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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Nov 30. 2023

인도에 요가가 있다면 조선엔 활이 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양궁 경기를 볼 때마다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동이족(東夷族)'


동쪽의 오랑캐라는 뜻인데, 옛 중국인들이 우리의 선조들을 두고 한 말이다. 한자 해설의 바이블인 <설문해자>에 따르면 '오랑캐 이(夷)'는 큰 활과 관련된 글자라고 한다. 이를 통해 과거 중국인들의 눈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활과 매우 관련이 깊은 민족으로 비쳤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우리 겨레의 핏줄에 흐르는 활 잘 쏘는 DNA를 언급하면서 꼭 하나씩 덧붙이는 게 우리 민족의 집중력과, 끈기, 그리고 섬세함 등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으며 반도체와 같은 정밀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인다는 등의 서사가 펼쳐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예삿일은 아닐 것이다.


<수렵도>


우리 민족과 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이지 않을까. 요즘은 어쩌면 영화 <최종병기 활>이 떠오르기도 하겠구나. 체구는 크지 않아도 그만큼 날렵하고 용맹한 무사의 기상을 활이라는 상징적인 도구로써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활이 떠올리게 하는 건 전쟁이나 수렵, 사냥 등과 같이 생과 사가 오가는 '살상'의 현장과 같은 이미지임은 분명해 보인다.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 영화 <최종병기 활> 중


나는 어쩐지 활이 인도의 요가를 닮았다고 느껴진다. 그것은 내가 활에 입문한 계기이자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을 쏘는 이유가 심신의 수양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활쏘기와 같이 고려했던 또 하나의 선택지가 요가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내 계기를 합리화하기 위한 주장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전통 활쏘기는 다양한 측면에서 인도의 요가와 닮은 점이 많다.






역사


요가의 기원을 찾아보면 대략 5,000~7,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이족의 활쏘기 역시 마찬가지다.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이미 구석기시대 때부터 동아시아지방에서 활과 화살이 사용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역사적 기록으로 보더라도 고조선 시대에 예속국 중 하나였던 동예국의 특산물 중 하나가 박달나무로 만든 '목궁(木弓)'이었다고 한다.


요가의 유구한 역사와 세계적인 요가 수행 인구 수에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를 비비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요가와 활쏘기 모두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그 명맥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오고 있는 건 사실이다. 요가는 2016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고,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는 2020년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이 된 상태다. 그것만으로도 두 가지 모두 역사적인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심신의 수양


요가가 단순히 신체 건강을 위한 스트레칭이라거나 체중 감량등의 다이어트 효과만을 위한 운동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요가에서는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연결된 존재로 보았고, 몸을 다스리는 근본적인 목적은 마음, 즉 정신을 다스리기 위함에 있다고 여긴다. 오케이, 요가는 그렇다는 걸 알겠는데 활쏘기가 난데없이 왜 심신의 수양의 영역에 끼어드는 것이냐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궁도를 떠올리면 '아하!' 하게 된다. 이게 어딜 봐서 사냥과 수렵의 도구인가. 일본의 궁도는 예로부터 사무라이 등의 지배계층의 심신 수양의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요가와 같이 몸과 마음을 두루 살피고자 하는 목적으로 서구권에서도 일본 궁도에 몸을 내맡기는 사람들이 제법 존재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던 소설 <연금술사>의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도 취미로 궁도를 한다. 그가 궁도를 하면서 느낀 것들을 엮은 책 <아처>는 내가 활쏘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다.


일본의 궁도, 서구권에선 규도(Kyudo)라고 불린다. (출처: Wikipedia)


현재 우리나라의 현대 활쏘기는 아쉽게도 심신수양의 도구보다는 단순한 취미 스포츠, 양궁과 같은 기록 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원래 우리나라의 활쏘기도 심신수양의 도구였다. 조선시대에는 육례(六藝)라 하여 선비들이 꼭 익혀야 할 6가지 덕목이 있었는데, 활쏘기는 이 6가지 덕목인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 각각 예법과 예절, 음악, 활쏘기, 말타기, 읽고 쓰기, 수학 및 과학에 해당) 중 하나에 들어갈 만큼 중요도가 높았다.


