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임문화포럼 Sep 03. 2020

게임 이용 장애와 포스트 코로나

2020 게임문화포럼 칼럼시리즈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이용자1. 이장주 위원 편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공식 질병코드를 포함하는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을 발표하였다. 발표된 게임 이용 장애(6C51)의 진단기준은 1) 게임에 대한 통제 불능 2) 삶의 다른 관심과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 3)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등 중요 영역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해도 게임을 지속하는 행동이 12개월 이상 명백해야 함 등을 제시했다.


게임 이용 장애(6C51)의 진단기준

1) 게임에 대한 통제 불능
2) 삶의 다른 관심과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
3)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등 중요 영역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해도 게임을 지속하는 행동이 12개월 이상 명백해야 함


 언뜻 보면 아무 문제없는 기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게임 이외에 어떤 항목(골프, 일, 드라마, 종교, 자녀교육 등)을 넣어도 다 통용이 된다. 그렇다면 그 어떤 항목들을 제치고 왜 게임만 들어갔을까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게임 질병코드의 관점은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전의 과거 시대의 기준으로 설정되었기에 현재도 타당한지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점들을 살펴보고 질병코드의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사회문화적 기준 변화와 정신장애


정신장애를 구분하는 핵심 기준 중 하나인 ‘적응’은 사회문화적 기준으로 판단된다. 즉 적응과 부적응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사회문화적 기준이 정신장애 판단 여부에 영향을 미친 사례들 중 대표적인 사례는 ‘동성애’와 ‘드라페토마니아’가 대표적이다.


동성애는 전통적으로 치료되어야 할 정신장애로 여겨졌었다. 성관계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사회의 재생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이에 반하는 동성애는 심각한 부적응이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었다. 그러나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APA)가 발행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DSM-Ⅲ)에서 동성애를 정신장애 진단명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과학적 연구결과라고 보다는 기술적인 진보와 사회적 운동 및 인식의 변화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판단된다(Adam, 1987). 1950년 미국 국무부에서 작성한 국가적 위험을 초래할 집단으로 공산주의자와 함께 동성애자도 포함되었다. 이런 이유로 동성애자들은 대학에서 쫓겨나거나 심지어 교도소나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1952년 DSM은 동성애를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등재하였고, 이후 진행된 연구에서 ‘부모와 자신 관계의 정신적 충격에서 야기된 이성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에서 비롯된 장애’라는 결론을 내렸다(Edsall, 2003). 사실 이런 반응은 미국만의 일은 아니었다. 1952년 영국에서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던 앨런 튜링이 동성애자로 체포되었다. 그는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받는 조건으로 감옥에 가는 것을 피했지만 2년 후인 1954년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베어 물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물론 이성애와 동성애자 사이에 행복과 심리적 특성에 차이가 없다는 연구도 있었지만 대세의 변화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사회적으로 동성애가 정신장애에서 삭제된 계기는 DSM-개정판이 나오기 4년 전인 1969년 일어난 스톤월 항쟁이 강력한 계기가 되었다. 동성애자들이 모임을 하는 바였던 ‘스톤월 인’에 경찰이 급습을 하게 되고, 이때 강력하게 저항을 하면서 대규모 시위로 번져갔다. 이런 사회적 움직임은 숨어서 지내던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면서 인권운동으로 확대되면서 동성애가 정신장애가 아닌 인권의 이슈로 바뀌게 되었다. 이런 사회문화적 변화가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동성애를 정신장애 목록에서 삭제하는 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즉 정신장애에서 개인적 취향으로 질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과학적 연구 결과가 아닌 사회문화적 기준의 변화가 만들어 낸 성과인 것이다. 참고로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은 스톤월 인과 인근 크리스토퍼 공원을 소수자 인권의 상징성을 인정하여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사례로 ‘드라페도마니아’를 들 수 있다(Beard & Findlay, 2000). 1851년 미국 루이지애나의 카트라이트(Cartwright)라는 의사는 '드라페토마니아(drapetomania)'라는 새로운 정신질환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어로 드라페테스는 '탈출'을 뜻하고, 마니아는 '광기'를 의미한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탈주 장애'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카트라이트는 이 병이 노예들을 자비로운 주인들로부터 탈주시켜서 재앙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그리고 "적절한 의학적 자문(치료)을 받으면 많은 흑인들이 탈출하는 이런 골치 아픈 사태를 거의 완전히 예방할 수 있다."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굴욕적인 생존조건에서 탈출하려는 노력이 정신질환자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만 그 당시에는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일간 신문에서 평가되었다고 전해진다.


