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지 달리는 말이지 달리다 죽은 말이지
나는 말이지 죽은 말이지 무덤 속에서 빛을 본 말이지
그러니까 말이지 죽었다 산 말이지 영원히 살 말이지
그러니까 말이지 진짜 말이지 말다운 말이지
힘차게 뛰고 춤추고 노래하는 말이지
그러나 나는 말하지
달리다 조롱당하고 말 조랑말이란 걸
다시 꼬꾸라지고 주저앉을 말이란 걸
순간을 살고 다시 또 차갑게 죽어버릴 말이란 걸
그래도 나는 말하지
말은 말이라고 태초부터 있어 온 그 말이라고
빛의 속도로 어디든 닿을 수 있고
퍼지는 자리마다 다른 빛깔을 낳고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
하나일 수도 둘일 수도 셋일 수도 그 이상일 수도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름을 갖고 살아온 그 말이라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도 하고
꽥꽥 지르기도 하고 그러다 픽 쓰러져 침묵하고 마는
모두가 같다고도 하고 다르다고도 하는
말다운 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보면 살아 있다가 안 보면 사라지는
고양이처럼 허구와 실재를 오가는 말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너와 이어 달리다가 이어 죽게
될 그 말이라고.
멈추지 않는 너의 재단.
도대체 누가 말 가운데 네게만 자격을 준건지
너는 어찌 그리 의기양양한지
나는 왜 맥없이 자꾸 의기소침해지고 마는지
그래도 이름 없는 변방의 말로 저 혼자 펄펄 살아 뛰다가 맥없이 고꾸라지고 말지라도
지금은 말속에서 숨을 쉬고 말에 희망을 거는
다시 또 비릿한 아침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