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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 Apr 07. 2023

아바나 -이렇게 다른 아침들?


쿠바 3일째 아침에 일어나 까사 주인 호르헤의 아침을 먹었다. 인당 5 cuc라(5달러/5800원가량) 쿠바 물가로선 매우 비싼 조식을 먹게 되었다. 호르헤의 집은 센트로 하바나의 한 중간에 있어 좋은 위치에 있었지만 아바나의 구시가지는 최고 빈민가이기도 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었다. 아침 10시에 일자로 이어진 방의 끝 발코니를 향하게 되었다. 솟아오르는 햇살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바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첫날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서 밤 11시가 넘어 도착한 하바나 공항은 마치 시골 장터 같았다. 계절은 초겨울에서 갑자기 여름으로 변해 있었다. 화장실에서 내복을 벗고 짧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락스+ 방향제로 잘 관리된, 무엇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띄게 훌륭했던 익숙한 현대적 공간에서 충분히 밝지 못하고 텁텁하고 습한 냄새가 배어있는 아바나 공항은 하루 만에 겪기에는 너무 큰 변화였다. 입국심사는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인종적으로도 그러했다. 미국에 비해 백인의 비중이 현저히 높았던 캐나다에 비해 쿠바 공항에서는 백인을 찾기가 오히려 쉽지 않았다.


입국장을 지나 택시를 잡기 위해 써야 했던 스페인어도 나름 한다고 했던 공부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언어도, 협상도 익숙하지 않았던 호구의 얼굴이었지만 25 cuc 30 cuc를 불렀던 다른 택시를 물리고 패를 까고 외쳤던 quiero veinte(20을 원한다!), 20 cuc짜리 불법택시를 영업하던 한 청년은 우리를 알 수 없는 공항 주차장 깊숙한 곳으로 데려갔고, 한동안 경찰을 피해 앉아있으라고도 했다. 익숙한 대중교통, 관광 인프라, 치안 언어가 뒷받침되던 공간에서 하루 만에 도착한 아바나는 아무것도 스스로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도시였다. 큰 소리로 차 안을 울리던 테크노가 섞인 라틴팝풍의 음악처럼 매연을 성질 것 내어 뿜어대는 뼈대만 자동차였던 택시는 길을 잘 찾지 못해 내 아이폰을 가져가 적힌 주소를 동네사람들에게 수차례 물어물 었고(동네사람들도 내 아이폰을 건네받았다) casa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불안했다.


우리 주소는 구글맵으로 검색해도 위치를 도저히 알 수 없었고, 캐나다 항공에서 검색한 구글 번역기의 번역 결과는 '‘번개와 천사사이의 입구 #110'이었다.(cuba estrella #110 entre angeles y royo la havana) 다행히도 그건 주소였고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를 어찌어찌 숙소까지 데려다줘 문까지 열어줬고, 힘찬 악수와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불법택시를 타고 들어왔지만 싼 까사는 합법 마크가 찍혀 있었다. 방은 낡고 고급스럽지는 않았지만 천장이 아주 높고 나무로 되어 있어 고풍스러웠고 L은 마음에 들어 했다. 호르헤는 영어는 서툴렀지만 충분히 여유 있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물론 싸고 최소한의 위생이 보장된 방을 찾는 나로서는 꽤나 ok였다. 모기가 달려들었고 이제부터 어쩔 수 없이 모기에 물리면서 잠들어야 하나 불안했지만 서울에서 가져간 홈메트는 쿠바 모기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했다. 쿠바 첫째 날이었다.

   