노예를 도망치지 못하게 치료를 할 것이 아니라 도망칠 필요가 없이 해방을 시키자던 급진적인 사람 링컨은 트라페토마니아라는 질환이 제기된 지 딱 10년 후인 1861년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미친 사람들이 세상을 잡은 것이 아니라 미쳤다고 하던 사람들이 세상에 뒤쳤졌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라는 운동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날 뿐이다. 


정상과 비정상은 사회문화적 관점이 반영된 평가다. 과거 동성애를 반대하거나 노예제를 찬성하는 것이 적응적인 사회가 있었다. 하지만 사회문화와 기술이 바뀌면서 적응의 기준도 바뀌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이끌었을까? 앞선 두 사례의 사회문화적 기준 변화는 크게 볼 때 기술적 진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드라페토마니아가 등장할 무렵은 산업혁명이 확산되던 시절이다. 생산수단으로써 인간의 근육을 기계가 대체하기 시작하던 때라는 의미다. 또한 동성애의 질병코드 삭제는 피임기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성관계와 출산이 분리될 수 있는 기술적 배경은 개인적 취향으로써 성적 선호의 양상으로 확산된 것이다. 만일 산업혁명과 피임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사회문화적 기준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게임산업 기술이 기반이 된 인공지능(AI)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서는 지금, 게임이용장애를 판단하는 사회문화적 기준이 여전히 과거와 동일한가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따름이다.     





2. 게임 이용 장애의 기준에는 문제가 없는가

   

기본적으로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은 게임 이용 장애와 관련이 없다고 의학계는 밝히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게임을 많이 하여 적응에 문제를 경험하는 이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지 않느냐는 항변은 일면 타당한 듯보여진다. 정말 그럴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게임과몰입 혹은 중독 척도는 1996년 영(Young)의 인터넷 중독 척도(IAT: Internet Addiction Test)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영은 인터넷 채팅에 빠진 주부의 사례를 토대로 미국 정신의학회에 보고를 하며 인터넷 중독이란 개념이 탄생하게 된다. 그 영척도는 내성, 금단현상, 갈망 등 약물중독 기준을 차용하여 만들어졌다. 정보화 사회의 급속한 진전으로 인터넷이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터넷 중독은 진단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모두 중독이라는 것은 아무도 중독이 아니라는 의미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인터넷 전반이 아닌 일부의 사용 문제로 축소해야 했다. 그러면서 나온 것이 바로 ‘인터넷 게임중독’이다. 실상 인터넷 중독이라고 하기엔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니 그 범위를 좁힌 것이 바로 ‘인터넷 게임’이란 용어가 등장한 배경이다. 물론 인터넷 게임중독 척도는 ‘인터넷’을 ‘게임’으로 대체하여 측정하는 방식을 취하지만, 여전히 메신저, 검색, 동영상 스트리밍 등이 포함된 인터넷과 게임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논문과 보고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림] 「한국판 인터넷 게임장애 척도의 타당화」 중 (출처: Korean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2017)
[그림] 인터넷 주 이용목적 (출처: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2016). 인터넷 게임중독의 공중보건학적 모델 개발 및 폐해 실태조사 최종보고서)


첫 번째 논문에서는 인터넷이 과다사용이 문제라고 하면서 ‘인터넷 및 게임중독’ 연구라는 이름으로 게임이 갑자기 등장한다. 이런 논리는 두 번째 보고서에서 확인된다. 인터넷 중독 고위험군 중 28%가 온라인 게임(인터넷 게임이 아니라 온라인 게임?)을 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을 주로 이용하지 않는 인터넷 중독 고위험군 82%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그마저도 인터넷 중독 위험군의 32.4%는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를 주로 이용했다. 22.3%인 온라인 게임 주 이용자들보다 1.5배 더 많은 수치다. 게임보다 더 심각한 문제 영역이 도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에 초점을 둔 이유는 과학적인 이유라기보다는 다른 의도가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합리적으로 의심된다.


