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깨진 토요일, 아침 일찍 외투를 대충 걸쳐 입고 지하철을 탄다. 평소 같았으면 이불 속에 파묻혀서 약속이 깨졌다는 것에 또 그 나름대로 흡족해하면서 뒹굴거렸을 텐데 꼭 먹고 싶었던 샌드위치 메뉴가 오늘까지만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는다고 해서 수요일에 먹으러 가다가 허탕 치고 미리 예약을 해뒀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귀찮음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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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샌드위치 하나를 먹겠다고 약속도
파투 난 주말에 가는 데 1시간 반, 오는 데 한 시간 반, 왕복 세 시간 거리를 지하철 타고 왔다갔다 한다고?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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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럴 수 있다. 가는 나조차도 매장에 포장예약주문전화를 걸 때까지 가야할 지 말아야 할 지를 계속 고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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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을 찾아 다니면서 웨이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난 그거 하나 먹자고 줄 서는 짓은 안해'라며,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친다. 때론 혐오성 발언도 듣는다.
'맛집이라고 뭐 별 건가 다 거기서 거기지. 그거 먹겠다고 몇 시간씩 줄 서면서 시간 버리는 사람 진짜 이해 안돼. 한심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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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맞다. 사실 맛집투어를 하는 사람도 오랜 시간 줄을 서 있다 보면 '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이럴 가치가 있나? 시간 버리면서 왜 이러고 있지' 생각을 안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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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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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그럴 만한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필자는 맛집탐방이 기다림의 미학을 최고조로 느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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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다림의 연속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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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 인간은 기다리는 법에 대해서 배운다.
울며 보채지 않고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해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법.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공중화장실에 가는 법
친구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법
채용공고가 나길 고대하는 시간
컵라면에 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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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 수많은 기다림에 대해 배운다. 기다림을 배운다는 건 시간을 배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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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은 혼자 버티는 법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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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기를 가르쳐준다. 기다리는 동안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과 함께, 네모난 세상을 보느라 나의 세계, 나를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시간을 만들어준다. 혼자 있는 나와 그리고 다른 세계와 이어진 나의 세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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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네모난 세상과 가까이 살면서 계속 무언가와 연결되어 살 수 밖에 없다. 오롯이 혼자 있을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건, 사색할 시간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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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은 중요하다. 그리고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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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시간은 자아정체성과 직결된다. 사색 할 시간이 생겨야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생긴다. 필자는 주로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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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온전히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하루 동안에 일부러라도 만들어 낸다. 글을 쓰는 것도 그 일부이다. 그리고 내 글의 밑천은 식사시간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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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을 좋아한다. 혼자 맛집에 찾아 가서 기다리는 시간도 좋아한다. 맛있는 것을 먹게 될 것을 기대하는 설렘과 음식의 맛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낄 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는 것이 좋다. 식사를 기록할 때도 이것을 중점적으로 쓴다. 나의 취향과 사색하면서 주변 환경을 둘러보고 느낀 점, 새삼 깨닫게 된 점을 정리하며, 변화해가는 나를 기록하고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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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서고 기다리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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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기다리지 않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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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이유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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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매우 간단히 어제 먹고 남긴 아보카도토스트를 먹었다.
이거 밖에 안 먹어서 배고픈가그리고 지금은 예약주문해놓은 샌드위치를 찾으러 가는 길이다. 지하철에서 쓰는 글이 이렇게나 잘 써지다니. 자주 맛집 투어를 해야겠다. 새로운 음식을 먹어본다는 건 시야를 넓히는 일!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