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한 번이라도
내 맥락을 이해해 보려 한 적 있는지
네 맘에 들지 않는다고 싹둑, 그렇게 대놓고 싹둑
미안하기는 했니 한 번이라도 돌아서서
내 배경은 해지고 어둡고 추운 골짜기였다는 걸
그래서 쭉쭉 가지를 뻗고 자랄 수 없었다는 걸
그래도 겨울 지나 봄 오길 기다리며 몸에 맞는 보폭으로
뿌리를 키우며 그렇게 버티고 있다는 걸
온전히 보려 한 적은 있었니?
해는 나를 비추고 잎은 찬란하게 빛났지
가지를 뻗는 동안 무성한 잎과 열매를 키우는 동안
내가 얻은 열매들은 모두 내 의지의 결과이고
내게만 허락된 하늘의 은총인 줄로만 여겼지
그땐 몰랐어, 내 빛이 네 그늘을 만들고 있다는 걸
네게로 갈 빛 몽땅 빼앗아 썼다는 걸
그땐 몰랐어
네가 땅속 깊이 네 뿌리를 키우고 있었다는 걸
언젠가는 올 너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렇게 네게도 하늘의 은총이 진행 중이었다는 걸
이젠 나의 날들이 추워지고 있어 뺏겨버린 햇살
햇살 한 줌 비치지 않는 어둡고 습한 이곳
그래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
네가 그랬지 겨울은 수평의 시간이라고
깊이깊이 근원에 이르는 시간이라고
넌 그렇게 땅과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고
가슴속엔 이제 하늘의 샘이 흐르고 있다고
이제야 들려 너와 나의 시간이 교차하며 계절을 순행하고 있다는 너의 이야기들이
부디 네가 이 시간을 기억하고 있기를
그래서 내일은 너와 내가 함께 끄덕일 수 있기를
위로와 안녕이 가만한 침묵 속에서 따스하게 서로의 어깨를 토닥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