여기에는 게임은 알코올이나 마약과 근본적인 작용이 같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사람이 알코올이나 마약과 같은 물질에 중독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게임이 유해물질이어서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셧다운제의 논리로 이어진다. 마치 청소년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것과 유사한 논리다. 그러면서 제시한 논리들은 뇌가 망가지거나 도파민 분비 체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 숨어있다. 게임은 술이나 마약과 같은 물질이 아니다. 단순한 자극이 신체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발생시키는 인문의 영역이다. 만일 게임이 인간의 뇌와 내분비 체계를 망쳤다면 20년이 넘게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프로게이머들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 관찰되어야 타당하다. 또 수많은 게임 개발자와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사고와 행동체계에 문제가 발생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런 사례가 보고된 것은 전혀 없다. 점점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남에도 말이다.


심지어 게임중독 관련 현상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관찰된다. 첫째, 2019년 11월 1일 개최된 ‘인터넷게임장애 국제공동연구 심포지움’에서 페리 랜쇼 교수는 "연구 추진을 위해 인터넷게임이용장애 진단 기준에 맞는 대상 모집이 필요한 상황이나 미국에서 대상자를 모집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라며 "모집된 15명도 인터넷 의존 점수가 낮아 진정한 인터넷게임이용장애 대상자로 보기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즉 미국에서 15명의 인터넷게임이용장애를 가진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는 의미다(ZDNet Korea). 둘째, 전국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인터넷·게임 중독 상담자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228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8년 101명, 2019명 72명 등 2년 새 3분의 1 이하로 감소했다. 광역센터 가운데 대전센터는 2015~2019년에 총 4명만 인터넷·게임 상담자로 등록했으며, 부산센터를 비롯하여 충북과 충남에 있는 3개 센터(청주·아산·천안) 등 4개 기관은 최근 2년 동안 등록자가 없었다(전자신문). 인터넷과 게임이 합쳐진 수치라는 점에서 게임중독 등록자는 이보다 작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상담자가 줄어드는 것은 게임이용장애가 현실의 문제라기 보다는 과도한 불안이 만들어낸 과장된 문제일 가능성이 시사되는 증거들이다. 



이런 문제가 나타나면서 게임 이용 장애와 관련된 접근의 변화가 나타난다. 약물중독에서 행동중독 계열로 바꾼 것이다. 대표적인 행동중독은 도박 장애(Gambling disorder)이다. 도박 장애는 약물중독과 다르게 내성과 금단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또한 갈망 역시 불확실하다. 이번 ICD-11의 게임 이용 장애는 도박 장애와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었다. 즉 게임(Game)과 도박(Gambling)이 같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도박은 온/오프라인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번 게임 이용장 애도 온/오프라인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림] ICD-11 for Mortality and Morbidity Statistics (Version: 04/2019)

(출처: https://icd.who.int/browse11/l-m/en#/http%3a%2f%2fid.who.int%2ficd%2fentity%2f1448597234)


게임은 그저 운수나 요행을 바라며 금전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도박과 같다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게임 종류 중 그런 것이 없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게임들은 아름답거나 장엄한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게임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이런 스토리가 주는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수십, 수백 시간을 들인다. 과연 이런 것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도박이 있을까? 또한 네트워크 게임은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적을 위해 전략을 수립하고 역할을 분배하고 협동 한다. 이런 비슷한 도박이 존재하는가?


더 나아가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는 게임 이용 장애에서 물질중독 기준으로 사용하다가 행동중독으로 옮겨간 이유에 대해서 근거나 논리적인 설명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알코올이나 도박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럼 마약을 하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도파민이 작동하니 똑같은 행위로 보는 것이 옳을까? 객관성과 엄밀함을 금과옥조로 하는 과학적 원리에서 허술하기 짝이 없는 대목이다. 더구나 과학은 분석을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사용한다. 나누고 쪼개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게임 이용 장애는 분석이 아니라 나누어진 것을 합쳐 놓는다. 아무런 논리적이거나 현실적인 근거 없이 말이다. 결국 게임 이용 장애는 과학적 연구에서 도출된 것이 아닌 막연한 사회적 고정관념에서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당연히 고통받는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 역시 과학적 근거를 갖기 어렵다는 점은 불문가지다.


