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임문화포럼 Sep 24. 2020

게임은 게임이다

2020 게임문화포럼 칼럼시리즈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3. 김종화 위원 편 ㅣ


어느새 코로나라는 현실 질병에 의해 잊히는 듯하지만, 작년 이맘때 ‘게임 중독 장애’가 WHO의 질병 코드에 등록되며 한창 온라인이 뜨거웠다. ‘게임은 중독물질’이라는 기성 언론과 정신과 의사 관련 협회의 프레임에 맞서기 위해 게임 개발자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자 했고, 여러 크고 작은 게임 회사와 인디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은 문화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온/오프라인에서 나름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 구호는 지금까지도 게임 개발자들의 SNS 프로필 사진으로, 게임 공모전이나 토론회의 슬로건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필자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그들이 말하는 문화란 대체 무엇인가? 과연 한국 게임산업이 당당히 문화라고 할 만한 게임을 만들고 있는가? 만약 게임이 문화라면 그것은 어떤 문화인가? 당시에는 업계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딱히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비단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필자는 학자도, 게임 비평가도 아니고, 게임 업계를 대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저 게임을 만드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당시 떠올랐던 나름의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작년 한창 게임중독 이슈가 뜨거웠을 당시, 필자에게 불편함을 넘어 분노와 자괴감까지 들게 한 것은 대형 액션 RPG 게임(Role Playing Game, 롤플레잉 게임)들로 국내 게임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게임을 반대하는 측에게 사행성 중독 프레임이라는 아주 좋은 명분을 만들어준 대기업들의 침묵이었다. 그 분노는 적어도 매출로만 봐도 한 산업을 대표한다고 할 만한 기업들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기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들이 나서서 ‘게임은 문화다’ 따위의 구호를 외치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사행성 게임을 만들지 않는 게임 개발자도 함께 싸잡아서 욕을 먹었는데, 정작 그 원인 제공자는 변호인 중에 쏙 빠져 있으니 여러모로 참 웃픈 상황이었다.



[그림] 방 안의 코끼리 (출처: TIEDEMANN)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는 표현이 있다.


무엇인가가 큰 문제임을 모두 알고 있지만, 누구도 차마 이를 해결할 수 없어서,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현상을 비유한 표현이다. 필자가 이곳에 글을 쓰는 것처럼, 한편에서는 정부 사업을 통해 인문·사회, 산업계 등 각계의 인사들이 게임의 순기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당장 마켓에 대부분의 매출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사행성 게임들은 여전히 몇 년째 매출 순위를 점거하고 있다. 이 간극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게임의 문화담론이나 순기능에 대한 어필에도 힘이 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게임과 문화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게임 디자인 서적의 삼합 중 하나로 불리는 <게임디자인원론>(원제: Rules of Play)은 688페이지로 이루어진 4개의 챕터 중, 마지막 1개의 챕터 전부를 문화의 프레임으로 게임을 바라보는데 할애한다. 책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문화’는 매우 유연한 개념으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 행동,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산물을 포괄적으로 일컫는다. 하지만 게임 디자인적 관점에서, ‘문화’는 게임의 고유한 속성, 즉 ‘룰’과 ‘플레이’ 외부에 존재한다. 어떤 게임도 진공 속에서 플레이되지 않으며, 게임의 문화적 속성은 한 게임이, 특정한 공간적, 이념적, 정치적, 현실적 맥락 속에서 플레이될 때 발생한다.


[그림] 「Rules of Play」표지와 번역본 「게임디자인원론」표지(출처: The MIT Press, 지코사이언스)

(국내에 출시된 번역본에는 문화에 관한 챕터 4는 빠져 있다.)


