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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Dec 07. 2023

함께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

커플이 함께 활을 냅니다

변하지 않는 것들에게서 애정을 느낀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만물은 고정된 것이 없이 늘 변하는 것이 진리라고는 하지만, 변하는 것 속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그 진리 하나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전통 활쏘기 역시 5천 년 유구한 역사 속에서 변하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그 존재를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살상무기였던 활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심신 수양의 도구나 스포츠의 종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거치며 활과 화살에 스미었을 겨레의 기백만큼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재미와 스포츠로써만 활을 쏘는 궁사들이라고 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그 기운을 느끼고, 그것과 하나가 된다. 활을 쏠 때만큼은 직장인 아무개가 아니라 용맹하게 말을 타고 목표물을 향해 활을 쏘던 궁사가 되는 것이다. 


룰이 복잡하거나 체급 차가 나면 같이 경기를 하기 어려운 일반적인 스포츠 종목들과는 달리 활쏘기는 세대와 성별이라는 장벽을 넘어 모두가 함께 즐기기 좋은 운동이다. 실제로 활터에 가보면 함께 활을 내는 커플이나 부부들이 꽤나 많다. 아직 풋풋함과 사랑이 넘치는 젊은 커플과 세월의 문턱들을 지나오며 두터워진 서로에 대한 안정감이 느껴지는 중년의 부부들까지. 나 역시도 처음 활을 배울 때 여자친구와 같이 시작했다.


나와 짝꿍의 활


여러 사람들이 모여 활을 내는 모습, 그리고 다 같이 화살을 주우러 걸어가는 쌍쌍의 커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흐뭇해지곤 한다. 마치 한 몸인 듯 늘 붙어 다니는 한 쌍, 각자 따로 활을 내지만 화살을 치우러 갈 때만큼은 같이 다니는 한 쌍. 활터에 있는 내내 서로 떨어져 있다가도 자신의 짝꿍이 좋은 기록을 냈다며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으면 어느샌가 다가와 함께 손뼉 쳐주는 또 한 쌍. 젊은 잉꼬부부에서 늙은 거북과 같은 부부가 되어가는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듯하다. 


어느 봄날 다 같이 화살을 주우러 가는 사우 님들



활터에는 '집궁회갑'이라는 것이 있다. 활을 시작하고 나서 환갑을 맞았다는 뜻이다. 내가 다니는 활터같이 오래되지 않은 곳에선 찾아볼 수 없지만 역사가 오래된 활터 같은 곳에서는 실제로 지금도 집궁회갑을 맞는 분들이 아주 가끔씩 계신다. 한 곳에서 진득하게 직장생활을 해도 40년을 채우기가 어려운데 무언가를 60년이나 유지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가늠조차 어렵다.



함께 활을 내고 화살을 주우러 가면서 문득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우리도 언젠간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하고 이윽고 얼굴엔 세월이 지나간 자리가 깊게 남아있겠지. 그때에도 당신과 함께 활시위를 당기고 싶다. 언젠간 소천하여 되돌아갈 저 높은 곳을 향해서. 늙은 것이 추함이 되지 않기를, 고고함과 기품을 자연스럽게 자아내기를 바라면서.


함께하는 것, 그 자체로 이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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