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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임문화포럼 Sep 11. 2020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사회적 낙인과 도덕적 공황에 대하여

 2020 게임문화포럼 칼럼시리즈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이용자2. 이형민 위원 편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수잔 피스크(Susan Fiske)와 셸리 테일러(Shelley Taylor)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이다. 태생적으로 우리 인간은 무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사유하는 것을 피곤하게 생각하고 거부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내리는 많은 의사결정 가운데 편견과 선입견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작용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형성하고 내면화시키는 편견과 선입견을 통해 복잡하고 다양한 여러 대상과 상황들을 성급하게 일반화시키려 하고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간단하게 정리함으로써 어렵고 귀찮은 고민과 결정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려 노력한다.


[사진] (왼)수잔 피스트, (오)셸리 테일러 (출처: UCLA홈페이지, 프리스턴 대학 홈페이지)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이 편견과 선입견은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양산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는 성별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 정파갈등 중 대부분이 개인들의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특정 대상에 대해 형성하는 부정적 편견과 선입견은 집단적인 증오와 낙인, 도덕적 공황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통치 하에서 많은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보였던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잔혹 행위는 편견과 선입견이 증폭되어 사회적 낙인과 도덕적 공황이 발생했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이하 WHO)에서 의결된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안은 비정상적인 게임 이용 행태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약물치료, 재활치료 등의 의료적 개입을 통한 게임 이용장애 치료를 법제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WHO 가입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게임 이용장애를 현행 의료 체계 속에서 질병으로 규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한다.


   게임 이용장애 판단에 있어서 게임 이용 자체가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스트레스 요인들이 게임 과몰입을 야기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입증은 필수적이다. 물론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식음을 전폐하고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 게임 이용자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표면적인 심신 증상 완화 목적의 심리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게임 과몰입이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건 아닌지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하고 지나칠 정도로 몰입하는 일부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야기할지도 모르는 사회적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이렇게 피상적인 현상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오류와 부작용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게임 이용장애, 정신질환, 그리고 반사회적 행동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게임 과몰입과 정신질환 간 인과관계를 상정하고 있지만, 실제 실증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 인과관계가 반대라고 볼 만한 증거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즉, 게임 과몰입이 정신질환을 야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이 게임에 대한 지나친 몰입 등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 과몰입에 대한 의학적 조치는 사실상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로 치환되어야 근본적인 원인 제거와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게임 이용장애가 질병코드에 도입된다면 정신과 의사들만이 게임 이용장애에 대한 치료를 실시할 수 있게 되고, 기존 게임 과몰입 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임상심리치료사, 심리상담사 등이 주변부로 배제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게임 이용장애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오히려 약화되는 제도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앞서 언급한 부정적 편견, 사회적 낙인, 도덕적 공황에 있다.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이 실시된다면, 게임 과몰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질병으로 인식될 개연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례들을 볼 때, 질병은 병 자체뿐만 아니라 그 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초래한다(최근의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포함해 조현병, 우울증, AIDS 등의 사례를 보라). 즉,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은 심각한 게임 이용장애를 갖고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차원에서의 개입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넘어서 건전하고 즐겁게 게임을 이용하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까지 잠재적 환자라는 부정적 편견사회적 낙인나아가 도덕적 공황이 확대 적용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과 부작용 (출처: MBC)


   필자가 참여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에서는 전국 505명의 성인남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연구 결과, 게임 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도입이 초래할 수 있는 여러 사회적 부작용이 실증적으로 검증되었다. 우선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라 게임 과몰입자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상이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연령이 낮은 사람들보다는 연령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게임 과몰입자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더욱 많이 나타났다. 또한 게임 과몰입자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일반적인 게임 이용자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적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앞서 이야기 한 대로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가 도입된다면 의학적인 치료를 받아야 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일반적인 게임 이용자들에게도 과대 적용되는 낙수효과(spill-over effect)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게임 과몰입자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게임 과몰입자들을 사회부적응자, 위험한 사람,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사람 등으로 인식하는 사회적인 낙인 인식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 과몰입자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사회적인 낙인효과를 통해 전체 게임 이용자 집단을 사회악으로 매도하고 희생양으로 삼는 도덕적 공황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 하겠다.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은 이러한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고려도 포함하여 종합적이고 다면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게임 이용장애를 굳이 질병으로 분류하고 의학적인 차원에서만 개입하고 치료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해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이 이미 사회 각계각층의 반목과 분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편가르기와 손가락질의 여지를 주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이형민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부교수

2020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12년~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부교수

[2014년~현재] 성북구선거관리위원회 위원

[2018년~현재] 중앙자살예방센터 홍보 자문위원

[2019년~현재] 한미연합사 정책자문위원

[2019년~현재] 한국방송학회 총무이사

[2019년~현재] 한국광고PR실학회 총무이사







다른 위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서문_게임이 특별한가요? / 김민철 (주)해긴 개발실 차석 CLICK

 1탄_게임 이용 장애와 포스트 코로나 /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CLICK

 2탄_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사회적 낙인과 도덕적 공황에 대하여 / 이형민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CLICK

 3탄_게임을 이용하며 생각하는 게임 리터러시(이해) 교육 / 조영기 게임정책자율기구 사무국장 CLICK

 4탄_게임놀이 속에 숨겨진 보물 / 박성옥 대전대학교 교수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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