책에 따르면, 대부분의 게임은 그 게임이 만들어지고 플레이되는 사회의 문화를 어느 정도 반영하며, 그중 일부는 게임의 경계를 넘어 문화 자체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심즈>가 단지 교외 생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 너머에 있는 현실 세계의 문화적 상호 작용의 묘사이듯, 올림픽 경기가 그저 일련의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국제 정치가 게임의 플레이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복잡한 행사이듯, 우리는 게임을 통해 그 게임이 반영하는 사회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Star Craft)> 같은 RTS 게임이 90년대 말 한국 사회와 맞물려 e스포츠 시대를 열었고, 그 문화가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LOL)>로 이어져 전 세계적인 e스포츠 문화가 되었듯이, 어떤 게임은 문화 그 자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문화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게임은 문화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문화’라는 단어 자체의 어떤 지적이고, 예술적이거나, 새롭고, 창의적인 그런 긍정적인 뉘앙스를 방패로 삼기를 원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꼰대 문화, 도박 문화 등, 부정적인 문화도 있고, 한국 고유의 ‘정’ 문화처럼 한때는 긍정적이라고 생각됐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는 문화도 있듯이, 문화 자체가 어떤 긍정적인 가치 판단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확률형 아이템과 사행성으로 점철된 어떤 게임이 대히트를 쳐서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하여 ‘도박 문화’를 꽃피운다면, 그것이‘게임은 문화다’라는 슬로건에 당위성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게임의 ‘문화적임’을 내세우기 위해 (주로 해외의)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몇몇 게임을 가져와서 ‘게임이 이렇게 예술적이고 문화적입니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어필을 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주장은 게임 업계에서보다는 매체로써 게임을 연구하는 학계나 코어 게이머에게서 종종 들린다. 물론 그들의 주장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정작 국내의 게임 시장은 예술성이나 문화와 거리와 먼 양산형 사행성 게임들이 장악했는데, 선택적으로 몇몇 게임들을 가져와서 반론의 근거로 제시하는 주장은 대중들에게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특정한 예술적, 사회적 가치를 지닌 게임만 ‘문화적’이라는 태그를 붙이는 것은, 자칫 게임이라는 매체를 너무 좁게, 배타적으로 바라볼 위험도 있다.


그래서 게임이 문화냐 묻는다면, 물론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받고 영향을 미치는 생산물로써 물론 게임은 문화적 매체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문화가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똑같은 기준으로 영화도, 음악도, 웹툰도, 라이트노벨도, 인터넷 방송도 모두 문화이다. 그렇기에 ‘게임은 문화다’라는 명제는 정작 게임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게임’ 자리에 다른 그 무엇이 들어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게임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대중들이 게임을 중요한 문화 매체의 하나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한탄이 있어왔다. 하지만 대중들이 인정하든 말든, 게임은 이미 문화적 매체로써 우리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고, 좋든 나쁘든 어떤 식으로든 다시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무한 경쟁, 달성 중독, 결과 중심의 문화는 이미 수많은 대작 MMORPG 게임(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등을 통해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 현실의 재화가 고스란히 게임 세계의 결과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런 게임들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사회의 경향을 알게 모르게 강화시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임이 문화냐 아니냐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게임을 만드는 이들이 매체로써 게임의 영향력을 직시하고 인식하는 일이다.


[사진] 리챠드 르마샨 교수 (출처: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공식 홈페이지)


게임은 게임이다


필자의 유학 시절, 게임 <언차티드(Uncharted)> 시리즈의 디렉터이자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인터랙티브 미디어·게임 디비전(USC IMGD)의 교수인 Richard Lemarchand(리챠드 르마샨)은 “게임은 다른 모든 매체를 그것을 만들 재료로 쓸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매체이다”라고 말했다. 수업에서 흘리듯 한 말이었지만, 게임의 매체적 특성을 잘 표현하면서 게임을 만드는 이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었기에 뇌리에 깊게 남았다. 게임을 사랑하는 이들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에 맞서 게임을 변호하기 위해, 일부 게임에서 어떤 효용을 끄집어내거나, 문화 같은 모호한 방패 뒤에 숨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을 만드는 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세심하고 영리해져야 할 것이고, 자신이 만드는 게임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하는 모든 이들이‘게임은 게임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화

핸드메이드게임 대표

2020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08년~현재 핸드메이드게임 대표

2019 게임<룸즈: 장난감 장인의 저택> 출시

2013 USC Interactive MEdia & Games Division 석사졸업

2010 성균관대학교 영상학 전공학사 졸업








다른 위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서문_코로나19 이후의 게임 생태계 /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교수 CLICK

 1탄_코로나 시대의 게임쇼 방향과 그 변화 /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교수 CLICK

 2탄_게임비평의 좌표계, 그리고 미래의 비평 / 이경혁 칼럼니스트 CLICK

 3탄_게임은 게임이다 / 김종화 핸드메이드게임 대표 CLICK

 4탄_게임하기와 보기 /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CLICK

매거진의 이전글 게임비평의 좌표계, 그리고 미래의 비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