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을 기울이다 문득 깨달은 내 인생의 황금기
내 인생의 큰 선물이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1998년이었다. 정릉동 국O대학교.
IMF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던 때, 시절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지게' 공부 안 하는 학생이자 주로 학교 앞 '땅 속 마을'* 에 서식하는 한량이었다.
'땅 속 마을'에서도 내 마음속 1번지, 그 맥주집이 '유레카'다.
그 시절 한참 방영 중이었던 '남자 셋 여자 셋' 속 권해효 배우가 주인장으로 있던 그 카페 마냥 대학 시절 '우리'의 아지트였던 그 집..
땅 속 마을에 들어서 술 주(酒) 자 쓰는 '주유소'(여기는 '레몬소주' 잘 말던 소주방)가 있던 골목을 지나 길 건너에 '있었다'.
분식집 건물 2층 유레카에 들어서면 청아하고 정확한 3박자 소리가 들려온다.
'콕. 콕. 콕, 콕. 콕. 콕' 하는 사장님의 '새우O' 드시는 소리.. 하나에 세 번씩 정확히 3박자로 그 사장님은 노래방 '새우O'을 그렇게 드시고 계셨더랬다.
아, 문을 열 때면 항상 들리던 여행스케치 6집(처음 타본 타임머신) 수록곡 "아~름답게~ 간직하~고픈~ 가~난했던 날 들~"하는 그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감(자밭) : "저 왔어요~"
사(장님) : "오늘은 좀 늦었네~ 그 학생들은 안 와?"
감 : "이제 곧 올 거예요~ 수업 일찍 끝나서 먼저 왔어요."
사 : "오늘은 눈이 온대서 준비를 했지.. 우리 집 벽난로 불 때는 거 아직 못 봤지? 오늘은 벽난로 앞에 앉아.. 나무가 비싸더라고.. 그래도 눈 나리는 날에는 벽난로지 ㅎ"
통성명 따위 필요 없고, 안부부터 묻는 우리 사이였다.
사장님이 출석체크하던 '그 학생들'은 내 친구 'K'와 나의 구(舊) 여친, 현(現) 깐부** 'J'양이다.
'K'는 기계자동차공학하는 친구였는데, 같은 과도 아니고 같은 동아리도 아닌데 '소개팅'을 매개로 알게 되어 늘 붙어 다니던 친구고 'J'양은 고등학교 때 만나 사귀던 내 여자 친구다.
놀라운 건 'J'는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저녁마다 아지트에서 나와 늘 함께였다는 것.
우리 셋은 특별한 일 없어도 늘 그 시간, 그곳에 함께였다.
그곳에서 만난 우리는 저녁나절을 지나 밤늦게 차가 끊길 무렵까지 '맥주 3천', 돈 없으면 '맥주 2천', 돈 없다가도 귀가를 포기하면(차비를 과감히 투자하면) '맥주 3천'..
죽죽 마시며 얼마 경험도 없는 자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자주 만나는데도 이야기 소재가 끊기지 않던 우리는,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사이다.
한참 지나 얼굴에 분홍 꽃 피어날 즈음 귓가에 들려오는 여행스케치 아저씨들과 객원 가수들의 목소리가 아련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익숙한 그 선율에 취하는 것도 좋았다.
뭔 이야기를 그렇게 했는지.. 우리는 항상 당연히 해야 하는 '귀가' 여부를 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 'K'가 천호동에 살았기 때문에 이 친구 차비면 술 한잔 더 할 수 있었으니까.
과감히 귀가를 포기한 날은 내가 속한 동아리방에서 쪽잠 자는 날이다.
(늦은 시각 문이 잠긴 학생회관 배관 파이프 타다 눈 마주친 경비 아저씨. 늦게나마 죄송합니다. ㅎ)
내가 속한 동아리는 '현대과학(모던 사이언스)' 동아리였는데, 동아리 모토는 '해로운 술 담배, 남이 먹기 전에 우리가 먹어 없애자!'였고, '문송한' 내가 과학지식 하나 없이도 숙박업소로 잘 사용하던 공간이 되어 주었다. 사실 그 동아리, IMF 엄동설한에도 선배들이 술 잘 사준다 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입했다. 1학년 말에 학교 방송국 기자로 잠시 픽업(?)된 적이 있었는데, 다시 이 동아리로 돌아올 만큼 마성의 동아리였다. 그렇게 우리는 '동방' 소파 위에서 눈을 뜨곤 했다.
