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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임문화포럼 Sep 17. 2020

게임비평의 좌표계, 그리고
미래의 비평

2020 게임문화포럼 칼럼시리즈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2. 이경혁 위원 편 ㅣ


비평이 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비평을 언급한다


비평이 무엇인지를 손쉽게 정의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고 모두의 공통된 동의를 받기도 힘든 일이겠지만, 그래도 간략히 뭉뚱그리자면 ‘대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에 답하는 과정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나 미술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비평의 스탠스가 늘 그러했고, 20세기 들어 급증한 여러 대중문화 텍스트들에 대한 비평들 또한 어지간하면 이 질문의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매우 여러가지다. 개수로서의 여러가지라는 의미를 넘어 ‘이해’라는 단어의 뜻 마저도 여러가지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해석과 소화의 방법은 가짓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가능성에 놓이고, 서로 다른 의견 사이의 옳고 그름은 가릴 수 없게 병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평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그 방법 자체가 무한에 가깝게 다양하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평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특히 디지털게임의 경우라면 비평은 꽤나 뜨겁거나, 혹은 모두가 선망하거나, 반대로 모두로부터 냉소받는 개념으로 거론되곤 한다. 인터넷에서 게임비평에 대한 검색을 해 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모습들이다. ‘비평은 이래야 한다’는 선언과, ‘그것은 진정한 비평이 아니다’라는 부정과,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왜 비평 따위를’이라는 냉소가 비평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한 두 가지로 정의하기 어려우면서도 끊임없이 비평이 거론된다는 것은 디지털게임 비평이 갖는 존재감 자체는 꽤나 인정받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른 매체도 마찬가지였지만, 비평은 그 자체로 특정한 텍스트 혹은 텍스트를 포괄하는 맥락 전체를 사회의 담론장 안으로 끌어들여오는 기능을 수행한다. 문학 비평이 문학의 가상계를 현실과 연결시키고, 미술 비평이 현존하는 세계의 의미로 작품을 끌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비평 또한 게임을 우리 일상의 담론 일부로 가져온다. 그것이 대단한 고담준론의 성격이건 아니면 간단한 조이스틱 입력방식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건 상관없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른바, ‘게임은 문화다’라는 슬로건(이 슬로건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을 유의미하게 완성시키는 일 또한 결국 비평의 역할이기도 하다. 한 게임은 그것을 플레이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이미 문화이지만, 그것이 문화임을 설득하고 논의하는 과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인 소통 과정에 놓이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에 대한 이해가 아직 게이머 – 비게이머 사이에 큰 간극을 이루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게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자 답변으로서의 게임비평은 시대적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실천적인 말하기이자 글쓰기로서, 문화로서의 게임 활동에 한 축을 이루는 일이 된다.





게임비평, 게임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들


게임비평으로 분류될 수 있을 활동들은 현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유튜브나 트위치 등의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스스로를 ‘게임리뷰’ 라고 칭하는 콘텐츠들은 비평적 성격을 갖고 있지 못한가? 좁은 의미의 비평이라면 아닐 수도 있지만,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좀더 넓은 의미로 비평을 생각한다면 비평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은 없다. 유튜브 게임 리뷰들은 새로 나온 게임의 유형과 패턴을 살펴보고, 그 완성도가 어느 정도이며 게이머들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지를 평한다. 특정 게임의 가격과 플레이타임, 재미를 두고 비교하는 가성비에 대한 언급들도 지불한 돈과 획득하는 즐거움을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에서 꽤나 사회적인 비평이다. 


각종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볼 수 있는 글들 또한 비평적 가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정제된 언어였다면 좋았을 거라는, 욕설과 비아냥이 한가득인 상황을 넘어서면 아마도 가장 풍성한 게임 언저리의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일 것이다. 나는 이 게임을 얼마나 재미있게 했다, 이 게임은 이른바 ‘똥겜’이다와 같은 간단한 평가부터 시작해서 특정 장르의 마니아가 신작 게임의 장르적 완성도를 평하기도 하고, 배경이 된 다른 게임의 요소들을 설명하기도 하며, 특정 게임의 공략이나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텍스트비평부터 메타비평, 맥락비평까지 다채로운 방식들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대체로 상품으로서의 게임 소개나 뉴스에 집중하는 경향은 있지만, 여러 게임 전문 웹진들 또한 비평의 의도를 품은 많은 기사들을 쏟아낸다. 정돈된 매체 플랫폼 안에서 바이라인을 달고 출고되는 기사들의 경우에는 나름의 파급력을 갖추기 때문에 게임 담론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좀더 높은 영향력을 갖기도 한다. 전문지 기자로서의 경험과 인사이트들을 활용하며 자신이 바라본 게임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기사들 또한 현재의 게임담론 씬을 만들어내는 주요 구성요소 중 하나다. 


블로그 등을 통한 문자 형태의 비평, 리뷰들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갑작스럽게 밀려든 동영상 플랫폼으로 인해 과거보다 점유율이나 인지도, 트래픽이 크게 떨어진 바 있지만 시청각 영상과는 또 다른 형태로 정제된 텍스트 형식의 게임 담론들이 갖는 의미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장문 중심의 블로그 뿐 아니라 SNS와 같은 플랫폼에서도 ‘게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은 다채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론적 비평의 퇴보 혹은 한계


분명 게임비평의 성격을 가진 많은 텍스트들이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것은 사실이고 적지 않은 게임에 대한 담론들이 게이머 커뮤니티라는 테두리 안에서 활발히 움직여 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비평이라는 형식의 2차 텍스트가 가져 온 또 하나의 역사적 맥락은 이러한 현재의 비평 환경에서 뒷자리로 밀려난 경향이 있는데, 이론의 영역이다.