만일 게임을 과도하게 하는 청소년을 치료하여 학업이나 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면, 학업 의욕을 잃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학생들은 왜 그냥 두고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3. 4차 산업혁명시대에 게임 이용 장애가 불러올 문제들


게임 이용 장애의 기준이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20여 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세상은 빠르게 4차 산업혁명으로 내달 음치고 있다. 컴퓨팅 속도와 용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커졌다. 또한 컴퓨터 중심에서 벗어나 스마트폰과 모바일 기기로 확장되었으며, 인공지능·5G와 같은 첨단기술과 게임이 융합되는 현상은 더이상 과거 청소년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세계 남녀노소 20억 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으며, 그 범위는 점점 더 확장일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기준의 게임 이용 장애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마치 마차를 기준으로 로켓의 속도를 제한하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세상은 이미 게임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2020년 4월, 우리나라 유가증권 시장 2위인 SK하이닉스는 과거 게임중독으로 볼 수 있는 사례를 집념 증후군(Tenacity Syndrome)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자사의 인재로 채용하겠다는 내용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적이 있다. 


[그림] SK하이닉스 채용 홍보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qabGir7OnTA)


그 근거는 크게 3가지다(SKhynix newsroom). 첫째, 게임은 학습과 훈련의 과정이다. 게임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은 ‘실패’다. 게이머는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해법을 찾는다. 이는 빠르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고 실패를 기반으로 더 나은 성장 전략을 찾아낼 수 있다. 둘째, 협업능력이다. 멀티모드 플레이 중심의 RPG나 RTS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협업하는 능력을 습득한다. 이런 과정에서 게이머들은 개인의 능력 발휘와 경쟁능력을 향상하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서 팀으로 뭉쳐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동료 의식’을 겸비하게 된다. 셋째, 문제 해결을 향한 끈기와 집념이다. 게이머들은 미션이 정해지면 그에 대한 해답이 반드시 있다고 믿고 그 해법을 찾는다. 게임을 통해 길러진 시행착오와 협력을 통해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문제 해결 방식은 SK하이닉스가 추구하는 인재상과 정확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게임은 첨단기술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능력도 배양시킨다. PC의 성능과 인터넷 속도는 고사양의 게임 출시와 맥을 함께 하였다. 몇 해전 국산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인기는 PC방은 물론 가정용 컴퓨터의 업그레이드를 불러왔다. 고성능의 CPU, 대용량의 메모리, 그리고 고성능의 그래픽카드가 필요했다. 이렇게 최신의 게임이 문제없이 구동되는 컴퓨터는 다른 그래픽이나 동영상 편집도 문제가 없을 만큼 최고의 성능이라는 것을 보증하는 상징과도 같다. 또한 대형의 반응속도가 빠른 모니터를 사용하면서 그래픽을 보는 눈도 세밀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즉 최신의 게임을 즐긴다는 의미는 최신의 장비들에 익숙하다는 것과 같다. 이런 장비를 통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준비가 게임을 통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게임 개발 및 구동의 기술은 인공지능과 다른 콘텐츠를 개발하는 기초 인프라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인공지능의 영역을 확장시킨 딥 러닝은 고성능 그래픽카드(GPU)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고성능 그래픽 카드는 게임이 발전시킨 영역이다. 즉 게임이 인공지능의 기반이 되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인공지능 알파고 개발을 통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하사비스는 게임 개발자 출신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또한 게임을 통해 축적한 인공지능 기술은 게임사를 더 이상 게임 서비스만 하는 곳이 아닌 금융, 콘텐츠 제작 등으로 확장하고 있는 추세다.(신무경 기자 외, 동아일보)


전통 사회에서 학교는 사회적 성공을 위한 능력과 기술을 가르쳤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현재에 사회적 성공을 위한 능력과 기술은 게임을 통해서도 길러지고 있다. 게임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능력과 기술은 적당히 즐겨서 생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집념, 끈기 시행착오와 문제 해결은 어떤 경지에 다다라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성취인 것이다.


게임 이용 장애라는 질병코드는 누군가의 재능이나 가능성을 북돋워주기보다는 치료라는 이름으로 억누르거나 부정하도록 만든다. 게임 이용 장애를 진단하는 기준에서 게임을 통한 성취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가 된다. 인재를 환자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임 이용 장애의 치료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치료 목표 대상자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제시간에 시키는 업무를 착오 없이 수행하는 일은 이제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에게 더 어울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답답할 따름이다.





