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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사과 Jul 05. 2024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1

해가 지고 조금 더 어둑해지려고 할 즈음이면 위장에서 무언가 강한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꿈틀꿈틀 불안과 걱정과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심장에 조용히 스며든다.

그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있지만 계속해서 나의 뇌에 이렇게 외친다.


'제발, 나 좀 살려줘'라고.



그 외침은 이내 내 입으로 전해지고, 입 밖으로 괴성 같은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온다.


"아!!!!!!!!!!!!! 제발!!!!! 제발 좀!! 아.. 아!! 아!!!!!!!!!!!!!!!!"


침대 머리맡을 붙잡고 아무리 소리쳐도 눈에서 눈물만 흘러나올 뿐,

야속하게도 내 위장과 심장 그리고 뇌와 신체기관 어느 곳에서도 어떠한 나아질 미동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금세 싸워보려 애쓰던 의지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나는 이내 작은 소리로 전해지지 않을 외침만 되뇔 뿐이다.


"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요."


똘똘하고 순수한 네 개의 눈빛이 이런 표효하는 나를 그저 가만히 바라본다.

그 눈빛을 바라보는 길을 잃은 탁한 나의 눈빛은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가득한 눈물과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원망과 후회와 아쉬움의 눈물을.


입덧지옥, 나는 벌써 세 번째 임신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지난 두 번의 임신 기간 동안에도 입덧으로 고생을 꾀나 해왔단 걸, 정녕 잊고 있었다.

그렇다. 그 끔찍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건 어찌 보면 인간의 대단한 시스템이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힐 수 있는지, 귀엽고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또 다른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과 충동을 일으키는지, 이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실로 대단한 우주적 영역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입덧이 뭔지도 제대로 모른 채로 호르몬 교란과 그에 따른 각종 심리 작용으로 웃다, 울다, 신났다가, 무기력했다가, 정신이 나갔다가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래도 그때엔 구토는 없었다. 속이 메슥거리긴 했어도 먹을 수는 있었고, 냄새에 반응하긴 했어도 웬만큼 참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감정의 잦은 변화는 최상위 코스로 짜인 롤러코스터와 같았고, 괜한 남편에게 소리 지르고 울부짖고 괴롭히는 이상한 행동들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날엔가는 냉장고 문을 열다가 서러움에 복받쳐서 열린 냉장고 안에 들어가 펑펑 눈물을 쏟았다.

뭐가 그렇게 서럽고 힘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냥 내가 나 같지를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그때의 나를 그때의 남편은 제법 귀엽게 생각하고 귀엽게 여겨주었던 것 같다. 실제 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모습을 조용히 휴대폰을 켜서 영상을 찍은 남편을 보자니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이런 격동적인 변화를 또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그 사람의 마음이 나쁘지 않음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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