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의식 #팀운영 #성취감
오후 10시 37분. 야근 후 이제야 집에 왔다. 일단 대충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씻고 나면 바로 잠들 것 같아 화장실 가는 건 미룬다. 오늘의 발표를 위해 몇 주간 애썼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짜증도 나고 허무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계속 발표 장면이 떠올라서 괴롭다. 생각하기 싫다. 더 싫은 건 내일도 9시에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옆으로 누워 핸드폰을 본다. 오늘은 왠지 미션임파서블이 보고 싶다.
주말이 됐다. 며칠 전에 미션임파서블 봤더니 갑자기 '코만도스'게임이 떠오른다. '불가능한 미션을 깨는 건 역시 코만도스지' 생각한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98~99년에 정말 재밌게 했었다. 찾아보니 최근에 HD리마스터 버전이 있다. 2만 얼마다. 이걸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된다. 술값은 5만 원도 선뜻 내면서 콘텐츠를 살 때는 뭔가 인색해지는 기분이다. 세일을 기다려볼까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 하고 싶다. '고생한 나를 위해 이만 원도 못 쓰겠어?' 사야 하는 이유까지 만들었으면 이제 다 온 거다. 결제 후 다운받고 기대하며 게임을 시작한다.
"엥... 이거 너무 불편하네;;;". 이것저것 검색하고 고민하는데 2시간이 걸렸지만 추억이 망가지는 데는 20분이면 충분하다. 그래픽은 HD리마스터라 그냥 봐줄 만한데, 게임 시스템과 조작이 구식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불편한 UI 때문에 게임을 진행할 수가 없다. 끄고 침대에 눕는다. 핸드폰은 하도 봐서 이제 더 볼 것도 없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어째 일도 취미도 이렇게 생각대로 안되는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런 분들을 위한 게임 처방, <섀도우 택틱스>를 소개합니다.
이름 : 섀도우 택틱스:블레이드 오브 더 쇼군 (Shadow Tactics: Blade of the Shogun) / 청소년 이용불가
장르 : 잠입 실시간 전술
설명 :
1615년 일본. 새로운 쇼군이 일본을 장악하고 전국에 평화를 가져오려 합니다. 반란과 음모에 맞선 싸움에서 그는 뛰어난 암살, 파괴, 첩보 능력을 가진 다섯 명의 전문가를 고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평화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헌신할 수 있을까요?
이 게임의 장르는 생소하다. '코만도스류'라고 설명하는 게 제일 쉬운데 코만도스를 모르시는 분들께 설명하려면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전체 상황이 다 보이는 쿼터뷰 시점으로, 아군 케릭터을 움직여서 적군을 죽이고 목표를 달성한다. 롤을 떠올리면 약간 비슷하긴 하다. 위에 표지에 나와 있는 5명의 캐릭터의 특수 능력들을 이용하는 게 이 게임의 핵심이다. 캐릭터 한 명이 그리 강력하지 않다. 아군은 소수고 적군은 다수라서 절대 무쌍을 할 수 없다. 암살을 하거나 들키지 않고 지나가야 한다.
자세한 플레이 모습은 검색해 보면 많이 나온다.
이 게임은 독일의 Mimimi Games에서 제작한 게임이다. 이 게임회사는 코만도스류의 [잠입 실시간 전술] 게임만을 만드는 회사다.
- 17세기 초 일본 애도시대가 배경인 '섀도우 택틱스'
- 19세기말 미국 서부시대가 배경인 '데스페라도스3'
그리고 2023년 8월 18일, 해적 시대를 다룬 신작 '섀도우 갬빗'이 곧 출시 예정이다.
메타크리틱 평점 :
메타스코어, 유저평점 모두 높다. 스팀의 모든평가, 최근평가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다. 코만도스와 가장 비슷한 게임인 동시에 이 분야 최고의 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메탈기어 솔리드나 디스아너드 같은 잠입 액션을 추구하는 게임이 있지만 코만도스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1. 도전의 재미 : 게이머를 도발하는 게임
학창 시절 수학은 항상 우리를 괴롭게 했다. 가장 싫어하는 과목 투표를 하면 압도적으로 1위가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아주 가~끔 수학문제를 푸는 게 재밌다는 친구가 있었다. 뭐가 재밌냐고 물어보면, 어렵지만 이리저리 시도해서 끝내 문제를 풀었을 때 너무 기분이 좋다고 한다. 음.. 대략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기도 한데,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 생각했다.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마치 아주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노력해도 실마리조차 잘 잡히지 않았다. 이리저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주 조금씩 다음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미션을 클리어했을 때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20년 전 수학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던 그 친구가 떠올랐다.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싶다.
Mimimi Games라는 독일 사람들이 아주 어려운 문제를 출제했다. 수학 문제면 패스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게임 문제이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하다 보니 실력이 좋아진다. 그런데 문제 또한 계속 어려워진다. 특별한 클리어 조건까지도 제시하기 시작한다. 이건 일종의 도발이다.
'헤이~ 게이머, 니가 게임을 좋아한다며?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에이~ 못하겠지? 괜찮아 괜찮아, 이건 아무나 못하는 거라.'
하다 보니 엔딩을 보게 된다. 특수한 조건들을 만족하며 클리어한다. 페널티를 가지고도 클리어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에게 놀란다. "내가 이렇게 도전을 좋아했었나?"
