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겨울

겨울은 충분한 겨울이다

by 이도

겨울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겨울이라고 답하는 이는 더욱 드물다.


대개 겨울은 ‘버티고 지나야 하는 계절’로 여겨진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추위는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었고, 해가 짧아지는 만큼 마음의 그늘이 길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문학과 예술 속에서도 겨울은 기다림이나 시련, 혹은 고요한 상실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마치 봄을 위한 관문처럼 서둘러 벗어나야 하는 계절로 묘사되곤 한다.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겨울은 대부분의 생명이 잠시 숨을 고르는 때이기도 하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라서 겨울이 되면 그동안 바삐 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자연스레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겨울’이라는 말의 어원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머무르다’를 뜻하는 옛말 ‘겻다’에서 ‘겨울’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겨울은 정녕 그렇게 ‘빨리 지나가야만 하는’ 계절일까.

겨울을 견디는 일에만 마음을 쏟다 보면,

살포시 피어나고 있는 이 순간의 풍경을 놓치고 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울은 그 자체로 충분한 겨울이다.

코끝이 시릴 만큼 찬 공기 속에서만 온전히 느껴지는 감각들이 있다.

밤새 내린 눈을 밟을 때의 바스락 소리,

들숨에 폐 끝까지 차오르는 찬 공기의 서늘함,

온 세상이 하얀빛으로 번지는 아침의 설경.


차가운 바람을 피해 들어간 가게에서

손을 녹이며 마시는 따끈한 국물 한 모금,

호호 불어 먹는 군고구마와 호빵의 달큰한 온기,

따뜻한 방 안에서 책을 읽으며 까먹는 귤 한 봉지의 소박한 기쁨.

겨울은 작은 것들 속에 숨어 있던 따스함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은 그래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는 순간들을 품고 있다.

공기가 차가울수록 하늘은 더 맑아지고,

밤하늘의 별들은 어느 계절보다 선명하게 빛난다.

해가 짧아 금세 어둑해지지만, 그래서 낮 동안의 햇빛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크리스마스가 겨울에 자리한 것도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추운 계절일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불빛이 되어주고,

가족과 친구들과 모여 따뜻한 음식을 나누며

작은 선물을 건네고 마음을 전한다.

겨울의 차가움이 사람의 온기를 더 따스하게 드러내는 셈이다.


올겨울이 내게 몇 번째 겨울인지는 알지만,

앞으로 몇 번의 겨울이 남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이 겨울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면,

웅크리고 봄을 기다리기보다

이 계절만의 기쁨과 여유를 찾아보는 것이 더 값진 일일 것이다.


겨울엔 겨울만의 일이 있다.

겨울에만 들리는 소리, 겨울에만 보이는 빛, 겨울에만 느껴지는 맛이 있다.

차가운 만큼 더 따뜻해지고,

고요한 만큼 더 포근해지는 계절.


드디어, 겨울이 왔다.


겨울 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듯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듯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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