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사과 Jul 08. 2024

왜 자꾸 피가 나냐고

3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하면서 고생했던 기간은 한 달반 정도 되었던 것 같고,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는 세 달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적에는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았던 급격한 변화들과 호르몬 작용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이 그 큰 변화와 변화에 따른 파장들을 수용하느라 많이 버벅거렸고, 대부분의 많은 시간을 어리석게도 '태교'와 '출산준비', 그리고 특히 '우리 아이의 첫'라는 수식어가 붙은 모든 것에 대해 정보를 습득하거나 분석해서 적용하는데 보냈다.



가죽 DIY 키트를 구매해서 아가 신발을 일일이 바느질해 만들어두는 일로 시작해서, 아기 옷과 용품들을 수 십 수 백개 업체들의 마케팅 사이에서 비교하고 찾아내느라 내 나름의 경제학을 쏟아내는 일, 흔히 국민육아템이라고 칭하는 물건들을 중고마켓을 통해 좀 더 상태 좋고 저렴하게 내놓은 판매자를 통해 구비해 놓는 일, 그런 일을 위해 애꿎은 남편을 쉬지도 못하게 동행시켜 왕복 2시간의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다녀오던 일.


시중에 태아보험 특약을 전부 다 찾아내 보험사마다 비교하고 따져가며 설계사를 고르고 골라 나에게 최대한 혜택이 되도록 협상하는 일, 어느 유기농면이 좋고 어느 재질이 좋고 따져가며 아이의 가재수건을 세 번 이상 빨고 널어가며 먼지를 털어내고 준비하는 일.


어느 분유를 먹일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분유의 영양성분표를 전부 다 캡처해서 원료와 영양을 따져 비교하는 일, 어느 젖꼭지와 젖병을 쓸 건지 재질이 PPSU인지 실리콘인지 PP인지 등등 따져가며 분석하는 일, 국내 국외 수십 개에 해당하는 기저귀업체의 기저귀 샘플을 받아 일일이 비교해 보는 일, 아기의 로션과 바디워시는 무엇을 쓸 것이며 어떤 유해제품을 포함하고 있는지 아닌지 찾는 일,


아기 침대와 역류방지쿠션, 기저귀갈이대와 욕조, 모빌과 딸랑이, 책과 교구들, 애착인형과 애착이불, 아기방을 미리 다 구상하고 계획해서 가구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심지어 보육기관을 미래에 어느 곳으로 보낼 것인가에 대한 탐색과 선택들은 끝이 없었다. 카시트, 유모차, 바닥매트, 젖병소독기, 살균기 등을 결정하기 위해 베이비페어라는 영유아 제품 박람회 같은 것들을 수차례 돌아보고 다니는 일도 당연한 일이었다.


첫 아이를 맞이하는 엄마에게 태교와 출산 준비는 끝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첫 장난감이 될 딸랑이 인형을 내 직접 만들어주겠노라 야심을 품고 샀던 DIY 키트는 결국 시도도 못한 채, 조용히 창고 속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일들은 오직 그때에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 그냥 그게 출산준비라고 알았고, 뱃속의 아이를 축복하며 끔찍이 여기는 모든 임산부들 중 한 명으로서 해야 하는 응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알아보고 비교할수록 끝이 없는 정보 홍수에서 허덕이며 골아픔을 떠안고도 루이보스차를 마셔대며 클래식을 틀어대고, 두뇌 발달에 좋다는 온갖 태교이야기부터 육아와 아기발달에 관한 책들을 읽어댔다. 그리고 일에 지쳐 눈이 감겨 꾸벅꾸벅 조는 남편에게 밤마다 유기농 아르간 오일 통을 쥐어주며 내 배를 마사지해 달라, 자기 전에 아이와 대화해 줄 것을 강요하기 일쑤였다.



둘째를 임신하고는 출산 준비는 무슨 준비, 태교는 무슨 태교람, 당장 20개월 된 첫째 아이를 가정보육을 하느라 24시간 내내 붙어있는데 이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도 온 시간과 에너지가 모자랄 판이었다. 20개월간의 변화 속에서 필요한 물품과 그렇지 않은 것들의 구분이 선명 해지고, 직접 출산과 육아를 겪어보니 이전에 했던 준비는 꼭 필요한 준비가 아니었고 어리석은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과한 정보에 과하게 반응한 결과들이었다. 그것들은 나의 피로도를 높였고 실질적인 육아와 준비에 도움이 되었냐는 자문을 했을 때 참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바쁘고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둘째를 가지고 입덧으로 고생하던 임신 12주 차즈음 부정출혈이 생겼다. 그렇게 꼬박 두 달 내내 매일같이 출혈과 함께여야 했다. 임신초기에 나타나는 착상혈도 아니었고, 의사도 초음파로는 큰 이상이 없다며 원인을 정확히 할 수 없다고 했다. 원인 모를 새빨간 피 덩어리를 변기에서 보았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미 첫째 아이를 특별한 일 없이 임신해 봤고, 두 번이나 겪어보는 임신인데 이처럼 처음 겪어보는 출혈은 내 마음에 공포를 크게 안겨줬다. 그 두려움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이내 나의 정신까지 잠식할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제법 긴 기간 내내 누워만 있어야 하는 암흑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뇌가 내가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