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게임문화포럼 칼럼시리즈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1. 이정엽 위원 편 ㅣ
미국의 도시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는 그의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3개의 장소를 언급한다. 제1의 장소인 집과 제2의 장소인 일터는 긴장을 풀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못 된다고 지적한다. 반면 그는 우리에게는 자주 드나들면서 편안하게 쉬거나 좋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나 동네 서점 같은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제3의 장소는 지역 커뮤니티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다.
이러한 올든버그의 분류를 게임업계에 대입해보자면 제1의 장소는 게임 혹은 게임공간이며, 제2의 장소는 이러한 게임을 생산하는 게임 회사로 볼 수 있다. 플레이어는 제1의 장소에서 게임을 즐기며, 게임 개발자는 제2의 장소에서 게임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을 둘러싼 가장 큰 두 주체인 게임 플레이어와 게임 개발자는 그 과정에서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제외하면 서로 제대로 만나지 못할뿐더러 서로 거의 의견을 교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쇼는 단순히 수많은 게임을 전시하는 대규모의 행사가 아니다. 그곳은 플레이어가 개발자를 만나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3의 장소이다. 게임쇼에는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을 둘러싼 각종 컴퓨터 기기, 팬아트, 굿즈, 코스프레 등의 관련 상품과 행사들이 모여들며, 이들을 취재하러 온 저널리스트, VC나 엔젤 같은 게임투자자 등이 섞이면서 거대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만들어낸다. 게임쇼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구매하기를 고대하던 게임들을 가장 먼저 플레이해볼 수 있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개발자나 투자자, 저널리스트 등 업계 관계자들에게는 비즈니스의 고민을 한 번에 모여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소로 작동해 왔던 것이다. 사람에게 집과 일터만으로 생활이 완성될 수 없듯이, 플레이어와 개발자가 서로 만나면서 소통할 수 있는 게임쇼는 그래서 소중하다.
그랬던 것이 코로나(Covid-19) 사태와 맞물리면서 올해 대부분의 게임쇼들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을 택했다. 사실 게임쇼는 기본적으로 대면(對面)을 전제로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전환할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일단 물리적인 공간에서 게임 전시가 어려워지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따라서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회를 제공하려면 사용자에게 게임 실행파일을 배포해야 하는데, 이는 보안 등의 이슈 때문에 게임사들이 꺼리는 방식이다. 따라서 많은 게임쇼들이 실제 게임을 배포하기보다는 게임에 관한 정보들만 정리, 재가공해서 게임쇼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었는데, 이것이 기존 게임쇼의 경험과 멀어지게 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게임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게임쇼를 굳이 방문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 이 글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몇 가지 대안적이고 새로운 방식들을 찾아낸 그간의 게임쇼들을 정리하고,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의 조합을 통해 앞으로 지속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게임쇼의 모습을 예측해 보기로 한다. 대체적인 순서는 그간 열렸던 게임 쇼의 시간 순서를 따르기로 한다.
GDC(Game Developer Conference, 이하 GDC)는 매년 열리는 게임쇼 중에서 컨퍼런스를 주가 되는 다소 아카데믹한 성향이 강한 행사이다. 게임 개발자들 입장에서는 개발의 노하우나 트렌드를 가장 심도있게 공부할 수 있는 행사여서 매년 고대하면서 이때를 기다린다. 더불어 IGF나 GDCA 같이 개발자들이 직접 선출하는 중요한 게임 시상식도 같이 열리기 때문에 매년 주목받는 행사이다. 그러나 올해 3월 중순에 열리기로 했던 GDC의 오프라인 행사는 대부분 취소되었고,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축소되어 진행되었다. 미국에 코로나가 광범위하게 퍼지던 시점이 2월 정도부터였기 때문에, GDC는 거의 마지막까지 오프라인 행사를 열기를 고집하다가 2월 28일 대부분의 행사를 취소한고 온라인으로 전환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그랬기 때문에 GDC 2020의 온라인으로의 준비는 다소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기존에 모스콘 센터에서 진행하던 컨퍼런스의 일부분만 온라인으로 전환하여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GDC 행사장에서 열리던 수만 명이 참가하는 거대한 엑스포와 IGF 및 GDCA 시상식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현장감을 잃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GDC는 그간 GDC Vault 같은 컨퍼런스 아카이빙 플랫폼을 만들어놓고 늘 영상 촬영과 녹화, 프레젠테이션 파일 등을 서비스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신속하게 온라인으로의 전환을 꾀할 수 있었다. GDC는 이때의 위기를 딛고 올해 8월에 있었던 GDC Summer에서 대안적인 온라인 게임쇼의 형태를 보여주게 된다.
비트서밋(Bitsummit)은 매년 5월 쿄토에서 열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비트서밋 역시 오프라인 행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비트서밋은 이를 대신할 온라인 게임쇼 비트서밋 외전(Bitsummit Gaiden)이란 이름으로 한 달 늦게 개최되었다. 비트서밋 외전의 특징은 게임업계가 예전부터 온라인 플랫폼으로 가꿔온 디스코드(Discord)와 트위치(Twitch)를 통해 온라인 게임쇼를 지원했다는 점이다.