4. 비대면 사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가 불러올 문제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가장 잔인한 고문이라고 심리학의 고전 '심리학의 원리'에서 윌리엄 제임스는 밝히고 있다. 사회적 고립을 증폭시키는 상황들은 이사, 진학, 실직이나 독거, 차량에 잘못 탑승한 상황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우리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코로나19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약한 정도일 뿐이다. 대체로 고립된 사람들은 자포자기하거나 충동적인 행동과 같은 비합리적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행동들은 위즈만(wisman & Koole, 2003) 팀의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된 바 있다.  실험에서 '당신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나요?'와 같은 질문을 통해 불안한 상황을 유도했다. 그리고 토론을 위해 방에 들어가 자리를 선택하도록 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한쪽에 있는 1인용 의자에 혼자 앉거나 다른 쪽에 여러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의자에 앉는 선택이 가능하다. 이때 죽음을 떠올린 학생 80%는 여러 사람이 앉는 의자를 선택했다. 대조 집단인 일상 TV 프로그램을 떠올린 학생들 대부분이 1인용 의자를 선택했다는 점과 비교할 때 위협적인 상황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고자 하는 욕망을 강렬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불행에 빠뜨린 범인에게 애착과 친밀감을 느끼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나타나기까지 한다. 1973년 은행강도들이 6일이 넘는 기간 인질들을 잡아두고 경찰과 대치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구조된 인질들은 인질범들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느꼈다. 이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자신들을 구조한 경찰들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보이는 이해 못할 현상이 나타났다. 불안한 상황에서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욕망이 합리적인 사고보다 우선했던 것이다.
 
코로나19가 재 확산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모이려는 본능을 누르기란 쉽지 않다. 미국에서 벌어진 파티, 국내의 집회·모임으로 인한 집단감염이 대표적 사례다. 만일 이들이 게임을 즐기며 집에 있었더라면 하는 가정을 해본다. 아마 훨씬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상황이 되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함 속에서도 일상을 별 탈 없이 잘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국민 70%가 이용하는 게임이 일정 부분 이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헤드셋을 착용하고 즐기는 네트워크 게임은 사회적 고립을 막아주고 돈독한 사회연결망을 유지시켜 외롭지 않도록 해주는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헤드셋에 달린 마이크는 게임 속 극도의 몰입 상황에서 누군가와의 밀접한 대화와 협력을 가능하게 해 준다. 누군가와 협력하고 교류하면서 어떤 일을 해냈다는 연대감과 성취감은 외로운 고립이 아니라 역동적인 존재감을 제공한다.
 
이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전문가는 드물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이 현실에서 대규모로 모이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립감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게임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핵심 인프라인 것이다. 과거 대면 사회의 기준으로 비대면 사회의 게임을 게임 이용 장애라고 진단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5. 게임에 몰두하는 이들을 보는 대안적 시각


