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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Jul 06. 2024

뇌가 내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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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첫째를 임신하면서 겪었던 입덧은 도식 자체가 전무해서 경험주의 성향이 다분했던 나에겐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흥미 있기도 했던 경험이기도 했다. 속이 메슥거리고 울렁거리고 냄새에 민감해지긴 했지만, 임신을 했다는 것이 사실 나에게는 굉장한 특권으로 여겨졌다. 남편에게 완전히 우위를 독점하고 '여보 나 이거 먹고 싶어', '여보 이거 사다 줘', '여보 이거 먹으러 가자', '여보 이것 좀 제발 찾아다 줘'라고 마음껏 무한대로 요구할 수 있었고, 그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 부딪혔던 갈등으로 인한 상처나 부족하다 느끼던 사랑의 결핍들을 그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응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채우기도 했다.



몸보신을 해야 하니까, 보양식을 먹어야지, 좋은 재료로 된 요리를 먹어야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평소 먹던 것보다 더 잘 챙겨 먹게 되는 식욕에 대한 욕구가 터져 나왔다. 그 욕구가 단순히 나의 미적 즐거움을 위한 다기보다는 뱃속에 생긴 생명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 하나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임신하자마자 평소에 먹던 일상의 밥상이 아닌 고급 뷔페를 찾아가서 온갖 음식을 다 먹고, 비싸고 화려한 음식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내가 먹는 음식이 아이에게 전해진다, 내가 느끼는 맛의 즐거움도 아이가 느끼고 즐거워할 거란 생각으로 끊임없이 합리화를 하며 정말 그게 아이를 위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공복 상태가 되면 울렁거림과 메슥거림은 극도로 더해져서 잠시라도 위장을 뭔가로 채워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였다. 게다가 먹고 싶은 음식이라고 떠오르는 것들이 참 신기하게도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음식들이었다. 나는 일찍이 음식을 통한 건강 관리에 예민하고 민감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가급적 첨가물이나 조미료가 범벅된 음식이나 가공식품을 먹지 않았고, 아주 까다로운 기호로 건강한 먹거리와 유기농 먹거리를 선호하며 주로 채식을 즐겨하던 사람이다. 그런 나의 미각 선호도는 입덧과 동시에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아주 어릴 적에 먹던 불량식품의 추억의 맛 학교 매점표 불량 햄버거의 소스맛, 학교 앞 문방구에서 불량식품들과 함께 팔던 공장에서 나오는 속이 텅텅 빈 100원짜리 만두의 조미향맛, 두툼한 사각형 모양의 빵을 두 갈래로 쭉 갈라서 가운데 뭉쳐진 노란 크림을 골고루 펴 발라 먹는 옥수수크림빵 조작된 구수한 맛, 밥 한 숟갈 크게 떠 넣고 한 입 베어 물면 그저 맛있던 아주 달고 짭조름한 양념 LA갈비의 콜라맛, 엄마가 특별한 생일 같은 날이나 제삿날 해주던 고구마와 감자가 가득 들어갔던 달큼한 갈비찜, 프랑스 파리에서 먹던 장미향이 풍기며 바닐라향의 풍미가 진했던 마카롱의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웠던 촉감의 맛, 그리고 좋아하던 가게의 다크 초콜릿이 흘러내릴 만큼 가득 발리고 촉촉한 빵 안에는 초콜릿 크림이 가득 안을 채웠던 에끌레어의 달콤함 극치의 맛, 이런 음식들이 계속해서 뇌에 떠다녔고 먹고 싶다고 느끼고 그리워 찾아다니며 먹곤 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해주시던 LA양념 갈비가 너무 먹고 싶다고 느꼈는데 직접 만들어 먹을 체력적인 에너지는 없고, 여러 마트를 돌아다니며 사봐도 그 맛이 나질 않아 그 사소한 것 가지고도 울며불며 속상해할 만큼 나의 이성은 완전히 무너져있었다. 이렇게 오로지 먹는 것에만 집착하고 다른 기능들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나는 임신 확인을 한지 한 달 만에 체중이 5kg가 늘었다. 그럼에도 사실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임신하면 원래 체중이 늘어나는 거니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오히려 체중이 늘어날수록 아이가 잘 크고 있다고 큰 착각도 하며 지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무자비로 먹어대고 나면 잠시 위장이 편안해지는 듯하다가, 금세 답답함과 메스꺼움을 느끼는 소화불량 상태를 느끼는 것의 끊임없는 반복이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속이 얼마나 부대끼는지 임신한 뒤로 자가운전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보조석에 차를 타면 방지턱 넘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배가 많이 나오지 않은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예민한 탓인지, 안전벨트가 주는 압박이 배와 가슴 명치 쪽에 평소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고 답답해서 착용할 수가 없었다. 항상 배 쪽을 감싸는 안전벨트 부분에 손을 넣고 공간을 띄워 배에 닿지 않게 한 자세로 다녀야 했다. 특히 방지턱을 넘을 때 나의 위장도 같이 방지턱의 포물선을 그리듯 움직이면서 멀미는 아주 고도화되었고, 이런 입덧 때문에 결국 나는 당시에 아주 중요하게 앞두고 준비하던 공연 발표를 중도 포기해야 했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그때도 나는 입덧과 더불어 교수님들과 동료들 사이에서 임신을 빌미로 조용히 잠적했다.


나의 내부 장기와 내부 호르몬 시스템의 교란조차도 통제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휘둘리고 있는 내가 무대 위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또 왕복 2시간 장거리 이동 자체도 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이미 당시 나의 뇌는 여러 혼란스러운 감정의 늪에 빠지기 시작해서 더 이상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고 섣부르게 판단했을 거다. 지금에 와서 섣부르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든 공연까지는 애써 마무리 지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찾아오는 변비. 평소에 심하진 않아도 가끔씩 변비가 생기곤 했는데 임신을 하고 나니 변비가 더욱 극성을 부렸다. 먹는 음식은 평소보다 많은데 화장실을 며칠간씩 가지를 못하고, 무자비하게 몸에 넣은 자극적인 음식들로 생긴 유해균에 의한 독성 가스들은 나의 괄약근 조절을 피해 수시로 삐져나왔다. 혼자 있을 땐 그나마 감내하련만, 남편이 함께 있을 때엔 이 고약한 독가스가 배출되는 나의 몸이 얼마나 민망한지 모른다. 냄새로 인한 정신적 타격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가 라디오를 켜고, 태교를 위한다며 뱃속의 아이의 두뇌발달을 위한 것이라며 흥을 돋우는 신나는 노래가 아닌 클래식을 틀어놓고 몸을 흔들었다. 일명 변비탈출 위장댄스라고 오랫동안 쾨쾨히 묵은 녀석들이 내 뱃속에서 간절히 빠져나오길 바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장을 운동시키듯 격렬하게 막춤을 추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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