유레카의 새우O 사장님은 사실 몸이 좋지 않으셨다. 당시에도 일흔쯤 되셨었는데, 중국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시다가 요양차 한국에 오신 참에 여동생 가게를 봐주게 되셨다고 하셨다. 유레카의 본래 사장님은 우리가 '여사장님'이라고 불렀던 분이 었는데, 새우O 사장님은 '카운터 사장님'이었던 셈이다.
'여사장님'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산을 뽑을만하고 세상을 덮을만한)'의 여장부에다 목소리도 우렁찬 분이셨는데, 우리들에게는 한 없이 '츤데레'셨고 주로 '산을 뽑을 때'는 새우O 사장님이 몰래 술 드시다 걸렸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몸이 성치 않은 오빠에 대한 걱정이었겠지만, '같이 걸린' 나는 시선을 회피하거나 화장실을 경유한 후 다시 앉거나 이것도 마땅치 않으면 살기 위해 도주했다. 본능적인 위기의 순간.
늘 '같이' 걸리면서도 새우O 사장님은 내가 나타났을 때(출근 도장 찍을 때) 주위에 여사장님이 없다면 "(감)자밭아.. 중국 떼놈들 먹는 '쥐약'*** 한 잔 줄까?" 하며 안광(眼光)을 빛내시곤 했다.
나는 걸릴 때 걸리더라도 냉큼 받아먹고 보았다. 여사장님은 잘 모르셨지만 안 걸린 날이 걸린 날 보다 훨~씬 많았다..ㅎ
가게에는 여사장님 외에도 '주로' 운영을 맡고 있었던 우리 학교 선배 누나가 한 명 더 있었다. 여사장님 따님이자 우리 학교 89학번쯤 되던 누나. 여기서 이 누나가 등장하는 이유는, 내가 그 집 알바생이 되었고 이 누나가 매장 매니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알바는 알바인데, 학교 마치면 가게에서 일하고 정해진 파트타임이 끝나면 그대로 벽난로 앞 '우리 자리'에 앉아 손님으로 변신하는 알바였다. 이른바 '그날 벌어 그날 먹기' 내지 '현지 조달'.
알바 마치면 매일 앉던 그 자리에 'K'와 'J'양, 내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며 늘 하던 '루틴'을 이어갔다.
매일 술 사 먹는 'IMF 시절에도 몹시 용감한' 학생들을 위한 '사장단'의 배려로..
밥벌이가 걱정되는 때가 오고, 사관학교 진학하고 군 생활해 오며 이래저래 20년도 넘게 훌쩍 지나버렸다. 할 일이 넘쳐나고, 힘에 부칠 때 나는 항상 그 시절 그곳에서의 추억을 떠올린다.
'야.. 그만큼 놀아재꼈으면 이 정도 일은 해야 맞는 거지..' 하며..
그 시절 추억이 같이 사는 'J님'과 술잔을 기울일 때면 안주가 되고, 이렇게 글 쓸 때면 글밥도 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용기도 된다.
한 참이나 지나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깔끔히 리모델링된 건물에 그때 그 유레카는 없었다.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전화번호도 '017'인 데다 없는 번호라니 연락할 방법도 없다.
지금은 새우O 사장님이 아직 건강하신지, 여사장님과 매니저 누나가 아직 정릉동에 사시는지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 꼭 짧은 소식이라도 귓가에 들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꼭 전하고 싶다.
'철없고, 대책 없이 용감했던' 푸릇푸릇했던 그 시절,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유레카!**** //Fine//
* 학교는 언덕배기에 있었고, 길 건너 학사주점들은 도로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
** 딱지며 구슬을 함께 관리하는 한 팀, 여기서는 내 월급 관리도 하고 우리 집에 같이 살고 있는 그 여인
***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연태고량주' 쯤이었던 것 같다
**** eureka, "알겠어, 바로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