둘째 날도 L은 좀 아팠다. 두통이 심해 하루종일 일어나지 못했다. 방을 이틀만 예약해 두었기에 다음날 아침에는 나가야 했던 나는 마음이 좀 급했다. 이 도시에 아무것도 알기도 전에 낯선 곳에서 환전을 하고 다른 도시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 느긋한 마음이 없는 나에게는 꽤나 가슴 조이는 일이었다. 여행으로서도 무언가 스며들지 못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심지어 쿠바는 아시다시피 인터넷이 잘 되지 않는 나라였다. 아스피린을 먹고 점심을 먹고 나서도 L은 낫지 않았고 우선 내가 나가 환전을 하고 간단히 먹을 것을 사 오기로 했다. 까사 위치를 오프라인에서도 훌륭한 maps.me에 찍어두고 한걸음 한걸음 골목을 지날 때마다 뒤돌아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뜨겁고 낯설었다, 그리고 적당히 습했다. 환전소 까데가(cadeca)를 혁명 관련된 단체에 앉아있던 동네 할머니에게 물었지만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다행히 손가락이 가르치는 방향과 머다란 레호라는(lejos) 단어가 들린 듯했다. 걸어가며 maps.me에 cadeca를 검색했고 다행히 도보 10분여 거리에 까데카가 있었다. 혼자 심카드 없이 여행했던 유럽의 감각이 조금은 떠올랐다. 구글맵과 인터넷에 의존한 여행이 효율적이고 편하긴 했지만, 불안과 지도와 질문으로 이어지는 여행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그 언어가, 문화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카데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공항보다 조금 나았던 환율을 확인하고(유로->cuc 공항 1.049/ 카데카 1.054 공항의 환율이 다른 공항에 비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던 것이다. 100000원 환전 시 500원 차이) 줄을 기다려 환전을 했다. 그 사이 같이 기다리던 아주 핫하게 꾸미고 다녔던, 영어를 하던 멕시코 누님(당연히 동생이었겠지)과 그 가족들과 함께 이런저런 간단한 이야기로 스페인어 연습을 하기도 했다. 누님에게 영어로 스페인어가 너무 빠르지만 발음이 스트레이트 해서 좋다고 했더니 누님은 영어로 천천히 해 달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느리다는 단어 데스파시오 despacio 가 떠올랐다. pimsler 스페인어 프로그램은 정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정말 필요한 많은 단어를 내 입에 집어넣어 두었다. 기다리는 동안 cambio가 바꾸다는 의미의 cambiar 동사의 변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환전소 누님에게


나는 100유로를 cuc로 환전하기를 원한다.


cuc는 외국인 전용 화폐 미국 1달러 가치가 있다. 하지만 달러로 바꾸려면 10% 페널티가 있다는 것이 함정이라 유로나 캐나다 달러등을 들고 같다고 한다. 다시 20 cuc를 현지 화폐인 모네다로 바꾸었다. 1 cuc는 25 모네다지만 20 cuc를 480 모네다로 바꿔줬다. 모두 10 모네다 지폐 48장을 주어 지갑이 묵직했다. 48장을 새며 스페인어 숫자놀이를 했다. 동양인이 100 단위까지 띄엄띄엄 스페인어를 하자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나도 직원도 즐겁게 환전을 했다.


 여행책자에 따르면 현지 화폐를 쓰는 순간 물가의 기적을 보게 된다고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를 샀는데 큼직한 햄버거가 15 모네다였다.(6-700원) 모네다인지 세우세(cuc)인지 부러 물었는데 모네다라고 했다. cuc는 미국의 봉쇄로 생겨났다고 했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현지 물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가 되어버린 것 같다. 쿠바를 돌아볼수록 다른 물가에 비해 심하게 높은 숙박비와 택시비는 관광사업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이득을 얻기 위한 장치로 보였다.


L에게 환전하고 돌아온 얘기를 하고 가볍게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몸이 아파 여기에서 하루 더 묵을 수도 있는지 호르헤에게 물었는데 다음 손님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왠지 하바나가 우리를 밀어내는 느낌이었고 이곳을 떠나 트리니다드로 가기로 했다. l이 여전히 아파 느지막하게 6시쯤 숙소를 나섰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주변 거리를 걸었다. 빈민가의 무너져 가는 거친 집들 사이에는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무언가를 하고 놀고 있었다. 노란 얼굴을 한 우리는 너무 눈에 띄었고 때때로 chino(중국인)라는 짓궂은 소리도 들려왔다. 너무 많은 이방인 사이와 낯선 거리에서 그들의 신체적 에너지를 느끼게 되니 이국적이고 다른 풍경들이 위협적으로만 느껴져 거리의 인상을 느낄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내일 또 떠나야 한다. 출국 비행기를 사지만 않았다면(이미그래이션에서 아웃 티켓은 묻지도 않았는데... 목적지조차 묻지 않았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기도 힘들었다. 거리를 돌고 돌아 야간에 좋다는 말레꽁 해변에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게 되었다. 바다가 보이고 넓은 도로에 올드카들이 쌩쌩거리며 지나갔지만 매연은 너무 심했고 바다는 특별하지 않았다. l은 나에게 왜 얼굴이 불편하냐고 물었고 나는 마음이 곤두서 있다고 대답했다. 내일 떠나야 할 곳에 대한 정보는 없고, 아바나에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안전하다는 쿠바에서도 이렇다면 과연 터프가이들이 넘쳐난다는 남미에선 어째야 할지 막막한 감정도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스페인어를 하는 여행자가 무척 부러웠다.


