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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타치는 사진가 Jan 25. 2017

도시와 사람이 함께 꿈꾸는 곳, 서울의 밤 골목

이화동, 만리동...

  어슴푸레  어두워지는 저녁 시간, 가볍게 저녁을 챙겨 먹고 이화동 골목을 찾는다. 대학로의 화려함과 번잡함을 뒤로하고 오르는 이화동 계단 길은 낮의 분주함은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 불빛만 주민들의 귀가 길을 밝혀 주고 있을 뿐. 워낙 관광객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탓인지, 저녁 시간에 삼각대를 들고 어슬렁거리는 아저씨에게 보내는 눈빛이 다른 곳보다 평범하다. 통영의 조용한 주택가에선 낮에도 카메라 들고 어슬렁거리다 변태  취급받은 적도 있고, 시골 마을에서는 삼각대 들고 다니다가 '재개발되는 거냐, 이 밤중에 무슨 사진이냐, 측량하러 다니는 거 아니냐' 등의 질문에 시달린 적도 있는 것에 비하면.


  이화동 산동네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밤거리는 화려하다. 그에 비해 동네의 골목길은 무척이나 낡아 있다.  이곳저곳 벽화가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낮 시간만큼 가난의 흔적을 가리지는 못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 비치는 골목에는 오래된 벽돌이 만들어 내는 익숙한 패턴과 시멘트 담의 거친 질감, 물색없이 튀어나온 파이프 같은 것들이 멀찌감치 보이는 도회지의 번듯함과는 사뭇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다. 어둠은 그늘을 만들지만 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을 들춰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조명에 대해 크게 고려할 것이 없다. 다만 골든 타임처럼 색온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간대만 신경 쓰면 된다. 태양이 거의 유일한 광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태양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인공의 조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공의 광원은 조명의 방식에 따라 색온도가 천차만별이다. 형광등은 파란색을 띠고, 백열등은 노란색을 띤다. 파란 계열의 조명은 차갑게 느껴지고 노랑 계열의 조명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카메라의 색온도를 어떻게 설정해 놓고 찍느냐에 따라 사진으로 보이는 느낌은 천차만별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여기에 플래시를 사용하여 조명을 보태면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사진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렌즈의 화각 때문에 원근감이 달라지는 경우가 그렇고, 셔터 속도나 조리개의 조작 등으로 우리 눈으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른 사진이 찍히게 된다. 색온도의 차이 역시 우리 눈과 카메라가 달리 보는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사람의 시각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아니고 부분 부분 나누어 처리하고 보태어 전체를 만들어 낸다. 이 부분과 저 부분의 색온도가 다르더라도 인간의 뇌에서는 인식하고 있는 원래의 색과 최대한 근접하게 해석하여 전체를 종합하게 된다. 부분적인 색온도의 차이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본래의 색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결국 우리 눈에 들어오는 야경에는 조명에 따른 색온도의 차이가 거의 반영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사진의 경우 20초 이상 노출을 주게 되면 부분적인 색온도의 차이는 더욱더 확대되어 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지게 된다.




  초창기 사진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지역의 진기한 풍경과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 전폭적인 인기를 얻었고 스스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당시 사진가들은 무거운 장비를 챙겨 들고 산과 바다로, 심지어 머나먼 다른 대륙으로 뛰어 나갔다.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상을 보여 주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사진이  일반화되면서 개인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긴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을 간직할 수 있는, 우리의 기억을 확장하고 고정시킬 수 있는 도구로 스스로의 가치를 확장했다. 이제 사진은 우리의 감각 자체를 확장시키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확장된 감각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주변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된다. 사진은 이미 인간의 인식 수준의 한계를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사진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감각과 필름, CCD의 차이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내가 본 대로 찍히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가 무엇을 찍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기록이 아닌 예술로서의 사진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선선한 가을 저녁, 복잡한 생각 없이 휘적휘적 이화동 계단을 오르다 보면 서울 성곽길에 다다르게 된다. 조명과 색온도의 관계 따위는 잊고, 오래된 단독주택들과 번잡한 도심의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서울을 느껴 보는 것도 좋겠다. 아스팔트 위에서 차창 너머로, 보도블록 위로 분주히 걸으며 보는 도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도시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도시를 선뜻 떠날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켜켜이 앉은 도시의 먼지가 닦여지는 느낌이다. 물론 잠시 후에는 다시 그 먼지 속으로 들어가야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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