죽어라 노력해서도 온전히 가질 수 없는 것이 누구한테는 참 너무도 쉬웠다.

강한나의 의붓오빠. 새아빠의 아들. 대표로 일궈온 네이처 컴퍼니를 이 오빠한테 빼앗긴다.
엿 같다. 여자라는 이유로 여자애가 깔끔 치 못하다. 입을 그렇게 크게 벌리고 쌈을 싸 먹냐. 여자애라서 태어날 때부터 탐탁지 않아한 아빠와 아가씨는 그러면 안된다고 배워서 나한테도 자꾸 그렇게 말하게 된다는 엄마. 여자애라서 상대적으로 힘에 밀리니까 만만하게 보고, 힘으로 나를 굴복시켰던 오빠. 첫째이고 남자라서 많은 이득을 봤으면서 나한테만 혜택을 많이 줬다고 이야기하는 오빠. 엿 같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라왔다. 아주 빅엿 투성이라고. 내 인생에 붙은 가족이라는 세트가.

여자여서, 둘째여서, 막내이지만 막내가 누릴 수 있는 어리광은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채, 오빠보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우리 엄마가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던 '나는 너까지 그러면 못 산다.'는 말에 오빠처럼 말 안 듣고 속 썩는 아이가 되면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든, 엄마가 나를 버리든, 나로 인해 가족 관계가 더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그저 말 잘 듣고 혼자서도 잘 자라고, 밝은 아이로 크려고 노력해왔다. 속은 아주 혼자서 문드러지면서. 썩어 곪아 터져서 스스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리고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가 나를 살리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살리지 않는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며 죽음을 생각하는 동시에 열렬하게 삶을 동경하는 내 모순된 모습을 경멸하며 살았다.

드라마 <스타트업> 6화에서 철산이가 뛰어내리려는 장면

어떻게든. 스스로의 구원자가 되고, 악에 받쳐서 욕심을 부리면서, 내 것을 쟁취하면서, 내 영역이란 것을 만들어내고, 요구하고, 인식시키고, 그렇게 하나둘씩 내 능력을 키워갔다. 무시와 멸시, 비교당함으로부터 오는 박탈감과 허무함, 공허함, 무너짐, 패배감, 무력감, 독기, 악에 받친 감정, 그 말 못 할 수십여 가지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오랜 기간 겪고 그것을 발판으로 딛고 일어선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성취감과 독립성, 그리고

근성과 회복 탄력성, 자기 확신.


누구보다도 나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자기 확신. 나는 어떻게든 해낼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고비를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분명히 나는 갖추고 있고, 난 '코스모스'인 거고, 지금은 봄날이고, 가을이 와야 필 수 있는데, 그 계절이 찾아오는 게 좀 늦어질 뿐이다. 앞서 가는 이들을 부러워할 필요 없다. 아니, 부러워해. 그것도 그냥 내 감정이고, 나니까. 나다운 모습 중에 하나니까.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감정과 능력을 가진 나는 지금 부러워하는 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멋지게 해낼 수밖에 없어. 뭐든 쉽게 가져 본 적 없는 사람이 가지는 능력과 경험치, 그 감정은 뭐든 쉽게 가진 사람은 죽어도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니까.


오늘의 식사

다이어트도 그렇다. 오빠의 멸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뚱뚱하다느니. 돼지 소리도 그만 듣고 싶었고, 뚱뚱해서 비웃는 오빠의 시선과 말들도 지긋지긋했다. 어른들이 툭툭 던지는 말들도 심장을 긁고 지나갔고, 자꾸만 작아지는 내가 너무 싫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건강해지고 싶었고, 내가 나를 인정해주고 보듬어주고 사랑해주고 싶었다. 나를 자주 들여다 보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했고, 그러면서 성장했고, 그래서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평생 해야 하고, 평생 할 거라서 때론 즐겁고 의욕이 넘치고, 활기가 막 샘솟고 행복한데 때론 처지고 힘들고 괴롭고, 하기 싫고, 이미 겪은 감정이 다시 찾아올 때나, 이미 고쳤다 생각한 예전에 살이 쪘을 때의 습관이 불쑥 찾아올 때면 여전히 당황스럽고, 스스로가 한심하다.

오늘이 그랬다. 어제 나와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겨서 일어났고, 운동을 하기 싫었고, 그래서 간단히 하고 저녁으로 미뤘고, 아침식사를 시작했는데 시간이 애매하다며 두 끼에서 세 끼에 먹을 것을 한 끼에 몰빵 했고, 결국 체했고 소화제를 먹고도 위가 꼬였는지 속이 울렁거려서 토할 것 같고, 배가 너무 아파서 배에 따뜻한 것을 대고 울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스타트업'을 다시 보다가 이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뭐든 쉽게 가져 본 적 없는 내 얘기를 하자. 다이어트도 그런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자. 쉽게 가지는 건 매력 없지. 쉽게 가질 수 있는 걸 가진 사람보다 뭐든 쉽게 가져 본 적 없는 사람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고군분투하는 과정과 결과, 그 모습이 훨씬 더 매력적이란 걸 다시 깨닫는다.

요즘 과식과 폭식을 하면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보듬어주는 순간은 적었는데, 조바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도 어서 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는 조바심, 인정을 빨리 받고 싶다는 조바심, 어차피 언젠간 내 것이 되게 되어 있는 것 여유를 갖자. 내 페이스대로 가자. 우아한 백조처럼. 모양 빠지는 뱁새 말고. 잘하고 있다.



누구도 갖지 못한 것을 나는 갖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

아무도 갖지 못한 순간들, 기억들, 감정, 경험, 그런 것들을 모두가 하나씩 갖고 있다.

우린 모두가 코스모스인 거다. 아직 계절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때를 기다리며 있는 힘껏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찾아 몸을 움직이고,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코스모스. 밟히더라도 언젠간 다시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피어날 코스모스. 그런 생명력 강한 코스모스인 거다.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만나면 반갑고, 제각기 생긴 것도 크기도 높이도 다른 코스모스.


우린 봄날의 코스모스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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