가이드 책에 소개된 오로 요새가 건너편에서 보이는 해변까지 걸어갔다 차이나타운에서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비싼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퓨전식당으로 변한 차이나 음식점은 비싼 대신 엄청난 양을 주어 다음날 두 끼 이상의 식량을 비축할 수 있었다. 피자에 한국식 소고기 불고기가 올려져 있어, 볶음밥에 섞어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casa로 돌아오는 길에 유명한 유적지들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떠밀려 집으로 돌아오니 늦은 밤이었고 호르헤는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그는 자신의 손님이 하루 늦을 것 같다고 했고 하루 더 묵을 수 있다고 했다. l이 적절히 가격을 물었고 12 cuc라고 했다. 기분 좋게 하루를 더 묵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순간부터 뭔가 기분 좋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은 일찍 자고 푹 잤는데도 둘 다 일어나기를 힘들어했다. 아마 환기가 되지 않은 곳에서 홈매트가 강력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l은 다행히 두통이 나았지만 기분까지 나아지지 않았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조식을 받아 탁자로 옮겨놓으면서 다른 집이라면 발코니가 되고도 남을 널찍한 2층 마당을 걸어 나갔다. 구름하나 없는 새파란 하늘에 강렬한 햇살이 떠오르고 있었고 햇살에 비친 바래고 낡고 부서진 건물들이 아름다웠다. 2층에서 주변집들을 둘러보았는데 마구 칠해져 있던 것으로 보였던 건물색들은 강한 햇살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가이드 책에서 발코니를 추천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호르헤의 조식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여행자들이 처음에 쉽게 맛볼 수 없는 파파야와 파인애플 자두 비슷한 무언가와 상어처럼 생긴 무서운 과일을 맛볼 수 있었다. 파파야는 끝에 군내가 있었지만 충분히 먹을 만했다. 에스프레소는 좋은 향을 냈다. 상어는 생긴 것처럼 먹기에는 힘들었다. 옥상이 있다면 올라가고만 싶었다.


호르헤는 우리의 일정을 물었고 내일 트리니다드를 가겠다고 했다. 그는 시외로 향하는 고급버스인 비아술 터미널에서 오늘 예약하는 것이 좋다고 했고 거기까지 가는 택시를 인당 1 cuc 잡아주겠다고 했다.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같이 나온 공원은 어젯밤에 우리가 어둠 속에 걸었던 공원이었는데 어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활기차고 멋있는 곳이었다. 그는 공원 중간에서 멈춰서는 택시인지 알 수 없는 차들에 말을 걸었고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몰려들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콜렉티보 택시였다. 10여분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는 택시를 탈 수 있었다. 택시는 타고 내리 고를 반복했고, 택시 기사는 자신이 틀고 있는 음악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라고 했다. 꽤 흥겹고 괜찮은 기분이었다. 음악과 타고 내리는 많은 사람들은 정신없고 정열적인 아바나의 방식으로 느껴졌다. 택시 밖으로 비친 거리는 활기에 넘쳤다. lp레코드판을 가방으로 만들었던 화가 아저씨와 쿠바 야국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기도 하며 신도심이라 불리는 베다도 쪽으로(19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신도시라고 했다!!) 택시는 흘러갔다. 신도시는 센트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거리도 넓고 건물들도 깔끔하게 지어져 있어 언덕진 곳에서는 마치 쿠바의 샌프란시스코 같은 느낌도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훨씬 힘주어 꾸미고 있었고, 어디에나 빈부격차가 있는 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야자수와 낯선 나무들이 잘 자리 잡고 있는 이국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택시기사는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바로 가면 4 cuc이고 아니면 걸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호르헤도 비아술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에게 거리이름을 말했던 것이 떠올라 대충 걸어야 하는 것을 눈치챘고 걷기로 했다. 비아술 터미널까지 널찍하고 굴곡 있는 아름다운 신도심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건물 뒤로 거친 건물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것마저도 조화로웠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나가는 사람의 인상일 뿐이지만 말이다. 지나가며 마신 망고 주스는 3 모네다 정도였는데 어디서나 맛이 훌륭했다. 수입음료는 다소 비싸 1 cuc정도 했다. 쿠바 국산 탄산음료들이 상당이 맛이 괜찮았다. 더워서 시원한 탄산들이 당기다 지금은 아주 시원한 얼음물이 먹고 싶다.