자연과학에서의 이론이 가설과 검증을 통해 존재하는 사실의 원리를 규명하는 방식이라면, 인문사회 계열에서의 이론은 좀더 사건을 어떤 관점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가 라는 프레임의 문제에 가깝다. 복잡하고 다난한 현상의 맥락을 특정한 관점에서 정리해낼 수 있는 힘은 정돈된 이론과 관점에서 나온다. 


이론 기반의 게임비평에 대한 시도도 한국에서는 적지 않았다. 이른바 1세대 게임평론가라고 부르는 그룹들의 작업들이 체계화된 게임 보기/읽기에 대한 시도를 했고 관련 저작들도 나름 쏟아져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NHN은 게임비평 공모전을 열어 예술/사회비평의 확대를 게임 영역 안에서도 만들어내고자 시도한 적이 있었다. 2008년 NHN과 한국게임산업진흥원,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공모전은 2012년 제 5회까지 진행되며 게임비평의 한 축을 만들고자 했지만, 제 5회를 끝으로 더 이상 행사를 이어가지는 못하고 종료되었다.


이론적 비평의 장을 이어 나가려던 시도가 끊긴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이유로는 이러한 비평적 시도의 효용에 대한 문제제기일 것이다. 생산된 비평을 읽고자 하는 독자층이 턱없이 빈약했고, 이러한 빈약함은 주최측으로 하여금 행사의 의미를 찾기 어렵게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 물론 수요층의 빈약함은 비단 게임비평이라는 영역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비평이라고 불려 온 많은 다른 매체/영역에서의 시도들 또한 이른바 ‘비평의 위기’라는 시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 음악, 문학 등 비평이 활약하던 구역 전반에서 비평이 과거에 비해 크게 퇴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게임영역의 비평이 유독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거가 빈약한 상상에 머문다. 


[그림] 2012년 제5회 게임비평상 공모전 홍보물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다른 비평의 방식에 비해 이론적으로 쓰여진 비평이 더 우월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비평의 존재양식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이론적 검토를 시도하는 게임비평의 영역 또한 존재해야 하고, 그러한 관점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사회문화 전반에 미칠 영향력의 긍정적 측면을 계산해야 한다. 서브컬처에서 대중문화로의 급격한 전환을 맞고 있는 디지털게임이 대중문화 전반에서 받고 있는 다소 철 지난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대중문화담론장 안에 발붙이기 위해서라도 이론적 비평의 존재는 의미를 갖는다.





누적되는 담론 속에 이론적 비평도 꽃필 것


대중적인 의미로서의 비평 담론이 계속 다양한 형태로 커져나가는 와중에 이론적 의미로서의 비평이 퇴조하고 있는 현재의 게임비평 영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비평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현실적으로 더 큰 난제 앞에 선다. 현직 칼럼니스트이자 비평가로서 매번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나열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쨌든 한 편의 영화 시청에 드는 시간이 2시간 내외인 점을 감안할 때, 끊임없이 패치되면서 변화하고 영속하고 있는 온라인 기반의 게임은 어떻게 비평할 수 있는가? 끝없는 레벨업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 전체가 텍스트인 관계로 플레이에만 수백 시간을 써야 하는 게임의 경우에는 어떻게 비평할 수 있는가? 기존 매체들과는 사뭇 달라진 수용양식, 이른바 우리가 ‘플레이’ 라고 부르는 향유 행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쉽사리 답변을 내놓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른 영역에서 비평의 걸음들이 걸어온 길을 본다면, 거기서도 어떤 대이론가가 출현해 갑작스럽게 비평의 갈 길을 열어 준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음을 유념해야 한다. 대개 비평들은 작은 것 하나에 대한 의견, 소설 한 권에 대한 개인적 감상들이 켜켜이 쌓여 가며 맥락과 관점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좀더 메타적인 형태를 잡아 나가는 방식으로 발전해온 바 있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게임의 문화적 의미를 (향상이 아니라) 현대 대중문화 지형에서 제위치에 올려놓기 위해 필요한 비평의 목소리를 이야기해온 바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향하는 방법은 갑작스럽게 ‘이것이 진정한 비평’임을 선언하는 방식에 있는 것은 아니다. 커뮤니티에서의 댓글 하나, 스트리머의 유튜브 영상 하나, 그리고 거기 달리는 댓글 하나가 쌓이고 쌓이며 게이머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게임을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게임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라는 방향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재미있느냐 없느냐의 취향을 이야기할 것이고, 누군가는 디지털게임의 역사적 맥락 속에 발전해 온 장르나 인터페이스의 계보를 이야기할 것이고, 누군가는 특정 메카닉의 형성과 발전의 양상을 이야기할 것이고, 누군가는 특정 게임의 세계관이 현실의 어떤 사상, 어떤 사건을 되받아 그려낸 것인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 하나하나가 넓은 의미에서의 게임 비평이며, 좁은 의미의 비평 또한 그처럼 많은 비평의 가지들이 토양으로 두텁게 쌓였을 때에야 비로소 발아 가능한 무언가가 될 것이다. 급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당장 ‘진정한’ 게임비평이 없음에 몸 달아 하지 말고, 나의 작은 피드백 하나부터가 비평적 관점의 피드백이라는 생각이 켜켜이 쌓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실들이 조금씩 대중 사이에 받아들여지기 시작할 때쯤, 우리는 비평을 통해 비로소 ‘게임은 문화다’라는 말을 슬로건이 아닌 채로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을 것이다.

리즈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2. 이경혁 위원 편 ㅣ



이경혁

평론가

2020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박사과정(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석사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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