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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Oct 23. 2021

퇴사 후에 알게 된 것

민경의 글




ⓒ Estée Janssens on Unsplash



회사 다닐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꽤나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9시~12시 사이에 출근하면 되는 자율 출퇴근제였지만 꼬박꼬박 아침 9시까지 출근하고, 출퇴근 지하철에서는 눈을 비벼가며 독서를 했다. 점심시간에도 빨리 밥을 먹고 나서 잔업을 처리했고 잦은 야근 후에는 집에 돌아와 다음날 도시락까지 준비해놓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솔직히 이런 나에게 감동해서 “나 진짜 너무 알차게 사는데? 이렇게 살면 뭘 해도 성공하겠는데?"라는 발칙한 생각도 해본 적 있다.



그런데 막상 퇴사를 하고 시간이 무한대로 많아지니까 부지런했던  모습은 빛을 잃고 시들거렸다. 자유의 몸으로 무엇이든   있고 무엇이든   있었지만 오히려  까마득함 속에서 갈피를  잡고 시간을 낭비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비강제적 삶에서 내가 이렇게까지 게으른 사람이었나 하는 순간들을 자주 마주쳤다.



회사에서는 할 일이 정해져 있어서 좋든 싫든 기한 내에 임무를 완수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확실한 목표도 미션도 없다. 결승점이 어딘지도 모르겠는 도로에 놓여 여기저기 한 눈을 팔고, 달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데에 시간을 다 써버리고 있다.



작게는 집 청소부터 크게는 돈을 벌어들이는 일까지 동기부여도 우선순위도 마감일도 스스로 정해야 한다. 아무런 강제성도 없다. 조금 늘어져도 나에게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밑도 끝도 없이 미루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자책하는 날의 연속이다.



혼자 일하면 게을러지고 늘어지기 쉽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목표 설정은 필수다. 거창한 목표일 필요는 없다. 아주 소소해도 괜찮다. 그리고 중간중간 체크포인트를 정해서 나를 점검한다. 회사에서 매주 진행상황 공유를 위해 회의를 했던 것처럼. 계속 달리려는 관성을 이겨내고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내가 어디까지 왔나, 방향은 이쪽이 맞나, 체력이 고갈되진 않았나 확인해본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지점을 만들어두면 아무것도 없을 때보다 확실히 재미가 붙고 긴장감이 생긴다.



이제는 모든 게 나의 책임 하에 있다. 회사가 해줬던 역할까지도 내가 도맡아서 해야 한다. 가끔은 버겁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이제는 더 이상 남을 위해 일하면서 나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도 된다.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이거 하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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