비아술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태우러 온다는 콜렉티보 택시를 타 보려다 30 cuc 이하로 부르는 사람이 없어 25 cuc를 하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버스는 7시간 걸렸고 콜렉티보는 4시간 걸린다고 했지만 쾌적한 버스를 택하기로 했다. 시간상으로 보면 콜렉티보도 충분히 탈만 했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는 길에 카페를 들려 커피를 한잔 마시며 다시 15분을 걸어 콜렉티보 택시를 시도할지 버스를 탈지 고민했다. 책을 읽어보니 버스가 27번 버스가 지나간다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요금이 이상했다. 터미널로 오는 길에 물었을 때 40페소라고 하고 뭔가 다른 말을 붙였는데 뒤를 알 수 없었다. 40 모네다면 그리 싸지만은 않아 버스를 탈까 고민했는데, 책에 따르면 모네다도 cuc도 모두 100 센터보가 있다고 했다. 버스값은 1 모네다의(대략 40원) 40/100인 40 센터보였던 것이었다. 그러니 대략 16원 정도에 버스를 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순간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공산주의 국가라 공공재에 대한 가격이 쌀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도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먹고 어떤 숙박비를 냈는지 정신이 멍해졌다. 왜 택시기사가 희망직업 수위에 꼽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버스를 타기로 결심하고 카페에서 말을 했다.


돈 좀 바꿔 주시겠어요? 왜냐하면 버스를 타야 하거든요.


라며 10 모네다를 드렸더니 스웩 있게 연세가 드신 세뇨라는 알아듣고 1 모네다 동전 5개와 5 모네다를 주었다. 우리는 1 모네다로 버스에 탔고(거스름을 주면 더 곤란할 것 같다) 버스는 신도심과 구도심을 돌고 돌아 오로 요새가 보이는 거리까지 도달했다.


오로 요새의 해 질 무렵은 두꺼운 가이드북 쿠바 파트에서도 첫 번째로 꼽혀 있었다. 이것만 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렵게 말레꼰과 쁘라도 가가 마주치는 곳에서 p8 p11버스를 찾아 지하 터널을 건넜고 걸어 오로 요새에 도달했다. 아름다웠다. 굴곡지어 있는 말레꽁 해변과 아바나를 멀리서 조망할 수 있었고, 오로 성벽 역시도 유려하게 느슨하게 굴곡지어 있어 무척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본 지형 중 손꼽히게 아름다운 해안이었다. 5시 무렵 도착해서 8시 무렵까지 주변을 거닐거나 늘어져 편안하게 놀았다. 다른 성벽으로 가는 중간에 해변아래로 내려가는 길에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그 주변의 낮은 지대에서 보는 건너편 아바나 풍경도 일품이었다. 그러다 다시 오로요새로 돌아오는 길에 목이 말라 1.5리터 물을 사 먹었는데 3 cuc였다. 요지경인 물가였지만 물은 필요했으니까 장사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사러 동네 가게에 들러 햄버거를 샀는데 맛이 훌륭했지만 10 모네다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망고주스를 사 먹고 돌아왔다. 미국에서는 숙박비가 너무 비싸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웃티켓이 열흘뒤인 쿠바에서까지도 이어지는 느낌이었는데 오래간만에 좋은 리듬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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