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조합
나는 항상 라면엔 김치 파였다.
근데 우리 아빠는 라면에 단무지를 잘 드시는데.
음... 나는 그 조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맛있냐며 항상 아빠가 라면을 드실 때마다 물어봤다.
아버지는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라고 대답하셨다.
그럼 나는 ‘라면엔 김치지.’ 하고 말했다.
그리고 어느 날 라면을 먹기 위해 물도 계량하고 진지하게 라면을 끓이고 면이 딱 꼬들해 졌을 때 가스불을 끄고 식탁에 성스럽게 라면을 세팅하고 냉장고를 열어 김치를 먹으려는데...
어라? 김치가 없다.
난 김치랑 라면을 먹어야 하는데?
어쩌지???
그때 눈에 보이는 건 단무지였다.
머릿속을 스치는 아빠의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나는 마음을 먹고 단무지가 들어있는 단무지 반찬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 냉장고가 빨리 문을 닫으라고 소리를 내 냉장고 문을 닫고.
식탁에 앉아 단무지를 살포시 내려두고 라면이 불기 전에 서둘러 젓가락을 들고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초반부터 단무지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라면만 반정도 먹었을 때 물리는 감을 누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단무지를 집어 들어 라면과 함께 한입 베어 물었다.
뭐지?
이 달콤하면서 시원하고 라면의 느끼함을 내려주는.
맛있는 조합.
맛있었다.
라면에 단무지.
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 나도 모르는 의외의 조합들이 있고, 왜인지 이 라면과 단무지는 나에게 새로운 맛있음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내게 씌워진 여러 고정관념들이 있고 나는 다른 길 있다는 것을 생각도 못 해본 체 그저 세상에 있는 일반적인 법칙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따르고 있었구나.
어쩌면 내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들이. 나를 편향된 시선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볼 줄 모르게 만드는 사람이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친구가 없어도 되고,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되고, 직장을 다니지 못해도 되고, 지식 없어도 되고, 공부를 못해도 되고, 하고 싶은 게 없어도 되고, 재능이 없어도 되고, 자존감이 그렇게 높을 필요도 없고.
나는 항상 그 반대로 생각했다.
당연히 친구가 있어야 하고, 직장이 있어야 하고, 잘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라면의 단무지처럼 사람들이 이래야 좋아 이래야 맞아하는 것들에서 의문을 가지고 접근하고 싶다. 정말 저게 나에게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