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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Sep 19. 2022

壬寅년 己酉월 두 번째 기록

22.09.11(일) - 22.09.17(토)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5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2.09.13 (화)


(..)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때부터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사주에 비견이 없어서 그런지 정말 부랄친구라고 할만한 깊은 인연이 희박했었다. 그 성향은 지금도 어디 가질 않고 남아 있다. 내가 나 자신을 봐도 다가가기 어렵거나 혹은 재미가 없는 이미지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 때 나는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겉으로는 껄렁껄렁하게 하고 다니면서 속으로는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으니 겉만 보고 달려든(?) 친구들은 머지않아 자신들과는 이렇다 할 교집합이 많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고 겉도 순둥순둥한 친구들이 편하게 다가왔던 것도 아니다. 겉모습만 봐선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속할 곳을 찾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은근히 외로웠을 것 같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분명 외로움이란 것을 느꼈다.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그것을. 그땐 어려서 차마 인정하기 싫었거나 아닌 척 눌러 놓고 살았던 것이었을 뿐.


(..)

사람들의 기대에 살짝 어깨가 무겁고 가슴에 압박감이 느껴지긴 했나 보다.


(..)

어쨌거나 새로운 환경의 변화가 물밀듯 밀고 들어오고 있다.


(..)

거대한 파도가 치기 전에 징조를 보내는 것만 같다. 파도가 온다는 것을 알려줬으니 나는 거기에 올라탈 준비를 해야겠지.


(..)

글씨체를 보아하니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느껴진다. 펜을 쥐고 있는 손가락 끝은 말할 것도 없고, 손목과 팔뚝 그리고 어깨에까지 긴장의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이 느껴진다. 긴장은 몸의 경직을 낳고 몸의 경직은 다시 기혈 순환의 부분적 장애를 낳는다.


우리 몸의 불균형을 만드는 것은 이와 같은 기혈 순환에 생긴 문제들이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그저 알아차려 보자. 억지로 힘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알아차리고 있노라면 몸이 저절로 스스로에게 필요한 길을 찾아서 갈 것이다. 


(..)

오늘의 모닝페이지를 다 쓰고 나면 하루를 왕성하게 살아내기 위해 4관에다가 침을 놓고 아침 명상을 해야지.




22.09.14 (수)


(..)

비가 많이 오면 평상시에는 안전 운전하지 않던 사람들마저도 안전 운전을 하게 될 테니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비 오는 날의 사고는 부주의함이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력과 주의력 사이에 생긴 작은 틈을 평소보다 더 크게 벌려버리는 자연의 준엄함(?)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살면서 카카오에 내 이름으로 된 이모티콘 하나쯤은 남겨보는 것도 재밌지 않겠나? 진짜 하루 날을 잡고 기획한 다음에 하루에 하나씩만 작업한다고 치면 한 달이면 충분하다. 하반기 안에 꼭 이모티콘, 전자책 2권 내기 등의 숙원사업 들은 처리할 수 있도록 하자.


(..)

글씨체와 속도는 내 마음 상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늘 평온한 상태에 머무르려 노력하라. 그렇게 급할 것은 없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저 그러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 차분하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과정 속에서 내 마음도 같이 차분해진다. 마음과 몸의 합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머릿속을 계속해서 쏘다니며 주의를 빼앗고자 하는 잡념들같이 글씨체가 무너지거나, 이내 휘갈겨 대는 속도가 서서히 다시 올라온다면 당황할 것 없이 그저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알아차려주면 된다. 내면에 있는 참다운 나는 모든 것을 가장 자연의 순리에 맞는 방식으로 맞춰 나갈 것이다.


(..)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것, 당연하게 여김이 없는 것. 그런 이상적인 모습은 이 작은 행동에서 비롯되어 널리 널리 퍼질 수 있다. 우주는 카오스 같아 보여도 그 안에 저마다의 규칙과 법칙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것을 달리 말하면 우주 만물은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리라.




22.09.15 (목)


(..)

그토록 그리던 '그때'의 제주는 없었다. 어쩌면 없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삶은 이와 같은 결과를 통해 과거는 소중히 가슴에 묻고 이제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기어코 가겠다면 기대와는 전혀 다른 제주를 맛보고 오라면서 말이다.


(..)

사실 이번에 날씨 이슈가 생기면서 삶이 우리가 같이 제주도에 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러지 못하도록 숙소비 환불이 전혀 되지 않는 예약 건도 발생했으니 말이다. '낙장 불입'. 그것이 하늘이 보내는 메시지였다. 삶의 의도가 그러하다면 나는 열린 가슴으로 내게 준비된 그 시나리오가 어떠한지 다가가 경험해 보련다.


(..)

얼레? 요것 봐라. 잉크가 겉보기 보다 꽤 많이 남아있었는지 생각보다 오래 나오네. 이렇게 만년필 잉크 하나도 겉보기와 다른데 사람은, 또 삶은 어떠하겠나.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타인에 대해, 그리고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이나 사건 사고 등에 대해 판단하고 단정 짓는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성향 탓에 생긴 이러한 '심리적 라벨링'의 과정은 분별심과 배타주의를 낳기도 한다. 효율적인 게 때론 비효율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

스승이 길을 알려줄 순 있어도 그 길을 직접 걸어야 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이라는 부처의 말씀처럼, 진리는 언어로 드러난 것을 간접적으로 맛보는 방식으로는 구할 수가 없다. 그것은 각자의 오감과 마음이라는 또 하나의 '기관'을 통해 직접 경험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결국 같은 차원을 공유하고 있을 뿐 저마다의 세계를, 저마다의 우주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곧 이 세상이요, 우주다. 그렇기에 삶의 모든 비밀과 해답은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이다. 어두운 심해를 탐사하는 데 끝을 헤아릴 수 없듯 드넓은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 역시 그 끝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배움과 깨달음의 여정은 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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