책만 읽었을 것 같은 공자 선생님은 놀랍게도 활쏘기를 예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자는 화살이 과녁에 잘 맞지 않을 때 취해야 할 태도에 관하여 말하면서 "군자는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원인을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라고 했다. 활쏘기를 통해 외부 환경의 탓을 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보라는 공자의 가르침은 설령 남과 경쟁을 하더라도 활쏘기란 사실상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이란 걸 알게 해 준다.


신체 단련에 대한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요가의 다양한 자세(아사나 Asana)는 유연성뿐만 아니라 근력을 길러주는 신체 단련의 효과가 있다. 또한 요가에서는 호흡(프라나 Prana)에 에너지가 담겨있다고 보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기며, 요가 수련 내내 호흡의 흐름과 밸런스 유지에 초점을 맞춘다.


활쏘기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서서 활만 당기는데 무슨 운동 효과가 있느냐 싶겠지만 일단 활 자체가 당기는 데에만 제법 많은 힘이 들어간다. 나도 처음 활을 배울 때 생각보다 힘들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하긴 145m까지 화살을 날려 보내야 하는데 고무줄 같은 장력으론 어림도 없지. 활쏘기에서도 호흡은 중요하다. 전통 사법의 교본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조선의 궁술>에 따르면 활을 당길 때는 호흡이 불거름(아랫단전)에 채워서 팽팽해져야 한다고 나와있다. 심신의 강화에 흉식호흡보다 복습호흡을 더 강조하는 것은 무예 등 정신과 신체의 건강과 관련된 많은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음의 겸양

    

'나마스테'

요가를 배워봤거나 인도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꼭 한 번씩은 듣게 되는 인사말이다. 당신을 존중한다는 뜻이 담긴 이 인사말을 한층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인사를 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 각자는 내면에 신성이 깃든 고귀한 존재라는 멋진 세계관이 담긴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세계관은 고스란히 요가의 세계에도 스며들기 마련이다.


요가에 나마스테가 있다면 활쏘기에는 '초시례(初矢禮)'가 있다. 나와 같이 활을 쏘는 다른 궁사들로부터 한 수 배우겠다는 겸양의 뜻으로 그날 하루의 첫 화살을 보내기 전에 "활 배웁니다."라고 과녁을 향해 인사를 올린다. 그러면 주변 분들이 "많이 맞히세요.", “연중 하세요." 등으로 화답을 해준다. 또한 활터에서는 '활을 쏜다'라는 표현보다는 '활을 낸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데, 이는 과녁을 내가 주도적으로 취하는 객체가 아니라 내가 내는 화살을 받아주는 주체로 여기는 겸양의 뜻이 담긴 표현이다.





활을 쏠 수 있는 장소인 '활터'는 생각보다 많다. 활터에 많이 쓰이는 이름 중 '관덕(觀悳)'이라는 단어가 있다. 활 쏘는 모습만 보아도 그 사람의 됨됨이나 덕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활을 통해 언제나 내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갈고닦은 사람은 자연스레 그 기품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는 활쏘기를 취미로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갖는 인식에 '관덕'이라는 글자가 핵심 키워드가 되길 바란다. 요가를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어떠할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일본의 궁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전통 활쏘기엔 그런 이미지가 딱히 있는 것 같진 않다. 과거엔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있었는데? 아니, 없어요 그냥


이제 고작 2년 남짓 활을 내고 있는 애송이인 내가 감히 활쏘기에 대한 글을 써도 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브런치 북을 개설한 이유는 '관덕'의 가치를 지향하는 여정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향성에 공감하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용기와 희망도 드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이겠다.






활쏘기 여정의 기록,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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