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자몬 Sep 10. 2024

라면과 단무지

몰랐던 조합

나는 항상 라면엔 김치 파였다.     


근데 우리 아빠는 라면에 단무지를 잘 드시는데.


음... 나는 그 조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맛있냐며 항상 아빠가 라면을 드실 때마다 물어봤다. 

아버지는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라고 대답하셨다.

그럼 나는 ‘라면엔 김치지.’ 하고 말했다.     


그리고 어느 날 라면을 먹기 위해 물도 계량하고 진지하게 라면을 끓이고 면이 딱 꼬들해 졌을 때 가스불을 끄고 식탁에 성스럽게 라면을 세팅하고 냉장고를 열어 김치를 먹으려는데...     


어라? 김치가 없다.     


난 김치랑 라면을 먹어야 하는데?     


어쩌지???     


그때 눈에 보이는 건 단무지였다.      

머릿속을 스치는 아빠의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나는 마음을 먹고 단무지가 들어있는 단무지 반찬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 냉장고가 빨리 문을 닫으라고 소리를 내 냉장고 문을 닫고.      


식탁에 앉아 단무지를 살포시 내려두고 라면이 불기 전에 서둘러 젓가락을 들고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초반부터 단무지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라면만 반정도 먹었을 때 물리는 감을 누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단무지를 집어 들어 라면과 함께 한입 베어 물었다.      


뭐지?      


이 달콤하면서 시원하고 라면의 느끼함을 내려주는.     


맛있는 조합.     


맛있었다.


라면에 단무지.     


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 나도 모르는 의외의 조합들이 있고, 왜인지 이 라면과 단무지는 나에게 새로운 맛있음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내게 씌워진 여러 고정관념들이 있고 나는 다른 길 있다는 것을 생각도 못 해본 체 그저 세상에 있는 일반적인 법칙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따르고 있었구나.     


어쩌면 내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들이. 나를 편향된 시선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볼 줄 모르게 만드는 사람이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친구가 없어도 되고,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되고, 직장을 다니지 못해도 되고, 지식 없어도 되고, 공부를 못해도 되고, 하고 싶은 게 없어도 되고, 재능이 없어도 되고, 자존감이 그렇게 높을 필요도 없고.      


나는 항상 그 반대로 생각했다.      


당연히 친구가 있어야 하고, 직장이 있어야 하고, 잘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라면의 단무지처럼 사람들이 이래야 좋아 이래야 맞아하는 것들에서 의문을 가지고 접근하고 싶다. 정말 저게 나에게 맞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