하버드대 심리학과 랑거 교수팀(Crum&Langer,2007)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도 마음 속으로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실제 운동 여부와 상관없이 살이 빠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별도로 운동을 하지 않지만 하루 평균 15개의 방을 청소하는 호텔 미화원 8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집단 44명에게는 '여러분들이 늘 하는 일이 건강을 위해 매일 30분씩 운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라고 알려줬다. 침대 시트를 갈거나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은 60칼로리를 소모하게 된다고 알려줬다. 반면 다른 3개 호텔에서 일하는 40명의 통제집단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4주 뒤 두 집단을 비교했더니 체중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타났다. 자신이 하는 일이 운동이라고 인식하게 된 실험집단의 여성들은 평균 0.9㎏의 체중이 빠지고 체지방이 줄었으며, 혈압도 10% 떨어졌다. 그러나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한 통제집단에선 큰 변화가 없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서 실제 효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이런 사례를 게임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 이들에게 ‘게임 이용 장애 환자’로 인식되는 경우와 게임을 좋아하는 ‘덕후’로 인식되는 경우는 아주 큰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똑같은 게임을 하고 있더라도 게임중독자라고 인식이 된 경우에는 부정적인 효과가 이어질 가능성이 게임 덕후로 인식할 때 보다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게 게임 이용 장애는 그냥 붙이는 이름이 아니라 그 대상이 되는 이에게 낙인효과라는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또 다른 우려는 게임에 몰두하는 청소년을 둔 가족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게임 이용 장애라는 질병코드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병에 걸리지 않게 게임을 덜하도록 감시하고 다른 것들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 이상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게임도 함께 진화한다. 단순히 게임을 못하게 하고, 말리는 수준으로는 변화하는 시대의 능동적인 학부모라고 보기 어렵다. 게임 이용 장애라는 질병코드는 게임을 즐기는 자녀들의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들어주고, 자신의 경험이 미래의 기회와 재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인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게임 속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가에 관심을 두고 그 경험이 앞으로 더 큰 경험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안내하는 부모는 게임 이용 장애를 두려워하며 게임 이용시간을 최소화하려는 부모와는 매우 다른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신경 다양성은 자폐증, 우울증, 난독증, ADHD 같은 정신장애에 대해서 '뇌가 고장 난' 사람으로 보는 질병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얼굴과 성격이 제각각이듯 우리의 신경도 제각각 다양성 측면에서 접근한다(Armstrong, 2011). 이런 접근은 기존의 장애를 치료 한다는 명목으로 약을 먹여 보통사람으로 만들려는 노력보다 그 사람의 강점과 장점을 찾아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을 추구한다. 이런 개념을 게임에 과몰입하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정말로 게임에 미쳐서 밤낮으로 게임을 한다면, 말려도 소용이 없다면 오히려 게임을 오래 하는 적성을 살려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유튜버, 게임 기자/블로거, 게임 운영자 등은 게임이 생업과 연결될 수 있는 접점 이리라. 


게임 이용 장애는 과거의 기준으로 만들어졌기에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라는 비대면 사회에 적합한지 냉정하게 살펴본 후 적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게임을 질병과 연관 짓는 시각 이외의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적 관점의 수립도 절실히 필요하다. 그게 게이머와 그 게이머들이 만들어갈 미래를 함께 살아가 기성세대 모두에게 좋은 일일 테니 말이다.






참고문헌

동아일보[웹사이트]. (2020년 8월 18일). URL: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00817/102524129/1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2016). 인터넷 게임중독의 공중보건학적 모델 개발 및 폐해실태조사 최종보고서.

전자신문[웹사이트]. (2020년 6월 14일). URL: https://m.etnews.com/20200612000197

조성훈, 권정혜(2017). 한국판 인터넷 게임장애 척도의 타당화. 한국심리학회지:임상 36(1), 104-117.

Armstrong, T. (2011). The Power of Neurodiversity: Unleashing the Advantages of Your Differently Wired Brain. Da Capo Lifelong Books./<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강순이 역,2019). 서울: 새로온봄. .

Adam, Barry (1987). The Rise of a Gay and Lesbian Movement, G. K. Hall & Co.

Beard, D. J., & Findlay, J. A. (2000). Drapetomania–A disease called freedom. Florida, Broward Public Library Foundation.

Crum, A. J., & Langer, E. J. (2007). Mind-set matters: Exercise and the placebo ffect. Psychological Science, 18(2), 165-171.

Edsall, Nicholas (2003). Toward Stonewall: Homosexuality and Society in the Modern Western World, University of Virginia Press.

SKhynix newsroom[웹사이트]. (2020년 5월 8일). URL: https://news.skhynix.co.kr/2185

ZDNet Korea[웹사이트]. (2019년 11월 01일). URL: https://zdnet.co.kr/view/?no=20191101161704

Wisman, A., & Koole, S. L. (2003). Hiding in the crowd: Can mortality salience promote affiliation with others who oppose one's worldview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4(3), 511.







이장주

심리학 박사

2020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10~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2018~2020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이사

2018~2020 게임문화재단 이사

2017~2020 한국문화및사회문제심리학회 대외이사

2015~2016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강의전담교수







다른 위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서문_게임이 특별한가요? / 김민철 (주)해긴 개발실 차석 CLICK

 1탄_게임 이용 장애와 포스트 코로나 /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CLICK

 2탄_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사회적 낙인과 도덕적 공황에 대하여 / 이형민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CLICK

 3탄_게임을 이용하며 생각하는 게임 리터러시(이해) 교육 / 조영기 게임정책자율기구 사무국장 CLICK

 4탄_게임놀이 속에 숨겨진 보물 / 박성옥 대전대학교 교수 CLICK


매거진의 이전글 게임이 특별한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