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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Nov 07. 2022

壬寅년 辛亥월 첫 번째 기록

22.10.30(일) - 22.11.05(토)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5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2.10.31 (월)


(..)

큰 사람이 되려거든 큰 사람의 하루를 보내야 한다. 내가 만약 지금 유명 역학자이자 카운슬러라면, 유명 작가나 아티스트라면 어떤 하루를 보낼 것인가? 물론 여기에 정해진 답은 없다. 스스로가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모습. 나 자신이 그런 느낌이 드는 모습대로 살면 그만이다.




22.11.03 (목)


(..)

'역易' 이 과학이라면 왜 당당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이곳은 양지로 드러날 수가 없는 것일까? 이곳이 이렇게 매력을 가지는 이유는 혹시 음지의 영역이라서는 아닐까? 과학이 있다면 비과학의 영역이 있듯이 이판과 사판의 영역도 별도로 존재할 때 비로소 상호작용을 톡톡히 한다는 것이다.


(..)

출퇴근 지하철/버스를 보면 100m 달리기 경기가 한바탕 펼쳐진 것만 같다. 특히 환승 출구가 가까운 곳은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를 밀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기를 시작하는 게 영락없는 육상경기다.


(..)

사람이 많다고 무조건 혼잡한 것은 아니다. 출퇴근길 혼잡의 진짜 이유는 그러한 맹목적인 서두름 때문이다.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라면 사람들은 왜 그토록 뛰어대는 것일까? 기다리기 싫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금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시간은 금이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요즘 사람들은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를 보면 1분 1초를 소중히 여기지는 않는다. 아침에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리자 보니 늦어서 뛰는 것이고, 퇴근 후에는 1분이라도 빨리 이불 속에 들어가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에 뛰는 것이다.


시간을 아끼려고 때로는 큰 사고를 낼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까지 감수해가며 곧 파란 불이 꺼져가는 아슬아슬한 횡단보도로 몸을 던지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데, 정작 그 시간들을 아껴서 하는 것은 인생에서 정말 원대한 꿈을 펼치는 것과 같이 소중한 순간들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군중심리. 남들이 다 뛰고 있으니까. 그렇게 단순하고 비합리적인 이유만으로도 인간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달라진다. 두 번째는 통제 욕구다. 삶에서 점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드는 나머지 출퇴근 시간 외에 조금이라도 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벌이는 한바탕 몸부림이 출퇴근길 '육상 경기'로 드러나는 것이다.


목숨 걸고(?) 확보한 그 시간을 자기 발전적인 시간으로 보내든, 쾌락과 탐닉의 시간 위주로 보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포인트는 바로 통제에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내가 나 자신의 온전한 주인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는 것이다.


(..)

출퇴근 길에 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여유를 상실했고 각박해져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22.11.04 (금)


(..)

생각은 짧게, 행동은 길게. 나의 어록으로 남겨도 좋을 만큼 나처럼 생각이 많아 행동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면 꼭 유념해야 할 말이다.


(..)

고기를 먹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고기를 먹도록 시스템이 설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100% 평등할 수 있는 세상은 이론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짐승들의 세상에도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그렇기에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하도록 지구 차원에서 허용한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자연이 허용한 것 이상으로 항목의 리스트를 질과 양 측면에서 모두 늘렸다. 그러나 기술의 개입의 정도가 높아질수록 자연에서 벗어나는 정도도 그에 비례하여 커진다.


(..)

내게 있어 돈은 사치와 향락의 수단이라거나 그 자체로 목적인 대상이 아니다. 내게 있어 돈은 자유의 수단이다. 시장의 니즈를 고려하지 않은 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창작 생활을 하며 살기 위한 수단.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내가 하는 행동이 만들어 낸 가치와 시장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

방법론에 갇히지 말고 본질을 파악하자. 본질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다.




22.11.05 (토)


(..)

금수金水의 시기와 내 글은 잘 어울린다. 근데 차디차고 안으로 수렴하기만 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봄의 토양처럼 가능성이 씨앗의 형태로 묻혀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부푼 꿈에 젖어 있는 습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랄까.


(..)

투고의 행위를 가벼이 여기지 말자. 세상에는 나의 정신과 나의 필체를 알아봐 줄 독자와 출판사가 반드시 한 군데는 존재할 것이다.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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