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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영 Oct 26. 2024

토익 점수 보다 이모티콘이 중요한 이유

소통은 오감이 필요해

듣고 싶은 말만 들었던 그녀에 대해, '말 길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네요, 대화가 좀 어려운데, 혹시 이공계 쪽 출신인가요?' 하고 인사 팀장에게 물었다. 


대화에는 코드라는 것이 있다. 뇌가 최적화된 단어와 표현을 찾아 소통하게 되는데, 사람마다 다르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과 공학을 좋아하는 사람,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뇌 구조와 언어 표현, 이해도는 정말 다르다. 개발자에게는 개발자의 언어로 소통해야 오해가 없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마케터가 마케터의 언어로 개발자와 소통한다고 하면, 대화의 내용 중 절반은 공중에 휘발될 것이다. 분명 그녀는 공학도일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도였던 내가 쓰는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오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녀는 문과 출신이란다. 특이사항으로 회사에서 보기 드문 '토익 만점의 인재'라며 인사 팀장이 귀에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채용 지시를 한 적이 없고 다만, 해당 내용을 검토해 보겠다는 취지로 대화한 것이 전부였다, 정도로 인사팀장과 내용을 정리했다.


소통은 이렇게나 어렵다. 같은 뇌의 구조라고 해도 다를 수가 있다. 나와 상대가 동일한 생각과 배경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개의 맞닿은 직선이 조금만 틀어져도 영영 만날 수 없는 선이 되는 것처럼, 명확한 소통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벌어져 영영 함께할 수 없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인사 팀에 JD(Job-Description)을 전달할 때 꼭 넣는 내용이 있다.

한국어 독해 능력이 우수한 사람

한국어 발음이 좋은 사람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 우대


인사 팀장은 이 내용을 볼 때마다 항상, 외국인을 뽑을 것도 아닌데 웬 한국어 타령이냐, TOPIK(한국어능력시험) 점수를 제출하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며 한 수 거둔다. 나는 진심인데, 인사 팀장은 장난처럼 생각한다. 결국 지원자들이 제출하는 것은 토익 점수다.


기승전 토익,

토익 점수는 객관적으로 학습 역량이나 성취를 측정할 수 있는 '성적'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채용 과정의 간소화를 위해 필수처럼 보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직무 현장에서 토익 점수대로 역량을 펼치는 사람을 내 평생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3개월 동안 토익 900점 받는 법에 대한 노하우를 학습해서 실제 900점을 받았다면, 그 점수로 회사가 경쟁력이 생기고, 그 사람은 국제적 인재의 자질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나는 적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3개월 동안 열심히 학습 한 열정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 말고 전혀 쓸데없다.

실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고, 국제적 업무 역량이 필요한 보직에 있어서는 해당 점수가 판단 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사실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토익 점수를 받아 제출하는 것은 분명 '오랜 관행에 따른 관성'일 뿐 대부분의 실제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AI가 전 세계의 언어를 동시 번역 해주는 세상이다.

음성을 텍스트로, 텍스트를 음성으로 실시간 번역하는 세상에서 '영어 점수 잘 받는 노하우'를 학습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각설하고, 특별한 보직이 아닌 이상, 한국어 하나만 깊게 파자. 한국어 하나도 어렵다.


이 불안감 vs 이불 안감

더하다 vs 더 하다

사랑해, 보고 싶어 vs 사랑, 해보고 싶어


이야기의 맥락에 따라 배경에 따라 잘 못 쓸 수도, 잘 못 읽힐 수도 있다. 소통은 단 방향이 아닌, 양 방향이기 때문에 한 사람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이다. 무언가 이야기의 방향이나 결이 다른 것 같을 때, 서로 잘 이해되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에 대한 확인이 서로 잘 되었더라도, 정말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일이 틀어져, 맥락을 합의한 상대를 당황시킬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불이 제대로 붙기 전에 소화기를 들고뛰어 들어야 한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오해와 갈등을 진화하는 정도면 다행인 것으로 하자.


업무 메신저로 문자 메시지 하나 잘 못 보내거나 잘 못 읽히는 순간, 쓸데없는 오해가 시작되는 건 부지기 수다. 비단 단어의 철자나 띄어쓰기 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상태와 상관없이 답변한 메시지가, 본의 아니게 상대의 기분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말하기'에서는 단어와 문장들에 감정과 억양이 실려 오해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메시지나 '글쓰기'의 경우 감정과 억양이 배제된 채 전달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문장에 감정과 억양을 잘 싣고, 문장 부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오해를 면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지? 나의 감정을 하나하나 지문처럼 입력해야 할까?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모티콘이다.

이모티콘은 화자의 아바타가 되어 감정과 생각과 상태를 기호로, 이미지로 전달해 주는 글의 보조 수단이다. 이모티콘을 통해 글에서 볼 수 없는 표정을 읽을 수 있고, 글에 억양이 생겨 읽어 내리는 대로 귓가에 들려주기도 한다. 맥락에 맞춰 적절하게 잘 활용하면, 소통에서 비롯되는 오해들을 현격히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얼굴에서 직접 볼 수 있는 표정, 눈짓, 말투, 억양, 주변의 공기, 기운, 손짓, 몸짓 등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느끼면서 대화하는 것이 소통의 가장 좋은 예가 되겠다. 소통의 관점에서만 보면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보다 통화가 나을 수 있고, 통화보다 대면이 훨씬 낫다.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준하는 소통 방법이 화상 통화나 화상 회의다. 재택근무 시간이 늘어나면서 화상 회의가 많아졌는데, 안타까운 것은 화상 회의에 자신의 얼굴을 가리거나 카메라를 꺼 놓는 경우가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카메라를 켜달라 요청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는 화상 회의를 선택한 취지와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날 이후, 나는 오해의 불씨가 엉뚱한 곳에 옮겨 붙기 전에 소화기를 들고 진화할 타이밍을 찾았다. 적당한 시점과 시간에 그녀를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요청 준 사안은 검토가 필요하다, 지금 당신은 현재 상황에서 충분히 잘하고 있고, 좋은 경험을 쌓고 있다, 응원한다.. 정도의 내용으로, 오해와 갈등을 마무리 지었다. 고 생각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중에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불씨가 엉뚱한 곳에 옮겨 붙었고, 소방차 한대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소통이 참 어렵다. 아니 사실, 사람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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