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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장

by 감자발

반가운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결혼을 한단다.

내 나이가 벌써 40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가는데

친구 놈이 결혼을 한단다.

내가 20대 끄트머리에 결혼을 했으니

이 친구는 나보다 20년 늦게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50전에 하는 게 다행인 건가?

20대나 30대 초반엔 결혼식 갈 때 준비할 것이 없었다.

깨끗한 정장 한 벌이면 충분했다.

거울을 보니 한 중년의 아저씨가 서 있었다.

‘친구들도 많이 늙었으려나?‘

연락 안 한 지가 10년이 넘은 친구들이었다.

결혼식은 3주 정도 남았다.

일단 이 튀어나온 배부터 집어넣어 보자! 그래! 할 수 있다.

6시 이후 금식, 저녁때는 30분 이상 헬스장 가서 운동하자고 다짐했지만

작심삼일이었다.

3주가 쏜살같이 지나갔고 다행히도 열흘은 다짐을 지킨 것 같다.

조금 박시한 옷을 입어보니 배는 괜찮았다.

나름 괜찮아 보였다.

머리도 일반 헤어숍이 아닌 바버숍에서 아주 정밀하고 깔끔하게 잘랐다.

머리도 맘에 들었다.


결혼식 날이 다가오고 아침부터 아내와 나는 분주해졌다.

아내는 나를 신경 썼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인데 젊어 보여야지 가만히 있어봐~”


선크림, 비비가 일단 내 얼굴을 덮었다.

눈썹도 살짝 터치하고 흑자, 잡티도 감쪽같이 감췄다.

새치도 흑채 파우더로 아주 세밀하게 커버했다.

아내는 만족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히야 이거 10년은 더 젊어졌네~ 매우 좋아!”

“진짜야? 와~ 젊어지긴 했네~”

나도 맞장구를 쳤다.


아내야 뭐 워낙 어려 보이는 얼굴에다 몸매도 늘씬한데

메이크업까지 장착하니 오늘따라 더욱 완벽했다.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큰 웨딩홀에 4팀이 결혼을 하는데 다른 세 팀은 모두 어린 신랑 신부인데

그에 대비되니 친구 내외가 왠지 처량해 보였다. 다 시기가 있는 것을...

신부 입장~! 결혼식이 시작되어 보고 있는데 동창 친구가 톡을 보냈다.

-어디야?

-예식 보고 있는데...?

-우린 식당이야~ 잘 보고 와~


동창 세 녀석은 결혼하는 친구 얼굴을 잠깐 보고 먼저 식사를 하러 간 것이었다.

‘사진이라도 찍지! 식도 안 보고 밥만 먹으러 왔나?‘

난 식도 다 보고 마지막에 사진까지 찍은 후 식당으로 내려갔다.

’꾸미고 왔으니 찍어야지 하하‘


식당으로 내려가니 동창 녀석들이 우리 내외를 맞이했다.

“이야 자발이 똑같네~ 미쳤어~ 그대로잖아? 와~”

“뭐야 제수씨도 어쩜 15년 전 그대로네 와~ 믿어지지가 않네”


’아싸 성공이다. 다행히 젊어 보인다니 대만족이다~‘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인 보람이 있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갑자기 한 녀석이

“자발아! 근데 넌 염색도 안 해? 머리숱도 짱짱하고 흰머리 하나 없네?”

생각보다 말이 더 빨랐다.

“어? 흰머리 천지야! 흑채 파우더로 커버한 거지~”


아뿔싸!!!


젊다고 다들 감탄을 하는 중인데 흑채가 웬 말인가? 박명수인가?!

후회했지만 말은 이미 입 밖으로 튀어 나갔고 녀석들은 시원하게 웃어 젖혔다.


“뭐? 흑채!!!?? 하하하!!”


아내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식을 마무리 짓고 식당으로 온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식장을 나왔다.

친구들은 다음에 연락하면 꼭 나오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 각자 흩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와이프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어휴~ 참. 내가 입단속을 시켰어야 하는데 흑채라고 떠들다니...

정말 입을 가만히 두질 못하는구나!!

아무도 눈치 못 챘고 완벽했는데 스스로 발설해 버리다니~ 어이가 없네 증말”


어쩌겠는가? 순진무구한 자발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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