디스코드는 PC용 온라인 음성채팅 프로그램으로 몇 년 전부터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글로벌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채팅과 음성뿐만 아니라 영상, 게임방송을 자체적으로 지원하면서 사용자가 부쩍 늘었다. 또한 트위치는 유튜브와 더불어 게임 방송의 양대 산맥 플랫폼으로 입지를 다져왔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익숙한 플랫폼이어서 인디게임 팬들은 별 거부감 없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비트서밋 외전은 디스코드를 이용해 전시할 게임별로 채팅 및 게임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개별 채널을 개설하고, 트위치를 통해 각 개발자들이 방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만 대부분의 게임 채널에서 게임 홈페이지나 구매 페이지에 접속할 수는 있었지만, 실제 게임이 배포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게임쇼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게임 플레이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보이프렌드 던전>, <네버송>, <파이트 크랩>, <치코리> 등 플레이해보고 싶은 게임들이 많았으나, 실제로는 개발자의 게임 방송을 지켜보며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수준에 그쳤다.
성남산업진흥원과 한국모바일게임협회에서 주최하는 인디크래프트는 올해 4회째를 맞는 인디게임 공모전이다. 인디크래프트가 여타의 다른 게임쇼보다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게임 부스를 가상공간 내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디크래프트는 협찬사인 엑솔라(Xsolla)가 제공한 유어 월드라는 일종의 메타버스를 가상의 게임공간으로 활용하여 게임쇼를 진행했다. 가상공간 내에서는 각 게임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부스뿐만 아니라, 전시작이 아닌 간단한 미니 게임도 즐길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형태의 가상 게임쇼는 국내에서는 첫 번째 사례였다.
그러나 인디크래프트 역시 가상공간의 게임쇼는 비트서밋과 마찬가지로 전시작 게임들을 배포하지는 못했다. 게임 배포에는 여러 가지 보안과 관련된 이슈들이 존재해서 게임 개발자들이 이를 꺼리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디크래프트는 클라우드 게임을 대안적인 배포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추진했으나, 결국 가상공간의 게임쇼를 완성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또한 플랫폼의 한계로 서양인의 모습으로만 아바타를 정할 수밖에 없다던가, 메타버스 사양이 높아서 저사양 컴퓨터나 모바일에서 진행이 불가능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GDC Summer는 올해 코로나 사태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강연과 대규모의 엑스포를 연기하게 된 GDC가 향후 온라인으로의 전환을 꿈꾸면서 시도한 컨퍼런스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시대 이후의 게임 시장을 전망하는 강연들이 많이 시도되어 8월 초에 개최된 GDC Summer에서는 추후 다른 게임쇼나 컨퍼런스가 참고할만한 몇 가지 지침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아시아, 유럽, 북미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시간대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컨퍼런스는 한국 시간으로 밤 10시경에 시작하여 다음날 오전 12시정도까지 계속되는데, 아시아의 청중들을 고려하여 새벽 2-7시 사이에는 중요 세션을 배치하지 않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컨퍼런스의 시작은 샌프란시스코 로컬 커피 프렌차이즈의 브루잉 영상을 보면서 청중들이 각자 집에서 커피 한 잔씩 내려가면서 컨퍼런스를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컨퍼런스 1일 차가 끝날 때에는 현지 유명 BJ가 진행하는 칵테일 제작 라이브 쇼를 열어 청중들이 집에서 같이 칵테일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이 때 만든 "Life is Strange"라는 칵테일은 유명한 게임 타이틀이기도 하면서, 이번 Covid-19 사태에 대한 은유로도 작동한다.
더불어 전시 기간 내내 가상의 커뮤니티 갤러리를 만들어서 지역 예술가들과 게임 업계 비주얼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3D로 구현된 이 가상의 갤러리는 실제 미술관을 걸어 다니는 경험과 거의 유사하게 만들어서 차후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 다가올 게임쇼들이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대응을 하는가이다. 이미 대규모의 집단적인 오프라인 게임쇼는 진행이 어렵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때문에 많은 게임쇼들은 온라인을 통해 과거 게임쇼의 경험들을 살려야 한다.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은 과거 인디게임 개발자들과 플레이어가 만나 게임에 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경험을 클라우드 게이밍을 통해 되살리고자 한다.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은 올해 LG유플러스와 제휴하여 지포스 나우(Geforce Now)를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온라인 게임쇼들이 그간 게임을 배포하지 못했던 이유는 보안 이슈 탓이 크다. 스마트폰에서 설치 가능한 apk 파일은 디컴파일을 통해 소스코드 분석이 가능하여 게임 개발의 노하우가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클라우드 게임은 이러한 배포와 다운로드의 과정 없이 플레이어가 게임 화면만 전송받는 방식이어서 보안의 이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지스타를 비롯하여 많은 국내외의 게임쇼들이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게임쇼들이 잃어버린 장소성을 온라인을 통해 얼마나 실제에 가깝게 회복하느냐가 앞으로 놓인 숙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사회와의 결합, 보안 이슈로부터 자유로운 게임 배포, 게임 개발자와 플레이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플레이어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오픈 플랫폼,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게임이 가장 필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순천향대학교 한국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20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게임×생태계 분과 총괄)
다른 위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서문_코로나19 이후의 게임 생태계 /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교수 CLICK
1탄_코로나 시대의 게임쇼 방향과 그 변화 /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교수 CLICK
2탄_게임비평의 좌표계, 그리고 미래의 비평 / 이경혁 칼럼니스트 CLICK
3탄_게임은 게임이다 / 김종화 핸드메이드게임 대표 CLICK
4탄_게임하기와 보기 /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