2. 약팀의 교훈 : 남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내가 바뀔 수밖에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난이도가 좀 어렵다. 아군캐릭터는 총 5명인데, 적군은 보통 수십 명이다. 그냥 붙으면 1:1로도 못 이기는 경우도 많다. 잘 숨은 채로 5명의 각기 다른 특수 능력을 적절히 발휘하여 미션을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처음 5~10시간 정도는 게임 조작이 서툴기도 하고 아군 캐릭터의 특수 능력을 잘 사용하지 못해 계속 실수가 나올 것이다. 게임 오버를 계속 맞이하면서 처음에는 캐릭터들에 대한 짜증이 올라온다. "얘는 왜 이게 안돼?", "얘는 왜케 느리지?", "얘는 왜 소음을 발생시켜?" 등등. 정말 답답하다. 게임에 익숙해진다고 해서 답답한 게 없어지는 건 아니다. 강팀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보통 게임들은 캐릭터들이 레벨업을 하고 더 좋은 장비를 갖추면서 강해진다. 그러나 이 게임은 그렇지 않다. 캐릭터들은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것은 내 손과 머리 그리고 마음이다. 처음에는 단점 위주로 보이는 캐릭터들이 하다 보면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게이머는 팀을 운영하는 '팀장'으로서 5명의 팀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사용하게 된다.
3. 충격 요법 : 저장/불러오기 없이 원코에 깨기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인생에도 저장/불러오기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수많은 실패, 좌절, 아픔을 겪을 때마다 시간을 되돌려 결과를 바꾸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게임에서는 죽거나 망해도 불러오기를 해서 다시 진행하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심지어 '빠른 저장'과 '빠른 불러오기' 기능이 있다. (저장과 불러오기를 단축키로 아주 빠르게 할 수 있다) 이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정말 수도 없이 저장과 불러오기를 해야 한다. 짧은 1초의 순간이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으면 바로 불러오기를 한다. 열 번 시도해서 한 번만 성공해도 괜찮다. 실패하면 다시 불러오고, 성공하는 순간 바로 저장해서 다음으로 넘어가면 되니깐 말이다. 마치 타임루프물처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래를 보고 온 다음에 깨는 느낌이다.
이 게임의 끝은 단순히 엔딩 한 번 보는 것은 아니다. 게임 내에 '배지'라는 시스템이 있다. '배지'는 특별한 조건을 만족시키거나 핸디캡을 안고 미션을 클리어하면 얻을 수 있다. 아래 그림처럼 미션마다 다양한 배지가 있다. 배지 중에서 가장 얻기 힘든 것은 <시간제한> 조건이 붙을 때이다. 처음 했을 때 2~4시간 걸리는 미션들을 5분~30분 만에 깨야 하는 조건이 주어진다. <시간제한> 조건일 때는 저장과 불러오기 조차도 시간 낭비이기 때문에 거의 하지 못한다. (저장/불러오기를 하더라도 시간은 누적되어 계산된다) 실수가 생기면 일반 게임에서는 바로 불러오기를 해서 다시 하지만, 시간제한 조건에서는 실수 상황을 떠안고 계속 간다. 역설적으로 가장 열정적이고 식은땀 흘리며 플레이하고 클리어 후 가장 보람이 컸던 것은, 저장/불러오기를 이용하지 않았던 <시간제한> 조건으로 했을 때이다.
인생 처방이라고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교훈이 있더라도 현실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이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영화, 인생소설, 인생다큐 등등 '인생00' 이라고 해서, 문화콘텐츠를 통해 삶에도 영감을 얻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문화콘텐츠를 통해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지점을 찾거나 고민 해결의 작은 실마리를 잘 캐치해 낼 수 있으려면 열린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 호불호
흔치 않은 장르의 게임이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 난이도
들키지 않고 암살을 해야 한다. 기본 진행도 어려운데 익숙하지 않으면 더 어렵게 느낄 수 있다. 저장/불러오기를 자주 하다 보면 조금씩은 나아갈 수 있다.
재미 ★★★★★
+ 장르 보고 시작하지만 게임시스템, 스토리, 음악 다 좋다.
- 무슨 게임이든 처음은 어렵게 느껴진다. 근데 이 게임은 계속 어렵다.
교육적 ★★★☆☆
+ 희귀한 장르의 게임이 주는 신선한 경험. 단, 고수가 되어야 느껴진다.
- 내용적인 깊이는 글쎄.
접근성 ★★★☆☆
+ 오래된 게임이라 무료로 풀리기도 했었고 세일을 자주 한다.
- 그래픽이 끌리지 않을 수도 있는 점 / 닌텐도 스위치로는 왜 안 나왔을까.
유튜브, 블로그 등 SNS플랫폼이 대중화된 이후, '나 이거 잘해'라고 얘기하기 쉽지 않아 졌다. 특히 세상에 게임 잘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지, 고수들의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면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처방을 통해 인생 무기력증을 극복했다면, 이제 다음 단계는 자존감을 올릴 차례다. 내가 바로 '미쳤다'는 찬사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이다. 이 게임은 특이하게도 콘텐츠를 다 소화하기만 해도 *상위1%가 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제시하는 배지(ex. <시간제한 미션>)를 다 따면기만 하면 된다. 이 게임을 시작한 게이머 중 99%는 배지를 다 따지 않은 것이다. 세상에서 상위 1%가 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방법이 아닐런지. (*플레이스테이션 플레티넘 트로피 기준)
야너두 1%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